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문제는 총이야, 바보야

입력
2022.07.25 00:00
27면
0 0
지난달 1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총기 폭력에 반대하는 집회. AFP 연합뉴스

지난달 1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총기 폭력에 반대하는 집회. AFP 연합뉴스

벌써 수많은 뉴스에 묻혀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져 가는 듯하지만, 지난 5월 미국 텍사스주 우발데의 한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로 19명의 아이들과 2명의 선생님이 목숨을 잃었다. 다음날 한 제자와 면담을 하는데, 초등학생 딸을 둔 그는 뉴스를 접한 뒤 마음이 아파 잠을 잘 수 없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총기 테러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어 둔감해지기 쉬운 게 미국 현실이지만, 어린아이들의 긴 미래를 앗아가는 학교 총기 테러가 나면 소식을 접하는 내 마음에도 깊고 긴 상처가 생긴다. 26명이 목숨을 잃은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테러 사건 때도 한동안 잠든 유치원생 아이의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났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아픔에 비할 바 아니지만, 총기 테러가 가져오는 슬픔의 파장은 멀리 간다.

이런 비극이 일어날 때마다 미국 정치인들과 논객들 사이에서는 그 원인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다. 우리가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원인을 찾는데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원인을 찾아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이다. 성경에 하느님이 선악과가 없어진 것을 보고 아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데, 아담은 왜 선악과를 먹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다. 다른 이에게서 자기 행동의 원인을 찾아 책임을 피하려는 변명의 역사는 이렇게 길다. 우리가 원인을 찾는 또 하나의 이유는 결과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해 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일 것이다. 총기 테러의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두번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파악해 그 결과를 바꾸려면 근접 요인과 더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는 게 다 중요하지만 그 상대적 중요성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 왜 이상기온이 자주 나타나는지 이해하려면 지역적 근접 요인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 기후변화라는 근본 원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효과적 대책을 세울 수 없다.

반대로 총기 테러의 경우에는 고성능 총기를 누구나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느슨한 총기 규제라는 근접 요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동기와 배경은 사례마다 다르고, 그들 인생 어느 시점에 개입이 이루어져 인생경로에 변화가 생겼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근본적 원인에 상관없이 쉽게 결과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근접 요인, 즉 총기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것뿐이다. 특히 반자동 소총 같은 전투형 총기에 대한 접근을 조금만 어렵게 해도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빈약한 의료정책이나 극단적 인종주의 같은 원인은 그 자체로 중요한 문제지만, 총기 테러와 관련해 명확하고 쉽게 바꿀 수 있는 총기 규제라는 근접 요인을 놔두고 근본적 원인을 거론하는 것은 논쟁의 초점을 흐리는 소음에 불과하다. 총기 규제가 엄격한 일본에서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총에 맞아 죽었지만, 근접 원인은 범인이 훈련된 전 해상자위대 장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일본에서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의 숫자는 딱 한 명이었다. 같은 해 미국에서는 4만5,034명이 죽었다. 총기 소유 옹호자들은 총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고 강변하지만, 고성능 반자동 소총 없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임채윤 미국 위스콘신대학 사회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