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작년 7월 대통령 암살 이후 '권력 공백'
1~6월에만 934명 사망
수도 빈민가에선 최근 닷새간 234명 사상
"이곳이 진짜 전쟁터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추정조차 할 수 없어요."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의 무무자 무힌도는 '갱단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빈민가인 '시테 솔레이'의 참상을 이렇게 전했다. 지난 8일(현지시간)부터 이곳에선 지역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두 갱단 'G9'과 'GPEP'가 무력 충돌을 벌이고 있다. 공권력의 손길도 닿지 않아 완전히 무법천지가 됐다.
수도 빈민가 주도권 둘러싼 충돌, 8~12일 234명 사상
16일(현지시간)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8일부터 닷새간 시테 솔레이에서 최소 234명이 갱단의 폭력으로 숨지거나 다쳤다고 밝혔다.
희생자 대부분은 갱단과 상관없는 민간인이었다. 제러미 로런스 OHCHR 대변인은 "중무장한 갱단의 활동이 점점 정교해지고 있다"며 "동시에 다른 지역에서 조직적인 공격을 한다"고 말했다.
경상남북도를 합친 것과 비슷한 2만7,759㎢ 면적에 1,168만 명이 사는 아이티는 카리브해 최빈국이다. 지난해 7월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괴한에게 암살당하고, 8월에는 규모 7.2의 지진으로 최소 2,200명이 사망하면서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경제난에 정치·사회 혼란까지 겹치면서 특히 포르토프랭스는 절반 이상이 갱단의 손아귀로 넘어간 상태다. OHCHR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포르토프랭스 일대에서 집계된 인명 피해만 사망 934명, 부상 684명에 달한다.
최근 일주일 넘게 갱단이 전투를 벌이는 시테 솔레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시민 수천 명이 음식과 물 없이 갇혀 있다고 보도했다. 보복이 두려워 익명을 요구한 한 주민은 "빠져나가려고 하면 (갱단에 의해) 맞거나 살해당할 수 있어 시장에도 갈 수가 없다"며 "어린 시절부터 이곳에서 살았지만 이렇게 폭력적인 적은 없었다. 경찰도 구급차도 없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정치권이 키운 갱단, '권력 공백' 틈타 수도 장악
아이티 내 갱단은 △암살과 납치 △강간 △방화 △테러 △약탈 등 온갖 악행을 일삼고 있다. 2019년 기준 150개 이상이던 갱단 수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권력 공백'을 파고들어 세를 불린 것이다. 9개 갱단이 연합한 아이티 최대 갱단 G9 두목인 전직 경찰 출신 '지미 셰리지에'는 현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총리 사퇴"를 요구할 정도로 위세가 높아졌다.
이들을 키운 건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권이다. 셰리지에는 모이즈 대통령의 우파 정당과 결탁했다는 의심을 줄곧 사 왔다. 자신의 세력을 다지기 위해 정치권이 갱단을 비호하고, '정치 깡패'로 활용하다 손쓸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렸다는 게 지배적 시각이다. 이번 폭력 사태에 대해서도 가디언은 갱단이 정부와 보안군의 암묵적 지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아이티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전날 현지 유엔 사무소 활동을 1년 더 연장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전 세계 모든 나라에 무장 세력에 대한 소형 무기와 탄약 판매 등을 금지할 것도 함께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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