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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겠다" 싶은 일용노동 후, '10% 임금 떼기' 신고해봤다

입력
2022.07.19 17:00
수정
2022.09.07 19:57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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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34>무법지대 직업소개소: '1%룰'의 농간
규정 넘어선 수수료 떼기 신고하자
공무원 대신 직업소개소 사장 전화
"구인자 몫 수수료 합쳐 뗀 것" 항변
고시가 정한 사전 동의서 없었지만
조사 없이 '실수' 처리, 허망한 결과

대학생 장상민씨는 건설 일용노동을 하고 직업소개소에서 10%의 수수료를 떼였다. 일용노동 현장에 가기 전 인근에서 잠시 대기 중인 상민씨 옆에 각종 인력사무소 홍보 스티커가 보인다. 최나실 기자

대학생 장상민씨는 건설 일용노동을 하고 직업소개소에서 10%의 수수료를 떼였다. 일용노동 현장에 가기 전 인근에서 잠시 대기 중인 상민씨 옆에 각종 인력사무소 홍보 스티커가 보인다. 최나실 기자

업무는 자재 옮기기. 쓸모를 다한 모델하우스를 철거 기공들이 부수면, 부순 자재를 옮기는 잡부 역할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50분, 휴식을 위한 첫 '흡연 타임'이 주어질 때 얼굴에서 여유가 싹 가셨다. '죽겠다 싶으면 담배 피우러 가라'는 게 몇 차례 반복된 뒤에야, 오후 4시 30분 드디어 작업이 끝났다.

땀과 분진 범벅의 노곤한 몸을 이끌고 1층으로 터덜터덜 내려오자, 사장님이 “고생했어요. 돈은 다 회사(직업소개소)로 보냈으니 받으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대학생 장상민(26)씨는 지난 4월 27일, 직업소개소(인력사무소)를 통해서 하루 약 7시간을 일하고 그날 저녁 14만 4,000원을 입금받았다. 원래 일당은 15만 원이라고 들었는데, '다들 일을 잘해줬다'면서 모델하우스 사장님이 1만 원을 올려줬단다.

일당 16만 원의 10%인 1만 6,000원은 직업소개소가 떼갔다. 현행법상 유료 직업소개소가 구직자(노동자)에게 받을 수 있는 최대 수수료는 임금의 1%인데, 현장에선 10%를 떼는 현상이 관행화돼 있다.

사실 상민씨는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이 섭외한 일꾼이다. 한국일보는 상민씨를 통해 '10% 떼기'라는 '불법'을 신고해봤다. 결과는 어땠을까.

임금의 10%를 떼이다

장상민씨가 인력사무소에 문자로 간단한 인적사항을 보내면 근무 장소를 배정하고 일당을 알려줬다. 근로계약서는 쓰지 않았다. 최나실 기자

장상민씨가 인력사무소에 문자로 간단한 인적사항을 보내면 근무 장소를 배정하고 일당을 알려줬다. 근로계약서는 쓰지 않았다. 최나실 기자

"제가 경험이 없는데… 초보자도 일할 수 있는 건가요?" 상민씨가 서울 소재 ‘○○인력’에 전화해 물었다. "예, 뭐. 그냥 청소 같은 거 하셔도 되고, 보통 임금은 14만 원 정도 해요. 돈 받으신 거에서 10% 저희 쪽에 보내주시면 되고요."

‘건설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과 안전화, 막 입을 작업복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인력’은 인적사항 등을 문자로 보내 등록하고, 일할 수 있는 날을 공지하면 일감이 배정되는 시스템이었다. 4월 말 형식대로 문자를 보내자 ‘[○○인력] 내일 오전 08:00 △△구 ××건물 2층 전시관’ ‘단가 150,000원, 개인통장 받으세요’라는 알쏭달쏭한 답신과 함께 곧 일이 주어졌다.

