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전시
국립중앙박물관, 2024년 1월까지
쿠룹-이쉬타르는 3분의 1 미나와 2와 2분의 1 셰켈 때문에 샤마쉬-타파이를 고소하려고 한다. 난니야, 까타툼, 우쭙-이쉬쿰이 이 사건의 판사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남긴 쐐기 문자 점토판에서
기원전 20세기 무렵,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000여 년 전 지금의 튀르키예(터키) 중부에 살았을 쿠룹-이쉬타르씨도 돈 문제로 깨나 골치를 썩었나 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 주민들은 송사부터 상속에 이르기까지 오만 가지 시시콜콜한 생활사를 점토판에 남겼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그 점토판이 수천 년을 견디고 한반도에서 공개될지 당사자들은 상상조차 못 했겠지만. 그들이 사용한 쐐기 문자는 인류가 처음으로 발명한 문자로 남아 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소장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진품 유물 66점을 선보이는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전시가 이달 22일부터 2024년 1월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비옥한 땅에서 나타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기록이 전해지는 대표적 고대 문명이다. 기원전 3,400~3,000년 사이에 최초의 도시들이 나타났고 이들이 쐐기 문자를 발명해 일상사를 기록했다.
이번 전시에선 쐐기 문자 점토판들을 비롯해 기원전 3,500년대에서 기원전 500년대 사이에 만들어진 유물들을 선보인다. 통치자를 형상화한 조각부터 장신구까지 당시 주민들의 관심사와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추상적 사고가 머릿속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 전에 문자로 붙들어 매는, 현대인이 당연하게 여기는 인간의 능력이 역사상 처음으로 나타났던 시대를 증언하는 유물들이기도 하다.
관람객을 처음 맞이하는 유물은 쐐기 문자를 새긴 점토판 13점이다. 점토판마다 벽면에 의미가 해석돼 있고 디스플레이 화면을 만져서 찾아볼 수도 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갈대 줄기 끝을 뾰족하게 만들어서 점토판에 기록을 남겼기에 자연스레 쐐기를 닮은 문자가 탄생했다. 남부에서 농업을 기반으로 한 정착촌이 확대되고 노동력이 증가하면서 이들은 쐐기 문자로 교역과 거래를 기록했다. 초기 문서들에는 주로 회계와 관련된 내용이 담겼지만 곧 의료나 과학, 역사, 문학 등을 기록한 문서들이 나타났다. 쐐기 문자는 수메르어를 적기 위해서 고안됐지만 곧 서아시아 전역에서 쓰이던 여러 언어를 기록하는 데도 사용됐다. 필경사들이 등장하고 60진법과 10진법을 함께 사용하는 중량 측정 체계가 완성되면서 5단 곱셈표가 새겨진 점토판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쐐기 문자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원통형 인장도 만날 수 있다. 짤막한 도장처럼 생긴 원통형 인장은 옆면에 도안과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고대인들은 행정적 목적으로 문서를 인증하려고 인장을 점토판에 굴려서 가로로 길쭉한 문양을 새겼다. 인장을 장신구처럼 착용하거나 부적으로 몸에 지니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인장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나지 않는 보석으로 만들어졌는데 당시에 원거리 무역망이 존재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킴 벤젤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고대근동미술부장은 함께 전시된 영상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현대 문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강조한다. “메소포타미아 문화를 끌어간 밑거름은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자 했던 노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인간이 이 거대한 세계 속 어디에 위치한 걸까, 우리가 알게 된 것을 어떻게 정리하고, 어떻게 이해할까 하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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