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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이 온다'...손흥민의 겸손과 헌신 그리고 인종차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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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이 온다'...손흥민의 겸손과 헌신 그리고 인종차별 이야기

입력
2022.07.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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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 홋스퍼 10일 내한 앞두고
손흥민 각종 인터뷰 및 토트넘 변화 관심↑
'손흥민표' 헌신·겸손...팀에 선한 영향력으로
"소니는 모든 감독들의 꿈...헌신·태도·품행 모두"

영국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왼쪽)과 동료 데얀 쿨루세브스키가 지난 5월 12일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센 번째 골을 합작한 뒤 자축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영국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왼쪽)과 동료 데얀 쿨루세브스키가 지난 5월 12일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센 번째 골을 합작한 뒤 자축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골키퍼와 1대 1 상황에 골대가 비어 있었어요. 그때 손흥민이 딱 보였죠. 그가 마치 '패스해 줘'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손흥민이 득점왕이 되려면 딱 1골이 더 필요했거든요. 경기 전에 다들 모여서 '기회가 나면 손흥민에게 패스 몰아주자'고 했단 말이죠. 손흥민이 골든부트 받아야 되니까요. 그런데 그 순간 슛하지 말고 손흥민에게 패스하자는 생각이 든 겁니다. 그래서 패스를 했죠. 그런데 아..."

영국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스웨덴 출신의 데얀 쿨루세브스키(22) 토트넘 홋스퍼 소속 선수가 노리치 시티와 시즌 마지막 게임으로 벌였던 지난 5월 당시 경기에 대한 기억이다. 같은 팀 소속 선수인 손흥민(30)의 '득점왕 만들기 프로젝트'에 직접 관여하면서 생겨난 잔상은 그랬다.

부연 설명을 하면 이렇다. 얼마 전 쿨루세브스키는 휴식차 자국으로 향했다. 그곳의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토트넘에서 보낸 일화를 전했다. 이날 경기 당시 21골로 모하메드 살라(리버풀)와 단 한 골 차이로 추격 중이었던 손흥민은 전반전까지 득점을 하지 못했다. 쿨루세브스키도 불안했던 마음은 매한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는 이날 단독 찬스에서 굳이 손흥민에게 골을 패스하다가 기회를 날려버렸다. 쿨루세브스키는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 뭐 하는 거냐, 와 이 멍청한 녀석!"이라며 정말 창피했다고 떠올렸다.

'손흥민표' 희생...헌신은 또 다른 헌신으로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이 지난 5월 22일 노리치 시티와의 2021-22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마지막 경기에서 후반 30분 팀의 다섯 번째 골(23호)을 넣고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손흥민은 이날 멀티 골을 기록하며 5-0 대승에 기여했다. 결국 모하메드 살라(리버풀)와 공동 득점왕에 등극했다. AP 뉴시스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이 지난 5월 22일 노리치 시티와의 2021-22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마지막 경기에서 후반 30분 팀의 다섯 번째 골(23호)을 넣고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손흥민은 이날 멀티 골을 기록하며 5-0 대승에 기여했다. 결국 모하메드 살라(리버풀)와 공동 득점왕에 등극했다. AP 뉴시스

쿨루세브스키의 부담감은 괜한 게 아니다. 그는 지난 2월 이탈리아 유벤투스에서 뛰다 임대 선수로 토트넘에 이적했다. 몇 차례 교체 선수로 경기를 뛰었지만 골을 기록하지 못했다. 그러다 26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와 경기에서 첫 선발 출전해 EPL 데뷔골을 터트렸다. 누가 봐도 손흥민의 공이 컸다.

전반 5분 만에 이룬 성과였다. 골대 앞에서 단독 찬스를 얻은 손흥민이 직접 해결할 수도 있었지만 쿨루세브스키에게 공을 돌린 결과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노리치 시티를 상대로 시즌 마지막 게임에서 나왔던 경기와 유사한 흐름으로 보였다.

어째든 그는 손흥민의 패스를 받아 골문을 흔들었다. 이적한 공격수에게 첫 골은 절실했다. 경기 때마다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이니까. 그러니 손흥민에게 어찌 고마운 마음이 없으랴. 손흥민도 본인이 득점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동료에게 양보한 거였다.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감독의 지시가 있었는진 알 수 없다. 하지만 손흥민이라면 기꺼이 양보 혹은 희생했을 거라 짐작된다. EPL 첫 선발 출전한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한 쿨루세브스키에게 손흥민이 어떤 존재였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쿨루세브스키는 휴식 중에도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못내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는 2분 뒤 마법을 만들어냈다. 자신감 있게 중거리 슛을 날렸고 그렇게 2대 0으로 전반전을 마쳤다. 토트넘 선수들이 후반전을 여유 있게 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셈이었다.

