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자회사 아비커스 자율운항선박 타보니
선장 없이도 '알아서 척척' 운항
"확산되면 '뱃놀이 트렌드' 바뀔 듯"
"플레이(play) 버튼을 누르면 배가 출발합니다."
12일 인천 중구 왕산마리나 앞바다. 멈춰 선 10인승 레저보트 선장이 조타실에서 나와 보조석으로 자리를 옮기자, 이준식(36) 아비커스 소형선 자율운항 팀장이 취재진에게 태블릿 버튼을 누르도록 권했다. 기자가 직접 '시작' 버튼을 누르자 레저보트는 경쾌하게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5노트(시속 9.26km)로 달리던 아비커스 레저보트는 태블릿에서 노랫소리를 높이듯 버튼을 조작하자 최대 20노트(시속 27km)까지 속도를 높였다.
이 팀장은 "인터넷만 연결되면 어디서든 배를 운항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선보인 자율운항선박은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 아비커스가 개발한 항해보조시스템 '나스 2.0'이 탑재된 선박으로, 선체를 움직이거나 멈추는 기능뿐 아니라 출발지와 목적지를 설정해 두면 자동으로 항로 계획을 만들고 스스로 운항하는 점이 기술의 핵심이다. 물론 스마트폰으로도 조작 가능하다. 이 선박이 '바다 위 테슬라'로 불리는 이유다.
마주 오는 배 알아서 피하고, 부표도 회피
전자 해도(海圖)에 목적지를 설정한 뒤 약 20분 동안 2.5㎞가량의 바닷길을 달린 레저보트는 수동 운전 없이 정해진 항로를 무사 완주했다. 카메라와 인공지능(AI)이 날씨와 파도 등 주변 환경과 선박을 인지해 실시간으로 선박에 조타 명령까지 내린 점은 놀라웠다. 부표나 암초를 스스로 피해 가고, 앞에서 선박이 다가오자 스스로 항로를 바꾼 뒤 기존 항로로 복귀하기도 했다.
차량의 주차에 해당하는 접안도 '알아서 척척'이었다. 아비커스 관계자는 "접안은 자동차의 주차와 같이 운항 면허를 가진 사람들도 어려워하는 작업"이라면서 "이 보트는 측면과 후면에 설치된 6대의 카메라를 활용해 선박의 주위 상황을 파악해 알아서 뱃머리를 돌려 빈 공간에 선체를 넣는다"고 했다. 사람은 접안된 배를 줄로 묶어 고정해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 이는 자동접안시스템 '다스 2.0'이 탑재된 데 따른 기능이라는 게 관계자 설명이다.
지난달엔 LNG 운반선으로 태평양 횡단
2020년 12월 출범한 아비커스는 지난해 6월 국내 최초로 포항 운하에서 12인승 크루즈 선박의 완전 자율운항을 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SK해운의 초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프리즘 커리지'호에 아비커스 기술인 '하이나스 2.0'을 넣어 태평양 횡단에 성공했다. 미국 남부 멕시코만 연안에서 출발, 충남 보령 LNG 터미널까지 자율운항으로 33일 만에 도착한 것이다.
이처럼 대형 상선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했지만, 임도형 아비커스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상대적으로 수가가 높은 상선보다 레저보트 시장에 힘을 쏟겠다는 뜻을 전했다. ①레저 스타일에 적합한 기능인 데다 ②상대적으로 많은 선박에 탑재 가능하고 ③개조 시장도 충분히 열려 있다는 이유에서다.
"어선·경비선 등에도 탑재 가능"
임 대표는 "상선의 한 해 생산량은 전 세계적으로 500척도 안 되지만, 레저보트는 연간 20만 척씩 만들어진다"며 "이미 생산된 1,000만 척 수준의 배에도 시스템을 새로 탑재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봤다. 이 밖에도 충돌과 좌초 등 해양 사고를 막기 위해 이미 운항 중인 어선과 경비선 등 다양한 소형 선박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게 아비커스의 관측이다.
임 대표 예상대로 레저보트 자율운항이 확대되면 뱃놀이의 트렌드가 확 바뀔 것으로 보인다. 가족 중에 조정면허 소지자가 없어도 한강 위에서 '가족 모임'이 가능해지고, 해운대 앞바다 단둘이 데이트도 가능하단 얘기다. 임 대표는 "현재 자율운항 솔루션 '하이나스'는 210개나 수주에 성공했는데 이렇게 빠른 속도로 상용화된 경우는 찾을 수 없었다"고 밝히며 시장 확대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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