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잠정 폐지' 3년… 병원 가긴 여전히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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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잠정 폐지' 3년… 병원 가긴 여전히 힘들다

입력
2022.07.13 16:00
수정
2022.07.1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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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훈성 논설위원이 노동ㆍ건강ㆍ복지ㆍ교육 등 주요한 사회 이슈의 이면을 심도 깊게 취재해 그 쟁점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코너입니다. 주요 이슈의 주인공과 관련 인물로부터 취재한 이슈에 얽힌 뒷이야기도 소개합니다.

A(40)씨는 지난해 세 번째 임신중절(낙태) 수술을 받았다. 앞선 두 차례 중절 경험과 달랐던 건 낙태가 더는 범죄가 아니라는 점이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지난해부터 형법상 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잃어서다. 이전엔 처벌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임신 사실을 알고도 수술 시기를 한참 미뤘고 그로 인한 후유증도 심했다고 한다. "마지막은 헌법불합치가 있어서 큰 안심이 됐어요. 병원도 예전에 비해 훨씬 친절했고요. 감당할 부담이 적어지니 이른 시기에 (중절) 결정을 빨리 할 수 있었습니다."(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보고서)

B(41)씨도 지난해 세 번째로 임신중절을 했다. 자녀들이 한참 컸는데 뒤늦게 계획에 없던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응급피임약(일명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으려 병원에 갔지만 의사는 이유도 없이 "우리는 처방하지 않으니 받고 싶거든 다른 병원에 가보라"고 거절했다. 결국 임신중절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내서 진료비 50만 원을 내고 수술을 받았다. 자궁이 약해졌을까봐 걱정이 됐지만 별다른 조치나 상담은 받지 못했다. "집 주변에 산부인과가 몇 개가 있고 무슨 진료를 하는지, 그런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한국여성정책연구원 보고서)

헌재가 형법상 낙태 처벌 조항은 위헌이므로 관련 법을 개정하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3년 넘게 흘렀다. 임신중절을 한 여성을 처벌하는 자기낙태죄 조항(269조 1항)과 중절 시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사낙태죄 조항(270조 1항)이 그 대상이었다. 국회는 헌재가 기한으로 정한 2020년 말까지 대체 입법을 완료하지 못했고, 우리 사회는 이로써 낙태죄 처벌은 무기한 중단됐지만 모자보건법상엔 중절 요건 제한 규정이 그대로인 모순적 상황을 맞았다. 불법의 그늘이 걷혔다지만 여성들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의료 체계는 좀처럼 갖춰지지 않고 있다.

해를 거듭해온 '입법 공백' 상황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전기를 맞았다. 보수 우위 대법원이 반세기 전 선구적으로 임신중지권을 여성 기본권으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사건 판례(1973)를 폐기한 것이다. 국내에선 전 세계 비판 여론과 공조하며 여성의 재생산권을 보다 신장시켜야 한다는 요구와 이참에 태아 생명권까지 감안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맞부딪치며 대체 입법 논쟁이 다시금 가열되는 분위기다.

헌재가 정한 입법기한 어긴 국회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해 3월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임신중지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과 유산유도제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2019년 4월 11일에 있었던 헌재 판결은 69건의 낙태 시술을 한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전문의가 2017년 2월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결과였다. 재판관 9명 가운데 7명이 내린 위헌 판단에 여성계는 환호했고 종교계는 반발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임신 유지 여부 결정은 여성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신체적·심리적·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이며 △자기낙태죄 조항이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정당한 입법 목적을 갖고 있긴 하나,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임신부의 촉탁이나 승낙을 받아 낙태를 행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사낙태죄 조항 또한 자연스럽게 위헌 판정을 받았다.

다만 다수 의견 중 해당 조항을 즉각 폐지하자는 단순위헌 의견(3명)보다 사후 입법으로 법적 공백을 막아야 한다는 헌법불합치 의견(4명)이 더 많았던 터라, 헌재는 법 개정이 이뤄질 때까지 낙태죄 조항을 유지하되 그 시한을 이듬해 12월 31일로 정했다. 입법이 늦어지더라도 2021년부터는 낙태죄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고 못박은 것이다. 아울러 "모자보건법상 (임신중절) 정당화 사유엔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 갈등 상황이 전혀 포섭되지 않는다"며 모자보건법 정비 필요성도 제시했다.

그러나 후속 작업은 더뎠다. 여성단체들과 산부인과단체들은 일찌감치 '여성 선택권'과 '태아 생명권'에 각각 방점을 찍어 입장을 정했지만, 당사자 간 의견을 조율할 공론장은 좀처럼 마련되지 않았다. 기준점 역할을 해야 할 정부안은 법 개정 시한이 석 달도 남지 않은 2020년 10월에야 입법예고됐다. 형법 개정안은 낙태 처벌을 유지하되 예외 조항에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추가하고, 임신 주수에 따라 요건을 차등화해 24주까지 중절을 허용했다.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사전 상담 체계를 구축하고 약물(유산유도제)을 이용한 중절도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의원 입법안도 그즈음부터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박주민, 국민의힘 조해진 서정숙,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주도해 차례로 발의됐다. 하지만 낙태죄 완전 폐지(권인숙 이은주)부터 임신 10주까지만 낙태 허용(서정숙)까지 편차가 커서 접점을 찾기 힘들었다. 결국 그해 12월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를 마지막으로 이들 법안은 상임위에 장기 계류 중이다. 입법 기한이 성과 없이 종료되기 이틀 전, 산부인과 단체들은 앞서 입장을 정한 대로 임신 22주 이후 중절 시술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건보 적용 감감무소식… 78% "비용 부담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2021년)' 주요 내용 그래픽=김문중 기자