겸손은 미덕이라더니...치열한 주전경쟁도 우정으로

영국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는 올초 데얀 쿨루세브스키(왼쪽부터)와 조 로든, 스티븐 베르바인를 내세워 한국을 방문한다는 영상을 촬영해 공개했다. 이들은 손흥민이 가르쳐주는 한국어를 그대로 따라하며 영상을 찍은 바 있다. 그러나 베르바인은 내한 직전 네덜란드 클럽 아약스로 이적해 볼 수 없게 됐다. 쿠팡플레이 영상 캡처

영국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는 올초 데얀 쿨루세브스키(왼쪽부터)와 조 로든, 스티븐 베르바인를 내세워 한국을 방문한다는 영상을 촬영해 공개했다. 이들은 손흥민이 가르쳐주는 한국어를 그대로 따라하며 영상을 찍은 바 있다. 그러나 베르바인은 내한 직전 네덜란드 클럽 아약스로 이적해 볼 수 없게 됐다. 쿠팡플레이 영상 캡처

"이제 베르바인은 못 보는 건가요? 너무 아쉬워요."

이번 유럽 축구계의 여름 이적시장은 한국 팬들에겐 아쉬울 듯하다. 10일 토트넘 선수들이 내한하는 가운데 함께하지 못한 선수도 있어서다. 최근 네덜란드 클럽 아약스로 이적이 확정된 스티븐 베르바인(25)이 대표적이다.

네덜란드 출신인 베르바인은 자국 리그로 돌아갔다. 그동안 손흥민에게 밀려 후반 교체선수로만 경기장에 나섰다. 고작 5~10여 분 남겨놓고 교체될 때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그는 토트넘을 떠나길 원했다. 올 초 네덜란드 매체 AD와 인터뷰에서 "토트넘에서 선발로 나서는 게 쉽지 않다.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다"며 "네덜란드나 아약스가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네덜란드 클럽 아약스는 8일 공식 홈페이지에 토트넘 홋스퍼의 스티븐 베르바인과 5년 계액했다고 알렸다. 베르바인은 아약스에서 등번호 7번을 받았다. 손흥민과 같은 번호다. 아약스 홈페이지 캡처

네덜란드 클럽 아약스는 8일 공식 홈페이지에 토트넘 홋스퍼의 스티븐 베르바인과 5년 계액했다고 알렸다. 베르바인은 아약스에서 등번호 7번을 받았다. 손흥민과 같은 번호다. 아약스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토트넘을 떠난 베르바인이 '내한 명단'에 있을 리 만무하다. 지난 2월 토트넘은 프리시즌 한국행을 결정하고 영상도 제작했다. 조 로든과 쿨루세브스키, 베르바인은 손흥민이 알려주는 한국어를 따라하며 오직 한국말로 영상을 촬영했다. 베르바인은 "우리 한국 갑니다"라고 정확하게 발음해 손흥민에게 칭찬까지 들었다.

한국 팬들의 기억 속에는 베르바인은 짠하다면 짠한 존재다. 자국 대표팀에선 펄펄 나는 선수를 손흥민의 교체선수로 묶어둔 것도 모자라 팀을 스스로 떠나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손흥민과 경쟁 관계에 있을지언정 형을 잘 따르는 아우였다. 훈련 중 손흥민과 장난치며 잘 웃었고,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손흥민 득점왕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정도로 착한 동생이었다.


영국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이 지난 5월 노리치 시티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득점왕이 결정된 골을 성공시킨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주전 경쟁에서 손흥민에 밀려 교체선수로 활약한 루카스 모우라와 스티븐 베르바인이 손흥민을 번쩍 들어올려 감동을 줬다. AFP 연합뉴스

영국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이 지난 5월 노리치 시티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득점왕이 결정된 골을 성공시킨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주전 경쟁에서 손흥민에 밀려 교체선수로 활약한 루카스 모우라와 스티븐 베르바인이 손흥민을 번쩍 들어올려 감동을 줬다. AFP 연합뉴스