건설 일용 근무 현장에 들어가기 전 안전화을 착용한 장상민씨. 이날 하루 7시간 노동을 마친 후에는 녹초가 됐다. 최나실 기자

건설 일용 근무 현장에 들어가기 전 안전화을 착용한 장상민씨. 이날 하루 7시간 노동을 마친 후에는 녹초가 됐다. 최나실 기자

근로계약서 작성 절차는 가뿐하게 생략됐다. “철거 작업이고, 근무 시간은 현장마다 다른데 보통 아침 6시 반, 7시 반쯤 시작해 5시 전엔 끝날 것”이라는 설명이 전부였다.

법적으로는 일용직도 근로조건에 대한 '서면 합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임금과 근로조건, 업무내용 등 노동자로서 알아야 할 기본사항이다. ‘기간제 및 단기간 근로자 보호법’에 따라 근로조건을 서면 명시하지 않으면 50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물게 돼 있지만, 단속 없는 법은 죽은 법이나 마찬가지다.

장상민씨가 일한 철거 현장에는 부서진 파편과 각목, 못, 건설 스테이플러심 등 찔리거나 다칠 위험이 높은 자재들이 많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장상민씨 제공

장상민씨가 일한 철거 현장에는 부서진 파편과 각목, 못, 건설 스테이플러심 등 찔리거나 다칠 위험이 높은 자재들이 많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장상민씨 제공

4월 27일 오전 7시55분 상민씨는 ××건물에 도착했다. 검정색 운동복과 안전화 끈을 단단히 묶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난장판이었다. 165㎡(50평) 넘는 공간엔 목재 등 공사 자재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고, 이미 철거 작업을 시작한 상황. ‘구인자’인 모델하우스 업체 사장님과 작업반장, 업체 소속 직원 2명에 직업소개소 2곳에서 모인 10명의 일용직 노동자가 함께 일했다. 사장님이 준 분진 마스크를 썼다.

인력업체가 떼는 금액은 이날 한 시간 시급과 비슷했다. 녹초가 돼 하루 일을 마친 상민씨가 말했다. 처음엔 신고할 목적으로 일을 하는게 미안하기까지 했단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처음엔 별생각이 없었는데, 일을 하다 보니 구인·구직 정보 취합과 사무 처리, 사무실 운영에 드는 품이 땀 흘린 한 시간 노동과 같은 값어치인가 하는 생각은 들었어요.”

7시간의 노동을 마친 뒤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온몸은 땀과 분진 범벅이 됐다. 최나실 기자

7시간의 노동을 마친 뒤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온몸은 땀과 분진 범벅이 됐다. 최나실 기자


"여기선 신고 안받는다"는 고용청

직업안정법 제19조 제3항은 다음과 같이 명시돼 있다. '등록을 하고 유료직업소개사업을 하는 자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결정·고시한 요금 외의 금품을 받아서는 아니 된다.'

이에 따라 고용부 고시(국내유료직업소개요금 등 고시)는 구체적인 기준을 정했다. '고용기간이 3개월 미만인 경우: 고용기간 중 지급받기로 한 임금의 100분의 1 이하'가 수수료이다.

고시가 정한 1%가 아닌 10%를 떼인 상민씨와 함께, 기자는 2주 뒤 서울의 한 지방고용노동청을 찾았다.

“신고하실 거면, 저기 앉아서 (진정서) 쓰세요.”

고용청 민원실에 들어가자 진정서를 쓰라고 했다. 쓰다 보니 헷갈려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대화는 황당했다.

고용청 민원실에서


“저는 수수료를 과하게 떼였다는 걸 신고하려는 건데요. 여기서 못하나요?”(상민)

“계약하신 임금은 다 받으신 거 아닌가요? 수수료도 얼만지 알고 일하신 거죠? 동의하시고 한 것 아닌가요?”(직원)

“직업소개소에서 수수료가 10%라고 설명해서 처음엔 그냥 그런 줄 알고 일했는데, 나중에 법을 보니 1%라고 해서요.”(상민)

“그런 법이 있나요?”(직원)

직원이 도리어 반문했다. 다른 직원이 “아마 직업안정법에 있을 텐데, 여긴 임금체불만 신고가 되니 고용관리과로 가보세요”라고 안내했다.

