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두려워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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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가 두려워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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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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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원
정명원검사

편집자주

17년차 베테랑 검사이자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저자인 정명원 검사가 전하는 다양한 사람과 사건,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기.

지난 5월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신임검사 임관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명장을 받은 신임 검사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선배 검사의 강의는 매우 낯설고도 어려운 분야에 대한 것이었다. 지루하고 졸기에 딱 좋은 주제인데도 강사는 눈을 빛내고 있었다. 강의 내용은 거칠게 요약하자면 한 명의 성실하고도 평범한 검사가 예상치 않게 거대 '깡치사건'을 인계받은 후 의도치 않게 10년간 생고생한 스토리다. '깡치사건'이란 사안이 너무 복잡해 품은 많이 드는데 해결해도 빛은 나지 않는 사건을 말하는 법조계 은어다.

사건 무용담이야 검사들 사이에서 흔하게 듣는 것이지만, 선배 강사의 이야기에는 특별한 점이 있었다. 경찰 수사에서부터 1심, 2심을 거쳐 대법원 파기 환송, 다시 환송심을 거쳐 대법원에 이르는 동안 사건은 드라마틱하게 엎치락뒤치락했다. 10여 년의 세월을 거쳐 결국 어떤 법리로 어떤 부분이 유죄가 되고 무죄가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모든 순간 그가 두려웠다고 말한 부분이다. 거대 로펌의 으리으리한 변호사 군단이 내어놓는 현란한 의견서를 받아 들고 하나같이 옳은 말 같아 좌절했던 순간들, 냉방도 안 되는 한여름 사무실에서 야근해 가며 더듬더듬 반박 의견서를 써내던 밤들, 낯설고도 확신할 수 없는 법리의 세계를 헤집어 가며 사실과 주장을 구축해 가던 순간들과 그것들이 받아들여지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선고의 순간들까지, 한결같이 두려웠다고 그는 말했다. 두려웠다고 말하면서도 눈빛을 반짝였다.

하나의 사건이 생겨나서 마침내 종결되었다고 하기까지 사건의 길은 멀고 다양하다. 인지되고 수사되고 기소된 후에도 심급을 거듭한 재판 절차가 있다. 때로는 재판이 종결되고 확정된 이후에도 그 결과라는 것이 개인의 삶과 사회에 소화되고 흡수되기까지 상당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런 관점에서 사건의 전체 여정에서 한사람의 검사가 관여하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자신이 맡은 부분의 업무가 끝나고도 사건은 계속 제 갈 길을 가겠지만 검사는 사건의 뒤를 오래 바라보지 못한다. 사건은 매일 밀려오고 한 사건의 뒤를 오래 좇을 만한 여유가 현실적으로 없다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다.

그러나 조금 더 솔직한 이유 중 하나는 사건의 뒤를 오래 바라보는 일은 어떤 두려움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기 마련인 사건이라는 것이 오직 나의 행위와 판단에 의해 결정지어진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내가 뭘 잘못하진 않았나, 사건이 행여 엎어지지는 않나… 그 애쓰임을 다 따라가며 감당하기란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단계에서 최선을 다하고 나면 다음 단계는 아마도 나보다 유능할 누군가에게 맡기는 쪽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면하고 두려움을 분산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많은 일들을 다 처리해낼 수 있겠냐고, 건강하게 다음 사건을 대하기 위해서는 사건과의 일정한 거리 유지, 그리고 어느 정도 잊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가끔은 효율적인 두려움 분산 시스템을 거슬러 끝내 사건의 뒤를 따라가는 경우가 있다.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사건이 가는 길을 따라갈 수 있는 한 따라간 다음, 그 두려움을 오롯이 기억해 뒀다가 눈빛을 빛내며 후배들에게 전달하는 선배 검사의 강의를 들으며 우리의 일이 사실은 정의감도 의협심도 아닌 두려움을 원동력으로 나아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두려워도 기어이 따라가 그 끝을 보고야 마는 사람에 의해 하나의 분야는 개척되고 마침내 그는 전문가가 된다. 매일 밀려오는 사건의 파도 속에 적당히 잊어가는 방식으로 업무의 효율성과 나름의 정신건강을 챙기며 일하는 검사들도 마음 한 켠, 어떤 사건을 만나 끝끝내 따라가 보기를 기대한다.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지점을 기꺼이 두려워한 사람이 마주할 수 있는 한 단계 다른 도약의 지점을 꿈꾼다.

정명원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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