'고양이로 태어났어야 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남...!?'
좋아요 100개가 넘어간 누리꾼 E모 씨의 농담 반 진담 반 댓글인데요! 대체 누구를 묘사한 댓글이길래, 이토록 고양이 집사들의 극찬(?)을 받았을까요.
그 주인공은 바로 서울 신영동에서만 20년 넘게 동네병원을 운영하는 윤홍준 수의사입니다. 스스로를 소박한 동네 수의사라고 소개하지만, 무려 구독자 수 20만을 넘긴 유튜버 실버 버튼 보유자랍니다. 실명보다 '윤샘'이라는 친근한 별명으로 더 알려진 그는 유튜브 <윤샘의 마이펫상담소>에서 고양이에 관한 수의학 정보를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어요.
유명 인플루언서지만 동네 수의사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두 얼굴의 수의사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어볼게요!
“동네 수의사로 지낸 22년…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에요”
Q. 유튜브로만 접했지, 한 동네에서 20년 넘게 수의사 생활을 한 줄은 몰랐어요!
저도 돈 벌어야죠~ (웃음) 사람들이 유튜브로 돈 많이 벌 거라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고요. 본업을 열심히 하면서 틈틈이 시간 내서 유튜브도 촬영 중이랍니다. 종로구 신영동에서 1999년 4월부터 일했으니, 햇수로는 벌써 22년째네요. 특히 이 동네는 대를 이어서 살아온 토착 주민들이 많아 대부분 단골이에요.
그만큼 잊지 못할 추억들도 가득해요. 저 같은 경우 처음 입양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한 동물 친구를 오랫동안 돌보는 경우가 많아요. 가령 반려견이 새끼를 네 마리 낳았는데, 저보고 이름을 모두 지어 달라던 주민분도 있었죠. 그중 막내였던 푸딩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평생을 제가 지켜봤네요. 각별한 손님들도 많죠. 어릴 때부터 병원에 왔던 꼬마 친구가 어느덧 제 후배가 되었다며, 수의대생이 되어서 찾아온 일도 있었답니다.
Q. 동네 주치의라는 표현은 익숙한데, ‘동네 수의사’는 살짝 생소한 느낌이에요.
‘동네 수의사’라는 개념 역시 더 활성화되어야 해요. 가령 동물 병원을 이리저리 옮기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러면 반려동물에 대한 건강 데이터가 쌓이기 힘들어요. 전자 차트상의 진료 기록을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는 작업을 쉽다고 많이들 오해하는데요. 디지털상에서의 공유는 현재 법적으로 불가능하고, 그저 방대한 양을 출력해서 새 병원에 전달하면 일일이 적는 방법밖에 없어요. 이렇게 되면 이전 병원에서 진단했던 동물의 증상을 누락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죠. 즉, 가까운 동네에서 오랫동안 한 동물을 케어해줄 수 있는 동네 수의사의 역할이 중요해요.
또 대형 병원과 동네 병원의 역할은 사뭇 달라요. 대형 병원은 그 목적에 맞게 인원도 많고 규모도 엄청난 만큼, 소비자가 체감하는 비용이 동네 병원에 비해 클 수 있어요. 가까이서 한 동물의 평생을 관리해주는 역할은 동네 병원이 적합하죠. 물론 전문적인 수술이나 치료 과정이 필요한 질병은 대형 병원이 더 알맞을 수 있어요. 이럴 때는 어떤 대형 병원에 방문하고 무슨 외부 치료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추천해주고, 세세하게 가이드를 해주는 역할 역시 동네 수의사 몫이겠죠!
Q. 그럼 동네 수의사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을까요?
미국에서는 동물 병원을 평가하는 기준이 마련되어 있어요. 인테리어? 친절도? 수술 횟수? 모두 중요하지만, 핵심 지표는 아니에요. 바로 그 병원에 내원한 반려동물이 몇 살까지 살았는지예요. 저는 이 지점이 동네 수의사한테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 생각해요. 단순히 지금 이 순간의 질병 치료에 집중하는 게 아닌, 내 이웃과 그의 동물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가는 과정 전반을 관리하는 거죠. 이런 업무는 하루에 어마어마한 고객들이 다녀가는 대형 병원에서는 힘든 일인데요. 우리 같은 동네 수의사들은 내 이웃의 반려동물과 평생 함께 간다는 생각을 꼭 되새겨야 해요.