위층 고용관리과에서 돌아온 답도 허무했다. 한창 설명을 하니, “국외 지역으로 일을 다녀오신 거냐?”라는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알고 보니, 국내 유료직업소개소는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국외 유료직업소개소는 고용부에 등록하도록 돼 있어서 관리 주체도 다르단다.

직원은 “관할 구청에서 신고하시라”고 했다. ‘신고하면 돈(수수료)을 돌려받을 수 있냐’고 묻자 “그건 저희도 잘 모른다”고 했다. 웬만한 근성이 아니면, 신고할 곳 찾다가 그냥 포기할 듯싶었다.

2주 뒤 상민씨와 기자는 서울 소재 지방고용노동청을 찾았다. 노동·임금과 관련한 문제이니 당연히 고용청 관할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아온 답은 "임금체불 문제가 아니니 여기서는 신고할 수 없고, 직업소개소는 지방자치단체 관할이니 그쪽에 신고하라"는 설명이었다. 최나실 기자

2주 뒤 상민씨와 기자는 서울 소재 지방고용노동청을 찾았다. 노동·임금과 관련한 문제이니 당연히 고용청 관할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아온 답은 "임금체불 문제가 아니니 여기서는 신고할 수 없고, 직업소개소는 지방자치단체 관할이니 그쪽에 신고하라"는 설명이었다. 최나실 기자


구청에 신고했다, 그러나…

인력사무소 소재 구청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구청 직원과는 말이 통했다. 우선 ‘1%’만 떼도록 돼 있는 게 맞단다. 근로계약서나 '수수료 대리수령 동의서'는 썼냐고 물어서, “그런 건 전혀 얘기가 없었다”라고 답했다.

근무한 날이 하루라고 하자 조금 놀란 걸 빼고는, 구청 직원은 흔히 있는 일이라는 듯 익숙하게 응대하며 “10%를 뗀 게 맞나 조사해보고, 늦어도 내일까지 회신을 주겠다”고 했다. 그의 약속에 마음이 좀 놓였다.

한덕수(왼쪽) 국무총리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5월 27일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의 한 인력업체를 둘러보고 있다. 뉴스1

한덕수(왼쪽) 국무총리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5월 27일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의 한 인력업체를 둘러보고 있다. 뉴스1

그런데 구청보다 먼저 연락이 온 건 ‘○○인력’이었다. 신고 후 1시간여 만이었다. 인력사무소 대표가 직접 전화를 걸어, 친절한 말씨로 ‘오해’라고 해명했다.

“저희만 그런 게 아니라 국내 대부분 업체를 가보셔도 다 이렇게 수수료 계산을 해서 보내드리고 있거든요. 원래는 상민씨에게 저희가 1%를 받고, 업체에서 10%를 받고 총 11%를 받게 돼있는데, 금액을 따로따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통으로 들어오게 돼요. 저희가 노임을 16만 원이라고 안내를 해드리긴 했는데, 여기에 이미 업체 수수료랑 상민씨 수수료가 포함된 거예요. 보통 여기 일 오시는 분들은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라 저희가 자세히 설명드리지 못했어요.”

‘악마의 디테일’이 여기 있었다. 국내유료직업소개요금 등 고시엔 건설일용의 경우 구인자(사용자)에게는 10% 이하의 소개요금을 뗄 수 있게 돼 있고, 직업소개소가 노동자(구직자)와 소개요금 대리수령 동의서를 작성하면 구인자 수수료까지 노동자가 한꺼번에 받아 직업소개사업자에게 전달할 수 있게 돼 있다.

결국 상민씨가 고지받은 16만 원에 사실은 구인자 수수료 10%가 포함돼 있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근로계약서 작성도 대리수령 동의서 작성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력'은 '잘 모르는 네가 오해한 것일 뿐 위법이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더구나 구인 업체가 16만 원과 별도로 구인자 몫 수수료를 냈는지 여부는 알 방도가 없다.

내일까지 연락을 주겠다던 구청의 판단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불법은 '실수'로 둔갑했다

바로 준다던 연락은 2주가 지나도 없었다. 결국 먼저 전화를 걸었다. 허무한 대화였다.