이심전심이라고 했던가. 손흥민도 베르바인을 언급했다. 지난 4일 한 스포츠브랜드 행사 관련 기자회견에서 베르바인과 루카스 모우라(30)가 시즌 마지막 경기 후반에 교체돼 들어와 "득점왕 만들어주겠다"고 말한 일화를 꺼내들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에 대한 고마움울 피력했다. 손흥민은 "사실 나와 포지션 경쟁을 하는 친구들이라 나 때문에 경기를 못 뛰는 상황도 있었다'며 "(그럼에도) 본인 일처럼 나서주는 상황이 정말 고마웠다"고 전했다. 베르바인과 모우라는 실제로 노리치 시티와 시즌 마지막 경기 당시 손흥민이 골을 넣을 때마다 가장 먼저 달려가 축하해줬다. 모우라는 손흥민을 번쩍 들어 올렸고, 베르바인도 그를 도와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손흥민의 겸손 멘트도 빠지지 않았다. 그는 "득점왕이 됐다는 것보다 외국에 나와서도 내가 친구들하고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더 큰 행복을 느꼈다"고 말했다. 두 선수에 대한 겸손과 배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손흥민은 모든 감독의 꿈...헌신·태도·품행 좋은 사람"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홋스퍼 감독이 지난 3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 경기에서 후반전 교체되는 손흥민을 보고 활짝 웃고 있다. 손흥민은 이날 두 골을 몰아 넣으며 팀을 3대 1로 승리하는 데 견인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홋스퍼 감독이 지난 3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 경기에서 후반전 교체되는 손흥민을 보고 활짝 웃고 있다. 손흥민은 이날 두 골을 몰아 넣으며 팀을 3대 1로 승리하는 데 견인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최근 토트넘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안토니오 콘테: 202일'이 선공개돼 전 세계 축구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영상에서 "손흥민은 모든 감독이 꿈꾸는 선수"라고 극찬해서다. 콘테 감독을 아는 축구팬이라면 그의 칭찬이 낯설 수도 있다.

콘테 감독은 강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압도하며 기강을 잡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과거 티에리 앙리와의 방송 인터뷰에서 "말 듣지 않는 선수는 죽여버릴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유벤투스와 첼시 인터밀란 등 유럽 빅클럽에서 우승 청부사로 통한 것도 선수단을 강하게 휘어잡으며 지도를 펼쳐서다. 선수들에게 까다롭기로 소문난 그가 유독 손흥민에겐 활짝 웃으며 '아빠 미소'를 보이는 건 선수가 보이는 헌신과 희생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콘테 감독은 이번 다큐 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승리를 바라는 모든 감독에게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가 꼭 필요합니다. 손흥민은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줬어요. 팀을 위한 헌신, 태도, 품행을 통해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 손흥민의 내면에 있는 인간성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는 항상 미소를 짓는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토트넘에 매우 중요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모든 감독은 손흥민 같은 선수와 함께하는 것을 꿈꿉니다."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홋스퍼 감독이 지난 5월 22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노리치 시티와 시즌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이끈 뒤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홋스퍼 감독이 지난 5월 22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노리치 시티와 시즌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이끈 뒤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톱클래스의 선수가 팀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마다할 지도자는 없다. 콘테 감독도 손흥민 득점왕 만들기에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손흥민은 지난 4일 가진 행사 기자회견에서 "콘테 감독이 원래 선수 개인 타이틀에 신경을 잘 안 쓰는 분인데, (지난 5월 노리치 시티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전반전을 2대 0으로 리드하자 (하프타임 때) '소니가 득점왕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콘테 감독은 경기 전후 기자회견에서 손흥민 관련 질문이 나올 때마다 줄곧 "선수 개인보다 팀이 우선"이라고 인터뷰해왔다. 하지만 득점왕이 걸린 마지막 경기에서 손흥민이 골을 넣을 때 손가락으로 골 개수를 꼽으며 좋아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해외에서도 콘테 감독의 손흥민을 향한 극찬에 주목했다. 영국의 이브닝스탠더드는 "콘테 감독이 손흥민을 모든 감독의 꿈으로 정의했다"며 "그는 손흥민이 팀의 자산이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보도했다. 풋볼런던도 "콘테 감독과 손흥민은 경기장 안팎에서 분명히 좋은 관계룰 유지하고 있다. 손흥민은 동료들과도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토트넘 팬 커뮤니티 스퍼스웹도 콘테 감독의 발언을 전하며 "손흥민이 토트넘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게 분명해졌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것은 동료들이 손흥민의 득점왕 수상을 적극적으로 도왔다는 사실로 다시 한번 확실해졌다"면서 "손흥민이 토트넘에 가진 애정은, 원하는 어떤 팀이든 갈 수 있었음에도 그가 토트넘에서 전성기를 보내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월드컵서 독일에 이겨 복수했다"...한마디에 해외도 들썩

미국 매체 BR풋볼은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손흥민이 독일에서 뛸 당시 인종차별로 힘들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독일을 이기며 복수했다고 말한 인터뷰 내용을 게재했다. BR풋볼 SNS 캡처

미국 매체 BR풋볼은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손흥민이 독일에서 뛸 당시 인종차별로 힘들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독일을 이기며 복수했다고 말한 인터뷰 내용을 게재했다. BR풋볼 SNS 캡처

"선한 영향력을 주는 몇 안 되는 선수이니, 이번 기회에 얘기 잘했다 싶었어요."

