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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소개소에 월 회비 내는데, "일감 없어도 환불 안 돼"

입력
2022.07.21 17:00
수정
2022.09.07 19:58
8면
0 0

[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36>무법지대 직업소개소: 억울한 월 회비
가사·파출·간병직 월 회비 내며 구직활동
규정 따른 올해 월 회비 최대 7만 6500원
한국일보가 15개 직업소개소 확인 결과
회비 더 받고, 건별 수수료 떼는 현상 허다
명백한 고용부 고시 위반, 실제 단속 안돼

서울 대림동의 한 직업소개소 입구에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대림동의 한 직업소개소 입구에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한국일보 자료사진

"회비 있죠. 월 9만 원."(A직업소개소 사장)

"회비를 내면 한 달에 최소 몇 번은 일을 보내주신다는 보장이 있나요?"(기자)

"저기요, 일을 잘하면 한 달 내내도 일은 들어오죠. 본인이 잘하시면 돼요.”(사장)

“혹시 일거리를 못 받으면 환불은 되나요.”(기자)

“환불? 그냥 한 달 내고 다니시는 거예요. 한 달 치인데 무슨…”(사장)

현행법상 직업소개소가 구직자에게 일자리를 주선하고 수수료를 받는 방법엔 임금 중 일정 비율을 떼는 방식과, '월정액제'를 적용하는 회원제 방식이 있다.

중년 여성 노동자가 대다수인 가사·파출·간병 직종을 중개하는 직업소개소들은 보통 평생 가입비나 월 회비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받은 뒤 일거리를 알아봐 준다. '회비 선납' 구조인 것이다.

문제는 회비를 내도 일거리를 제대로 못 받았을 때다. 직업안정법에는 수수료 제한 규정은 있어도, '월 최소 몇 회 소개'와 같이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직업소개소의 의무사항에 대해 밝힌 대목은 전무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식당 등 자영업이 어려웠을 시기에, 회비는 회비대로 내고 제대로 일은 못 나가는 파출 노동자들이 많았던 이유다.

노동법 연구회 '귤한조각'에서 노동자 상담을 하는 똘레랑(활동명)씨는 "코로나 초 일거리가 없을 때는 한 파출 노동자에게 한 달 회비로 7만 원을 받고, 두세 번만 일을 소개해 준 경우도 봤다"며 "사흘 치 일당을 받겠다고 하루 일당(7만 원)을 월 회비로 내는 건 누가 봐도 중간착취"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서울·경기 지역 15개 직업소개소들에 파출 일자리를 구하는 척 전화를 걸어 수수료 규정에 대해 물었다.

'근무 보장이 되냐'는 질문에 양심적으로 답하는 곳도 두세 곳 있었다. “소개를 못 받으면 당연히 환불해 준다”든가 “우리도 일이 얼마나 들어올지 몰라 건수 보장은 못 해줘도, 일을 못 받으면 보통 회비 기간을 연장해 준다”는 식이다. 나머지는 전부 "환불 규정 같은 건 없다"고 딱 잘라 대답했다.

가사·파출·간병 직종을 중개하는 직업소개소들은 대개 정해진 월 회비를 받는 회원제로 운영된다. 그러나 법에는 월 회비 상한선은 있어도, 소개 의무에 대한 규정은 없어 소개소 사장의 양심에 맡겨진 실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가사·파출·간병 직종을 중개하는 직업소개소들은 대개 정해진 월 회비를 받는 회원제로 운영된다. 그러나 법에는 월 회비 상한선은 있어도, 소개 의무에 대한 규정은 없어 소개소 사장의 양심에 맡겨진 실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고용노동부 고시(국내유료직업소개요금 등 고시)에 따르면, 회원제 운영 시에 직업소개소가 구인자와 구직자 각각에게 받을 수 있는 월 회비 최고 액수는 2022년도 기준 7만 6,577원이다. '시간급 최저임금을 월 209시간 기준으로 월 단위 환산한 금액의 4% 이내 범위'으로 받게 돼 있기 때문이다. '월 회비 외에 추가 소개요금을 징수할 수 없다'고도 규정돼 있다.

그러나 실상 추가 수수료 없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월 회비만 받는 곳은 절반(15곳 중 8곳)에 불과했다. A업체(월 9만 원)처럼 정해진 상한선을 넘기는 곳이 있는가 하면, 가입비 6만 원에 근무 건마다 수수료 10%를 따로 받는 곳, 연간 회비 몇 만 원에 건당 콜(호출) 비를 1,000원씩 받는 곳 등 중구난방이었다. 노동자들이 수수료 규정을 잘 모른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회비 선납에도 일자리 보장은 안 된다는 건 이미 10여 년 전 지적된 내용이다. 2010년 직업안정법 개정 관련 국회 토론회에서 민주노총 법률원 박주영 노무사는 “근로계약 성립과는 상관없이 일정 기간마다 받는 회비 관행을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만으로 합법적인 것으로 법률에 명문화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구직자에게 강제적으로 금품을 징수하는 회원제 수수료를 허용하는 건 중간착취의 관행을 합법적으로 방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회비 산정시 '월 209시간 근로'를 기준으로 삼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똘레랑씨는 “식당 파출 같은 일용 노동자는 일을 나가는 업체가 매번 바뀌기 때문에, 주휴수당(근로기준법상 1주일 동안 소정의 근로일수를 개근하면 받을 수 있는 유급휴일에 대한 수당)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주휴수당을 받는 월급제 노동자처럼 월 회비를 계산하니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209시간은 '하루 8시간·주 5일 근로'에 주휴시간 8시간을 포함해 한 달(4.3주)로 환산한 수치다.

고용부 고용서비스정책과 관계자는 "회원제 형식으로 소개되는 직종 중에도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에 포괄적으로 고시를 정한 것"이라고 답했다.

[알려왔습니다]

직업소개소에 월 회비 내는데, "일감 없어도 환불 안 돼" 관련,
이에 대해 상당수 직업소개소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사단법인 전국고용서비스협회는 “협회 소속 직업소개소 대부분은 구인자 및 구직자로부터 적법한 범위에서 각각 회비를 징수하고 있고, 월 회비를 납부한 일용근로자로부터는 추가 소개요금을 징수하고 있지 않다”라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이 보도는 정정보도가 아닌 반론보도입니다. 반론보도는 기사에는 잘못된 부분이 없으며, 다만 이해 관계자의 다른 주장을 반영해주는 의미를 지닙니다.


최나실 기자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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