“유튜버가 된 이유요? 돈도 인기도 아니에요"
Q. 동네 수의사인 윤샘이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미디어에 묘사된 동물 치료 과정이 자극적으로 포장되는 장면을 많이 봤어요. 가령 정신적인 문제로 전문적인 진단과 약물 치료가 필요한 동물한테 행동 훈련을 강요하는 모습도 종종 봤는데요. 수의사와 훈련사 간의 역할 분담이 제대로 안 된 듯한 모습이었죠. 물론 미디어에 출연하는 수의사와 훈련사를 비난하는 게 아니에요. 미디어의 특성상 짧은 시간 동안 압축해서 보여줘야 하므로, 극적인 장면만 부각된다는 점을 잘 알아요. 하지만 반려인 시청자들은 분명 쉽게 오해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을 차근차근 얘기해보자는 마음으로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정보 전달 목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만약 인기나 돈을 생각했으면 동물들과 재밌는 일상 브이로그를 많이 올렸을 거예요. 그저 수의사로서 제대로 된 정보를 주겠다는 마음에 계속하고 있죠. 그래서 제 유튜브 영상 보면 다른 채널에 비해 재미가 없어요. (웃음) 댓글로 제게 일상 브이로그도 찍어달라는 요청도 많이들 하시는데 단칼에 거절해요. 저는 제 얼굴도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저 동물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사람일 뿐이에요. 그 마음으로 유튜브를 시작했고, 앞으로도 운영 방침은 변함이 없을 겁니다.
Q. ‘고양이 하면 윤샘’이라고 할 만큼, 고양이 정보 영상을 주로 올리시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고요. (웃음) 어쩌다 보니 고양이를 일찍 키웠어요. 병원 오픈한 직후인 2000년도부터 외국으로 이민 가시는 분께서 병원에 맡긴 두 고양이를 길렀죠. 두 친구 각각 2015년과 2017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으니… 천수를 다하고 제 곁에서 떠났네요.
참고로 그때는 국내에 반려묘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던 상황이었어요. 심지어 고양이는 모래가 없으면 키울 수가 없는데, 국내에 고양이 모래가 겨우 수입되기 시작한 무렵이었으니까요. 그만큼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인식하지 않던 시절부터 함께 하다 보니, 아무래도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많아졌어요. 물론 강아지 문제 역시 제 관심사입니다. 참고로 강아지 정보는 <윤샘의 강아지상담소>를 따로 파서 운영 중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웃음)
Q. 영상에서 ‘안락사’와 같은 무거운 주제들도 눈에 띄어요.
꼭 다뤄야만 하는 주제만 선정하려고 노력해요. 한국 사회에서 반려동물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다섯 편이나 다뤘어요. 많은 오해와는 달리, 안락사는 수의사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치료 행위에요. 질병이나 통증으로부터 동물을 구하는 행위를 우리는 치료라고 규정을 하고요. 이 치료에는 안락사도 포함이 돼요. 그저 연명 치료가 반려동물의 심각한 고통을 단순 연장하는 방법이라면, 분명 안락사 역시 치료의 한 방안이겠죠.
수의사의 안락사 치료는 동물만 봐서는 안 돼요. 반려인을 설득하는 작업 역시 포함돼요. 반려동물의 고통이 현재 어느 정도인지 알려주고, 안락사를 비롯해 선택할 수 있는 치료 가능 범위를 제시해드리죠. 선택은 반려인의 몫이지만요. 그리고 안락사를 마치고 나면 반려인에게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고 진심으로 위로를 해드려요. 이건 동네 수의사라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에요. 반려동물을 잃은 상실감과 안락사라는 죄책감 때문에 반려인의 우울증 역시 문제가 될 수 있거든요. 다행히 안락사 과정을 거쳐 우울했던 많은 반려인들이 위로가 되었다는 반응을 해주셔서, 개인적으로 뿌듯한 영상 중 하나입니다.
