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용산서 동물권단체 집회...대통령실에 서한 전달
김건희 여사 "개 식용 종식" 바람에도 정부 논의 지지부진
29개 동물단체가 연대한 '개 식용 종식을 촉구하는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이 초복인 16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집회를 연다고 15일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동물권 보호를 옹호하는 가운데, 대통령실 근처 열린 집회라 주목을 받고 있다.
한데 국민행동의 요구는 일반의 전망과 사뭇 다르다. 일단 집회 제목부터 '개 식용 종식 촉구를 위한 정부 규탄 국민 대집회'다. 지난해 9월 27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개 식용 금지 검토'를 언급한 후 정부가 동물보호단체, 육견업계, 전문가가 참여한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까지 출범시켰지만,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했다.
국민행동은 "지난해 11월 구성한 사회적 논의기구는 무의미한 기한 연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며 "정부가 개 식용 종식에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국민행동은 내일 집회를 마친 뒤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전쟁기념관 앞까지 행진하고 대통령실 행정관에게 개 식용 종식을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할 예정이다.
김건희 여사 "개 식용 반대"... 정부 논의는 더뎌
김건희 여사는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경제 규모가 있는 나라 중 개를 먹는 곳은 우리나라와 중국뿐"이라며 개 식용 종식을 주장한 바 있다. 김 여사는 "(윤석열 정부에서) 동물 학대와 유기견 방치, 개 식용 문제 등에서 구체적 성과가 나오길 바란다"며 "한국에 대한 반정서를 가지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보편적인 문화는 선진국과 공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새 정부에서도 아직 이렇다 할 진전은 없다. 오히려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는 이달 4일 "개 식용 종식이 시대적 흐름이라는 공감대하에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 위원회 운영을 지속하기로 하고, 기한을 별도로 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초 운영 기간이 올해 4월까지였지만 지난달까지 한 차례 연장된 후 이번에 또다시 활동기간만 늘어난 것이다. 국민행동이 초복 날 대통령실 근처에서 집회를 여는 배경이다.
국내 개 식용 논란은 축산물 위생관리법 개정 후 본격화됐다. 정부는 1975년 관련법에 개를 합법적 도축과 식육검사가 가능한 가축에 포함했다가 1978년 제외했다. 현행법상 가축은 소·말·양·돼지·닭·오리·사슴·토끼·칠면조·거위·메추리·꿩·당나귀 등 13종. 식약처가 고시한 '식품에 사용할 수 있는 원료 목록'에도 개는 포함돼 있지 않다. 문제는 '13종 가축'은 도축부터 조리까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정기 위생검사를 받지만, 사각지대에 놓인 개는 이런 규정을 어겨도 처벌 규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법의 '사각지대' 놓인 개 식용... 국제 스포츠 대회 때마다 논란
이후 개 식용 논란은 국제 스포츠 대회와 '해외 반응'을 기점으로 전개됐다. 먼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개 식용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다. 1984년 2월 28일자 한국일보는 "오는 5월부터 서울 시내 전역에서 보신탕 뱀탕 개소주 토룡탕 등을 파는 것이 일체 금지된다"고 보도한다. 시는 시민에게 혐오감을 주고 도시미관을 해치는 이들 업소의 영업 행위를 제한하기 위해 4대문 안 등을 영업금지구역으로 고시했다고 나온다.
1991년 5월 9일자 한국일보에 게재된 '개‧고양이 등 함부로 못 잡는다' 기사에선 7월부터 동물보호법이 시행돼 보신탕을 만들기 위해 개를 나무에 매달아 때리거나 불에 그슬리다 적발되면 처벌받는다고 나와 있다. 올림픽 전후에 국제동물단체들이 한국인들의 동물학대행위를 금지해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고려해 동물보호법 제정을 추진했다는 설명이다.
경향신문은 1995년 3월 1일자에 프랑스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보신탕 판매 금지 요구를 한 내용을 전했다. 이듬해 12월 1일자에도 한국의 보신탕 관련 기사가 캐나다 언론에 보도되면서 현지 진출 한국 이미지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브리짓 바르도는 '월드컵을 유치하려면 보신탕은 먹지 말라'는 편지를 2002한국월드컵축구유치위원회에 보내며 또 한 번 유명세를 치른다. 개 식용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앞두고도 다시 논쟁이 됐다. 해외 동물보호단체들이 한국의 개 식용에 항의 서한을 보내자 강원도는 평창, 강릉 일대에 있는 보신탕 식당의 간판을 바꾸기도 했다.
동물권단체들 중복·말복에도 관련 행사 이어가
최근의 개 식용 논란은 국내 반려 인구가 늘면서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과 관련이 깊다. 관련 법도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제21대 국회에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 식용 금지를 위해 2020년 12월 발의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개나 고양이를 도살·처리해 식용으로 사용하거나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지금은 명시적인 식용 금지 규정이 없다. 개정안은 지난해 2월 소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상정된 후 별 진전이 없는 상태다. 상임위의 법안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농림부는 개, 고양이의 식용 금지는 생산자, 영업자, 동물보호단체, 관계 부처 등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라며 이해당사자 간 충분한 사전적 논의를 통해 추진될 필요가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보였다.
정부의 지지부진한 태도에 동물권 단체들은 중복(26일), 말복(8월 15일)에도 관련 시위를 이어간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그만먹개(犬) 캠페인 2022'와 개 식용 산업의 조속한 종식을 촉구하는 릴레이 영상을 제작해 초복, 중복, 말복에 맞춰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그만먹개 캠페인 2022는 동물권 향상과 개 식용 금지를 주장해 온 문화예술인들이 올해를 한국의 개 식용 종식 선언의 해로 만들고자 자발적으로 결성한 모임이다.
국민행동은 "보신 또는 식문화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유린하고 법질서를 훼손하는 개 식용 산업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엄중한 단속과 처벌 등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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