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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티노=꽃 핑크, 강렬한 브랜딩

입력
2022.07.12 20: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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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박소현패션 칼럼니스트

편집자주

패션칼럼니스트 박소현 교수가 달콤한 아이스크림 같은 패션 트렌드 한 스쿱에 쌉쌀한 에스프레소 향의 브랜드 비하인드 스토리를 샷 추가한, 아포가토 같은 패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고급 기성복 맞춤복) 2022·23 FW 컬렉션에서 앤 해서웨이(왼쪽)와 화사(오른쪽 두번째). EPA 연합뉴스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고급 기성복 맞춤복) 2022·23 FW 컬렉션에서 앤 해서웨이(왼쪽)와 화사(오른쪽 두번째). EPA 연합뉴스

"핑크색의 침공인 걸까" 싶을 정도로 요 며칠 핑크색의 발렌티노 걸들로 물든 소셜 미디어가 눈을 사랑스럽게 감쌌다. K팝 스타인 마마무의 화사부터 할리우드의 영원한 공주님인 앤 해서웨이까지 꽃 핑크색 일색이다.

이렇게 색깔로 브랜드를 어필했던 패션 브랜드는 발렌티노가 처음은 아니다.

작년에 한창 모든 소셜 미디어를 도배했던 보테가 베네타가 선보인 특별한 전시, '더 메이즈(THE MAZE)'는 스마트폰 창을 온통 초록색으로 가득하게 했다. 그 전시 관람에 걸리는 시간은 짧은 편이었지만 그 색의 여운은 길었다. 관람객들이 남긴 초록색 인증사진들이 소셜 미디어를 가득 메웠기 때문이다. 올해의 발렌티노는 보테가 베네타를 벤치마킹한 걸까?

사실 이렇게 브랜드가 어떤 한 가지 색으로 자신의 매력을 선보인다는 것은 브랜드의 상징을 색으로 보여주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이전까지는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 되어 주는 브랜드의 쇼핑백과 브랜드 제품 상자에 많이 쓰였다.

에르메스는 잘 익은 오렌지의 주홍색을, 샤넬은 그 샤넬 그대로의 흑백을 쇼핑백과 브랜드 제품 박스에 쓰며 브랜드 상징인 카멜리아 꽃 모티브로 장식했다. 펜디는 강렬하고 풍요로운 이탈리아의 햇살과도 같은 노란색을, 구찌는 한동안 골드가 감도는 브라운색을 쓰다가 알렉산더 미켈레 이후로는 아름다운 무늬가 섞인 톤다운된 올리브색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요즘엔 왜 소셜 미디어를 브랜드의 색으로 물들이는 걸까?

이를 먼저 시작한 보테가 베네타를 보자면, 그 이전까지는 어린 학생들의 물감에서나 볼 수 있던 원색 초록색이 그 색감 자체의 아름다움은 있지만, 그 어느 패션 브랜드도 브랜드의 색으로 쓰려고 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보테가 베네타가 그 초록색을 브랜드에 썼을 때 아주 선명하게 각인되는 효과를 나타낼 수 있었다. 약간 색깔의 신대륙과도 같았달까? 색의 주목도 또한 높아서 현재 소셜 미디어가 소비되는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화면 안에서도 정확하게 색만으로 브랜드가 각인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번에 발렌티노의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고급 기성복 맞춤복) 2022·23 FW 컬렉션을 상징하는 '발렌티노 Pink PP'는 이런 광고용 색채에 단골로 사용되는 쇼킹 핑크색도 아니고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딸기우유의 핑크도 아니다. 그야말로 봄에 피는 진달래마냥 쨍한 꽃 핑크다. 립스틱으로만 작게 보았을 그 색 말이다.

발렌티노의 이번 오트 쿠튀르 컬렉션 명칭이 '발렌티노 더 비기닝'이라서 봄을 상징하는 꽃 핑크로 모두를 물들인 걸까? 이 추측은 절대로 틀릴 수가 없다고 말하듯 화사는 한국 공항을 출국하는 그 순간에도 위에 입은 하얀 티셔츠만 빼고는 모두 '발렌티노 Pink PP' 색상으로 풀 착장을 했다. 쇼 행사장에서는 화사도 그렇지만 배우 앤 해서웨이도 이 꽃 핑크색이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스팽글 소재로 된 미니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계단 한 칸 정도로, 족히 15㎝가 넘는 높은 구두를 신고 말이다.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이 높이의 힐을 신은 사람들을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그런 높이의 신발이었다. 발렌티노는 이번 컬렉션을 제공받은 모두가 이탈리아식 정원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조각상마냥 사람들이 우러러보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여름 장마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곧 가을인데 패션은 벌써 내년 봄을 겨냥하고 있다. 이렇듯 눈이 시릴 정도로 색깔로 어필하는 브랜드는 해가 바뀌어도 기억에 남으니 발렌티노는 첫 삽을 잘 푼 건지도 모르겠다. 신생 브랜드라면 이런 색깔 마케팅으로 기선 제압을 하는 것도 좋겠다.

박소현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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