직장인 이모(37)씨는 최근 손흥민의 발언에 깜짝 놀랐다. 그동안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단어, "인종차별"이 그의 입을 통해 나와서다. 이씨는 손흥민이 EPL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이제 할 말은 해도 되는 월드클래스가 아닌가"라며 "앞으론 속으로 삭히지 말고 표현하며 마음을 풀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손흥민은 10대 후반 독일 유학시절 겪었던 마음의 상처가 꽤나 깊은가 보다. 인종차별의 아픔을 10년 이상 꾹꾹 눌러오다 이제서야 털어 놓았으니 말이다. 그 상처는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채로 아물기만 한 것 같았다.

그는 5일 팬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그는 '국가대표와 클럽팀 경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A매치 100번째 경기였던 칠레전, (FIFA 푸스카스상을 받은) 번리전, (EPL) 득점왕에 오른 경기 등이 있지만,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이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손흥민이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독일과 경기에서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한국은 2대 0으로 승리했고, 독일은 사상 처음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FIFA 유튜브 영상 캡처

손흥민이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독일과 경기에서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한국은 2대 0으로 승리했고, 독일은 사상 처음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FIFA 유튜브 영상 캡처

2018 러시아 월드컵 당시 한국 축구대표팀은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로 독일을 만났다. 당시 독일은 세계랭킹 1위였고, 그 전 대회인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우승 국가였다. '디펜딩 챔피언' 독일은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 위협적인 독일을 상대로 대표팀은 2대 0으로 승리했고, 독일은 초유의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었다.

손흥민은 '독일 침몰'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경기 막판 김영권(울산 현대)의 선제골이 터진 이후 쐐기골을 넣으며 승리를 이끌었다. 전 세계는 깜짝 놀랐다. 당연히 독일의 승리를 점쳤던 이들은 한국의 활약이 오히려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손흥민은 그날의 짜릿한 승리를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당시) 세계랭킹 1위였던 독일을 이겨서 기억에 남는 경기가 아니냐고 하겠지만 사실 이유가 되게 많다"고 운을 뗐다. 그는 "어릴 때 독일에 간 뒤 상상하지 못한 힘든 생활을 했다"며 "인종차별도 많이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2008년 서울 동북고 1학년이던 손흥민은 독일 함부르크 유소년팀에 입단해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16년까지 함부르크와 레버쿠젠에서 선수생활을 하다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손흥민이 5일 팬들과 만난 행사에서 독일 분데스리가 시절 "인종차별 당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유튜브 채널 달수네라이브 캡처

손흥민이 5일 팬들과 만난 행사에서 독일 분데스리가 시절 "인종차별 당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유튜브 채널 달수네라이브 캡처

그러나 독일에서의 생활이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손흥민은 독일에 앙심을 품고 있었음을 고백했다. 그는 "언젠가는 이거(인종차별)를 꼭 갚아줘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음속으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울면 위로해주고 싶고 가서 한번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서도 "독일 사람들이 (패한 후) 우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마음(위로해주고)도 들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복수를 할 수 있어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그의 얘기가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건 그동안 내색 한 번 하지 않아서다. 손흥민은 이날 팬들과 만나면서 오랜만에 긴장감을 털어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속에 있던 진심을 토해냈을 법하다. 팬들과 속마음을 전하며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손흥민은 이날 비가 내리는 걸 보고는 "하늘도 슬픈가 봐요"라는 말도 했다.

많은 해외 언론들이 그의 말을 받아 적었다. 미국 매체 BR풋볼은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날 손흥민이 언급한 인종차별 등 내용을 조목조목 영문으로 게재했다. 그러나 독일처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곳도 없다. 보도채널 NTV 역시 "손흥민이 독일에서 겪은 차별을 공개적으로 밝힌 건 처음"이라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독일 스포츠 매체 키커는 "손흥민이 서울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독일에서 보낸 시간을 이야기하며 불쾌한 기억을 떠올렸다"며 "그는 우는 사람을 보면 위로하고 안아주고 싶어하지만, 독일 선수에겐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손흥민이 EPL에 진출해서도 여전히 인종차별에 시달린다는 사실도 전했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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