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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세권·역세권을 앞서는 IT업계의 'M버스권'

입력
2022.07.16 04:30
수정
2022.07.18 09:17
23면
0 0
최연진
최연진IT전문기자
터미널에 정차 중인 광역버스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터미널에 정차 중인 광역버스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여전히 개발자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 신생기업(스타트업) 대표들로부터 특이한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개발자 채용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가 두 가지인데 재택근무와 광역급행버스(M버스), 이른바 '광역버스권'이다. 둘 다 출퇴근과 관련 있다. 재택근무는 아예 출근을 하지 않으니 개발자가 가장 선호하는 조건이고, 그다음이 광역버스권이다.

광역버스권이란 회사 근처에 M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이 가까운 곳을 말한다. 이를 따지는 이유는 정보기술(IT) 개발자들 대부분이 경기 판교, 분당, 용인 등에 많이 살기 때문이다. 판교와 분당은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 등 이른바 빅테크로 분류되는 IT기업들이 몰려 있어서 개발자들도 이 지역에 주로 자리를 잡는다. 그렇다 보니 스타트업들이 이런 곳에서 일한 경험 있는 개발자들을 뽑으려면 최소한 M버스가 닿는 지역에 회사가 있어야 한다. M버스는 몇 개 정류장만 거치기 때문에 지하철로 1시간 가까이 걸리는 출퇴근 시간을 절반으로 줄여준다.

그래서 개발자들에게는 광역버스권이 지하철 역세권보다 중요하다. 어떤 개발자들은 M버스가 서는 지역인지 사전에 알아보고 나서 지원하고, 그렇지 않은 지역에 회사가 있으면 대표에게 대놓고 이사 갈 계획이 없냐고 묻는다. 창업 당시 서울 여의도에 있었던 에듀테크 스타트업 코코지의 박지희 대표도 지원했던 개발자 전원이 "강남으로 언제 이사 가냐"고 물었다고 전했다. 박 대표에 따르면, 강남으로 이사한 코코지 개발자 가운데 절반이 경기 판교, 분당, 용인에 살고 있다. 그 바람에 광역버스권으로 회사 이전을 고민하는 스타트업이 여럿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유 사무실업체 위워크의 국내 지사도 서울의 각 지점 위치를 정할 때 광역버스권을 따진다. 위워크에 따르면, 같은 강남이어도 광역버스권에 따라 지점별 선호도가 갈린다. 광역버스권에서 떨어진 삼성점이나 청담점은 강남, 역삼, 선릉점 등에 비해 선호도가 덜하다. 강북에서도 M버스가 서는 위워크 지점과 그렇지 않은 위워크 지점의 선호도가 확연하게 갈린다.

스타트업 대표들도 사무실을 정할 때 당연히 광역버스권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훌륭한 건물이 좋은 조건에 나와도 광역버스권에서 벗어나면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인공지능(AI) 개발업체인 마인드로직의 김용우 공동대표도 이런 이유로 여러 지역을 놓고 고민하다가, 위워크 서울 을지로점에 터를 잡았다. 건물 바로 앞에 M버스가 서기 때문이다.

광역버스권이 부상한 배경에는 이왕 터전을 잡았으니 이사를 가기 싫어하는 심리도 있지만 한편으로 청년들이 서울 집값을 감당하기 힘든 슬픈 현실도 배어 있다. 서울의 집값이 너무 올라서 월급을 모아 집을 사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 꿈도 꾸지 못할뿐더러 강남 지역의 전세나 월세를 얻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그러니 광역버스권을 따지는 것이 그나마 최선의 방법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청년들을 마냥 편한 것만 쫓는다고 탓할 수만도 없다. 재택근무가 대세인 스타트업의 기업문화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재택근무는 채용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자 경쟁력이다. 이마저도 힘들면 광역버스권으로 회사를 옮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서울에 주택공급을 무한정 늘릴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M버스의 확대 등 인프라 지원을 고민해봐야 할 듯싶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사정이 있으니 쉽게 말하기 힘들지만 이 또한 청년들과 스타트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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