낙태죄 효력이 사라지자 그 영향이 즉각 나타난 곳은 법정이었다. 지난해 3월 대법원은 34주차 산모에게 임신중절 시술을 해준 산부인과 의사에 대해 업무상촉탁낙태 혐의를 무죄 판결했다. 1심은 헌재가 정한 법 개정 시한이 도래하지 않았다며 낙태죄를 물었지만 2심은 의사낙태죄 조항은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즉각 효력을 잃었다며 무죄 판결했고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 다만 살아서 태어난 아기를 숨지게 한 혐의(살인 및 사체손괴)엔 유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같은 달 헌법소원심판 청구 당사자인 의사에게도 업무상승낙낙태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의료 현장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헌재가 주문했던 임신중절 법제화와 후속 행정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나영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셰어) 대표는 "임신중지가 비범죄화된 상태에 맞춰 건강보험 적용, 유산유도제 도입 등 보건의료 체계가 마련돼야 하지만, 정부가 법적 기준 미비를 이유로 조치를 미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지면 임신중절이 제때 적절한 방식으로 이뤄지지 못해 여성 안전을 위협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3월 임신중절 경험자(44세 이하) 602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거주 지역에서 중절이 가능한 산부인과를 찾기 어려웠거나 전혀 찾을 수 없었다는 응답자 비율은 권역별로 최저 51.5%(서울), 최고 64.7%(광주·전라)에 달했다. 비용은 갈수록 늘어나는 경향을 보여 2020~2021년 중절 수술을 받은 여성은 절반 이상(54.1%)이 80만 원 이상 지출했고 77.9%가 경제적 부담을 느꼈다. 임신중단을 결정하고도 실행을 1주 이상 미룬 사람 중엔 비용 문제로 지체됐다는 응답이 18.3%나 됐다. 한편 약물을 이용해 중절한 189명 가운데 병원 처방이 아니라 국내외 인터넷 판매자에게 약물을 구입한 사람이 81명(중복 응답)으로 조사됐다. 의료시스템 바깥에서 건강을 담보로 한 음성적 낙태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보건당국은 재작년 대한산부인과학회에 의뢰해 임신중절 수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병의원에 배포했고, 지난해 8월부터 임신부가 의사에게 요청해 중절 관련 교육 및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 수가를 신설했다. 하지만 임신중절 비용 전반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유산유도제 도입 등 여성계 핵심 요구 사항엔 유보적이다. 최영준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장은 "건보 적용은 대체 입법이 먼저 이뤄져야 검토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유산유도제 도입과 관련해선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미프지미소(일명 미프진) 품목허가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프지미소는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먹는 약 형태의 유산유도제로, 여성계에선 임신중절의 안전성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국내 시판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국회의 시간'… 전망은 불투명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보장한 판례를 뒤집은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대법원 앞에서 낙태 반대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AP 뉴시스

기약 없는 입법 공백의 1차적 책임은 법 개정을 주도해야 할 국회와 정부에 있다. 이들 기관도 할말은 있다. 복지부의 경우 헌재 결정 이듬해부터 코로나19 유행 사태가 닥쳐 방역에 행정력을 집중해야만 했다. 정부 관계자는 "2019년 말까지만 해도 입법예고 전 보안을 강조하면서 복지부 주무부서를 중심으로 외부 의견 수렴 및 토론 과정을 진행했지만, 2020년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논의가 거의 실종됐다"고 설명했다. 국회에서도 "법사위에 6개 정도의 법안(형법 개정안)이 상정됐는데 지난해 군사법원법 개정이란 큰 과제를 5, 6개월간 다루느라 제대로 심사하지 못했다"(박주민 의원) 등 해명이 나온다.

입법 지연엔 보다 근본적 이유가 있다. 임신중절이 워낙 정치적으로 첨예한 사안이라 공론화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개입한 문제이다 보니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올해 대선과 지방선거 등 대형 이벤트가 잇따른 정치 일정 또한 관련 법 개정 논의를 미루는 요인이 됐다.

핵심 쟁점은 낙태죄 존치 여부다. 여성단체들은 임신중절을 더는 처벌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산부인과학회의 최근 권고만 봐도 '임신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형법 조항 실효로 이미 '낙태 비범죄화'가 실현된 만큼, 이를 손대지 말고 여성 재생산권을 더욱 보호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계는 태아와 임신부 보호를 위해 낙태죄를 계속 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임신중절에 한해선 의사의 진료 거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을 적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앞서 산부인과 단체 4곳이 공동 구성한 낙태법특별위원회는 2019년 9월 △낙태 진료 선택권 보장 △비의학적 사유 낙태는 임신 10주까지 허용 △유산유도제 도입 땐 병의원에서 직접 투약 등을 골자로 관련 법 개정 방향을 제시했다.

헌재 결정 해석에서도 양측 입장은 갈린다. 여성단체들은 '임신중지 결정권 보장'이 헌법불합치 판결의 요점이라고 보지만, 의사들은 '자기낙태죄 조항은 태아 생명 보호라는 정당한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는 판결문 문구에 주목한다. 정부 또한 헌재가 낙태죄 필요성을 부인한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를 계기로 국회에선 민주당을 중심으로 임신중절 법제화 논의가 재개될 조짐이다. 박주민 의원은 지난달 29일 "원 구성이 되면 낙태 보완 입법부터 서둘러 논의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미국 대법원 판결을 반면교사 삼아 여성 친화적인 법 개정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종교계를 비롯한 보수 진영의 완강한 반대를 감안하면 논의에 속도가 붙을지는 미지수다. 여성계에선 다른 이유로 대체 입법에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낙태죄를 부활시키는 입법이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정부는 아직까지 이 사안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 5월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도 임신·출산 지원책만 제시됐을 뿐 임신중절 관련 언급은 없었다.

이훈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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