구청 담당자와 대화


“2주 전에 수수료 때문에 전화한 사람인데요. 연락이 없으셔서,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해서 연락 드렸어요.”(상민)

“아, 인력사무소에서 직접 통화해서 설명을 다 드렸다고 해서요. 이해하셨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따로 연락 안 드렸어요. 공고상에 있던 일금이라는 게 사실 업체(구인자) 몫의 수수료(10%)까지 다 포함된 금액이었던 거예요. 인력사무소 실수라면 실수랄 게, 수수료 제외한 금액을 급여로 기재했어야 했는데, 포함한 거죠.”(직원)

“음, 네.”(상민)

“그 부분은 제가 구두로 시정 요구를 했고요. 별도로 행정처분을 할 만한 문제점은 없는 것으로 보여서요.”(직원)

“근데 고지가 제대로 안 된 건 미숙해서라고 해도, (대리수령) 동의서는 원래 꼭 작성해야 하는 거 아녔나요?”(상민)

“하면 좋은데… 동의서 자체를 작성하지 않았다 해서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직원)

“아, 작성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건가요?”(상민)

“… 원래 하는 게 맞겠죠. 지금처럼 이렇게 오해를 하실 수 있는 소지가 있어서 사전 안내를 드려야 되는 건데, 그게 누락된 거 같습니다.”(직원)

“그럼 그것 때문에 제가 수수료를 돌려받거나, 업체 측에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말씀이시죠?”(상민)

“네…”(직원)

'불법'은 가볍게 '실수'가 됐고, '구두 경고'로 마무리됐다. 인력업체는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고, 노동자는 떼인 돈을 돌려받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직업안정법상의 '1% 수수료' 상한 조항은 현실에서 완벽하게 무력화됐다.

법의 무력화, '중간착취' 시장의 성황

고용부 고용서비스정책과에도 물었다. "노동자가 일당을 13만 원이라고 들었는데 직업소개소에서 1만 3,000원을 떼고 11만 7,000원만 줬다면 위법 아니냐.”

담당 사무관이 조금 주춤했다. “근로계약서상으로만 말씀드리면 그건 잘못된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계약서에 명시적으로 일급 13만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면, 위법한 게 맞다는 소리다.

서울 대림동의 한 직업소개소 입구에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대림동의 한 직업소개소 입구에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럼 계약서를 안 쓰거나, 못 쓰고 구두로만 '13만 원' 소리를 들었다면? “다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일당인 건지, (구인자 몫) 수수료가 포함된 일당인 건지 분명하지 않아서요. 현장 소장(구인자) 입장에서는 소개 영업비를 포함해서 13만 원을 줬다. 이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는 거거든요.”

결국 '서면 계약서' 작성 없이는 돈이 부당하게 뜯겼는지, 아닌지를 다투기도 어렵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을'(乙)의 위치인 일용직 노동자가 당당하게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할 수 있을까.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파견·용역·일일(단기) 근로자가 포함되는 ‘비전형 근로자’의 근로계약서 서면 작성 비율은 모든 고용 형태를 통틀어서 가장 낮은 53.6%로 조사됐다. 기간제 근로자(94.3%)나 정규직 근로자(79.7%)의 작성 비율과 비교할 때 한참 낮은 수치다.

올해 4월 기준 국내 등록 유료직업소개소는 1만 4,404개. 신고 처리 과정을 지켜보니 '중간착취 시장'이 성황을 이루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알려왔습니다]

"죽겠다" 싶은 일용노동 후, '10% 임금 떼기' 신고해봤다 관련,
이에 대해 상당수 직업소개소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사단법인 전국고용서비스협회는 “협회 소속 직업소개소 대부분은 대리수령동의서, 소개요금약정서 작성 후 구직자 본인의 임금을 제외한 구인자 부담 소개요금을 구직자로부터 전달받는 등 적법하게 운영되고 있다”라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이 보도는 정정보도가 아닌 반론보도입니다. 반론보도는 기사에는 잘못된 부분이 없으며, 다만 이해 관계자의 다른 주장을 반영해주는 의미를 지닙니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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