Q. 무거운 정보 위주의 콘텐츠인데도 구독자 20만 명이 넘었어요! 실버버튼의 비결은?
제 유튜브는 정말로 구독자분들만 보십니다. 그래서 사실 실제 조회수는 많이 안 나와요. 돈도 거의 안 되죠. (웃음) 오락성 유튜브 콘텐츠는 굳이 구독을 안 해도 많은 분들이 보죠. 알고리즘에 노출도 잘 되고요. 반면 저 같은 경우 아무래도 정보 위주 영상을 찍다 보니, 필요한 분들만 바로 구독하고 이외의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더라고요. 대신 충성도 높은 시청자인 소위 ‘찐팬’만이 제 채널에 남았습니다. 아마도 20만 구독자를 달성한 비결은 필요한 분께 필요한 정보를 준다는 확실한 컨셉이 아닐까 싶네요.
“천사 수의사? 놉! 그저 제가 맡은 일이죠"
Q. 병원에서도 동물을 키우시는데… 인터뷰 도중에도 윤샘 발밑에 강아지 친구가 붙어있네요
보호소에서 갈 곳 없는 친구들을 제가 병원에서 하나씩 맡다 보니, 현재 고양이 네 마리와 강아지 하나를 키우게 됐네요. 지금 제 발밑에 꼬옥 붙어있는 강아지는 ‘공주’라는 친구예요.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구조돼 죽음의 문턱 앞까지 갔다가 겨우 살린 친구인데요. 그 이후로 저만 쫓아다니길래 제가 입양했죠. 지금은 많이 늙은 데다 치매까지 앓고 있는데… 그래도 저는 계속 기억하는지 저만 졸졸 쫓아다니고 있네요.
Q. 이렇게 좋은 일도 많이 하시는 데다, 심지어 기부까지 한다고…?
그런 이미지 정말 부담스럽고 거절할래요. (웃음) ‘동물권행동 카라’와 ‘동물권시민연대 레이’의 협력 병원으로 보호소 동물들 돌봐주는 활동을 오랫동안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얘기를 하면 뭔가 제가 착하고 선한 사람, 천사 수의사 등으로 오해받을까봐 걱정이네요. 사실 이 활동들은 제 선의가 아닌, 동물보호 단체 분들의 선의라고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기부도 마찬가지예요. 유튜브 실시간 라이브를 켰을 때 저한테 시청자로부터 후원금을 받는 기능인 ‘슈퍼챗’을 많이 받는데요. 그분들이 저한테 주신 전액을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하거든요. 그건 그분들의 선의이지, 제 선의가 아니에요. 유튜브 라이브에서도 저보고 ‘천사 수의사’ 이런 댓글 다시는 분들께 매번 경고해요. 우리 방 금지어니까 다시 한 번만 더 쓰면 강퇴할 거라고. (웃음)
Q. 그래도 보호소 동물들을 병원에서 보호하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아무래도 구조하는 야생 고양이들이 사람에 익숙하지 않고 사나워서, 검진 과정에서 주로 다치곤 하는데요. 사실 직원들 다 한 번씩은 물려서 입원했어요. 특히 손 같은 부위는 잔근육과 신경 혈관들이 많아서, 물릴 경우 무조건 병원에 가야 해요. 그저 직원들한테 미안할 뿐이죠. 저야 원장이라 뭐… 물린다고 입원할 수는 없어요. 그럼 병원에 내원하는 아픈 동물들은 누가 돌보나요? (웃음) 제 직업이 수의사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Q. 마지막으로, 동네 수의사 윤홍준과 유튜버 윤샘…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세요?
저는 평범한 수의사일 뿐이에요. 말씀드렸듯이 착한 사람, 선의의 천사 이런 이미지도 싫고요. 제 얼굴조차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지 않아요. 그냥 동네에서 이웃들의 동물을 보살피는 동네 수의사로서 오래오래 지낼 예정이고요. 유튜브 역시 앞으로 필요한 정보만 전달하는 채널로 쭉 운영할 거예요. 그저 반려동물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전달하는 평범한 수의사로 저를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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