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결국 세종청사 신청사(중앙동)에 ‘대통령 임시 집무실’을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만 연말에 중앙동으로 옮기고, 당초 계획했던 대통령 집무실은 1동 국무회의장 옆 기존 VIP 집무실을 활용하는 것으로 교통정리됐다. 본보의 ‘공약 후퇴’ 지적에 대통령실은 세종 집무실 설치는 계속 추진하는 만큼 “공약 파기가 아닌 재조정”이란 입장을 냈다. 기존 시설을 활용하면 150억 원을 아끼고, 두 부처의 중앙 배치로 행정 효율성도 꾀할 수 있다는 논리를 댔다. 임시 집무실 설치를 밀어붙이지 않아도 되는 명분이 많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중앙동은 가장 높고(지상 15층), 덩치도 큰(연면적 13만4,000㎡) 세종청사의 맏형 격이다. 대통령이 더 자주 찾아, 구석(1동)이 아닌 업그레이드된 청사에서 근무하면 관심이 집중될 게 자명하다. 무엇보다 ‘인(in) 수도권’만 외치는 지방인재와 기업들을 붙잡아 두는 국토 균형발전의 큰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서울에 비해 소외감을 느끼는 세종청사 공무원의 사기 진작에도 도움이 된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돈이 되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통령의 ‘공간’은 수도권 과밀화가 극심한 한국에선 엄청난 ‘무형’의 가치를 지닌다. 숫자만 봐도, 국토 12% 면적에 인구 50%, 생산(GRDP) 53%, 100대 기업 본사 86개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반면 출산율(0.78명)은 전국 평균(0.84명)을 밑돌고, 교통혼잡비로만 매년 36.8조 원이 증발한다. 정부는 나라살림이 어렵다는 핑계를 대지만, 국토 불균형도 우리 경제의 성장을 좀먹는 걸림돌임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윤석열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새 정부 비전부터 ‘어디에 살든 균등한 기회를 누리는 지방시대’다. 또 대선후보 시절엔 “세종 집무실에서 격주로 국무회의를 개최하겠다” “한 달에 한 번씩 중앙지방협력회의를 갖겠다” ”세종을 진짜 수도로 만들겠다” 등 지방우대 공약을 셀 수 없이 내놨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세종청사 중앙동 임시 집무실 설치’가 바로 윤 대통령 철학의 소산인 것이다.
윤석열 후보의 외침을 또렷이 기억하고, 그에게 표를 준 유권자는 그래서 혼란스럽다. 네 차례 해명자료를 내면서도 약속 번복과 계획 변경에 사과나 유감을 표하는 정부 입장은 일절 없었다. 그저 “공약 파기는 아니다”라는 말만 되뇔 뿐이다. 대통령의 언어는 품격 못지않게 무게감이 정치적 자산임을, ‘핵심관계자’들이 모를 리 없을 텐데 말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