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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병’이라는 베체트병, 완치 어렵지만 증상 조절 가능

입력
2022.07.04 18:10
수정
2022.07.04 19:04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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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에게서 듣는다] 김도영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교수

김도영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교수는 "베체트병은 아직 일반인에게 낯선 질환이지만 조기 발견해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완치는 어렵지만 증상을 잘 조절해 생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김도영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교수는 "베체트병은 아직 일반인에게 낯선 질환이지만 조기 발견해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완치는 어렵지만 증상을 잘 조절해 생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지난해부터 재택 근무를 하고 있는 A씨는 늦잠을 자는 등 불규칙한 패턴으로 생활하고, 식사도 배달 음식으로 주로 해결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조금만 피곤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입안에 염증이 생긴다. 처음에는 일시적으로 입이 헐었다고 여겼다. 하지만 2주가 지나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고 밥도 먹기 힘들 정도가 됐다. 병원을 찾은 A씨는 이름도 낯선 ‘베체트병’ 진단을 받았다.

아직 국내에서는 낯선 질병인 ‘베체트병 치료 전문가’ 김도영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베체트병이 치료하기 까다로운 난치병은 맞지만 조기 발견해 치료하면 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지낼 수 있기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베체트병은 아직 낯선 질환인데.

“베체트병은 이 질환을 처음 발견한 터키 피부과 의사 베체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사람 몸에는 외부 세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면역체계가 있다. 하지만 과로ㆍ스트레스 등으로 신체 리듬이 망가지면 감염ㆍ외상에 정상적인 면역반응을 보이지 못하고 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경우 몸속 면역세포가 적절한 보호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필요한 염증을 일으켜 정상 세포를 공격한다. 이를 자가면역질환 혹은 자가염증질환이라고 한다. 자가면역 반응과 자가염증 반응이 베체트병 발병에 관여한다.

베체트병은 혈관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인데, 혈관이 지나는 곳이라면 입ㆍ피부ㆍ생식기ㆍ눈 등 온몸에 나타날 수 있다. 발생 부위에 따라 증상ㆍ합병증도 다양해 정말 무서운 병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0년에 베체트병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1만9,358명으로, 1961년 국내 처음 보고된 이후 그 수가 크게 늘었다.”

-베체트병 진단과 치료는 어떻게 시행하나.

“베체트병이 일으키는 다양한 증상을 확인해 진단한다. 구강 궤양, 성기 궤양, 피부 병변, 포도막염 등을 검사한 뒤 종합적으로 판단해 진단한다. 염증 활성도, 합병증 유무를 파악하기 위해 혈액검사도 시행한다.

베체트병 발생 위치가 다양한 만큼 그 증상과 합병증도 사뭇 다르다. 베체트병 환자 중 90%가 겪는 최초 증상은 구강 궤양(사실 구강 궤양은 전 인구의 20%가 겪는 흔한 증상)이다. 피곤할 때 한두 군데 헐기도 하지만 환자에 따라 1년 내내 입이 헐기도 한다.

피부에 발생하면 결절 홍반, 구진농포성 발진, 여드름 모양 발진, 혈전성 정맥염 등이 발생해 혈액순환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생식기에는 외음부 염증 등으로 생식기능 장애가 생길 수 있고, 관절ㆍ혈관ㆍ중추신경 등에도 침범해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특히 대장을 포함한 장관에 염증과 궤양이 생겨 설사ㆍ혈변으로 고통을 받거나 심하면 장 천공(穿孔)으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염증으로 약해진 혈관 쪽으로 혈액이 몰려 부풀어 오르는 동맥류(動脈瘤ㆍaneurysm)가 생기거나 혈전에 의해 큰 정맥이 막히는 심부(深部) 정맥 혈전증도 위험한 합병증 중 하나다. 안구 포도막염이 심해지면 실명에 이르기도 한다.”

-베체트병이 발생하는 원인은.

“다른 대부분의 면역 질환처럼 베체트병도 원인과 치료법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난치성 질환이다. 하지만 베체트병 원인을 유전 인자에서 찾는 시도도 있었다. 베체트병은 미국ㆍ캐나다ㆍ유럽 등에서는 매우 드물게 나타나지만, 한국ㆍ일본ㆍ중국ㆍ이라크ㆍ사우디아라비아 등 과거 실크로드 인접 지역에서 많이 발병한다. 이 때문에 베체트병을 ‘실크로드병’으로 불린다.

일본 홋카이도대 오노 교수가 실크로드를 따라 해당 지역 주민들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6번 염색체에서 HLA-B51이라는 유전자가 공통적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환자의 40~50%는 HLA-B51 유전자형을 가지고 있다. 이 유전자형은 건강한 사람에게서 10% 정도 발견되기에 HLA-B51 유전자형이 있더라도 베체트병으로 진단할 수는 없다.”

-베체트병에 노출되면 어떻게 생활해야 하나.

“베체트병의 특징 중 하나가 재발이 잦다는 점이다. 증세가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기에 완치하기는 어렵지만 증상 조절은 가능하다. 면역 관리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다. 과로 등으로 피로하면 증세가 심해지므로 평소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으로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좋다. 또 잠을 충분히 자고, 영양가 높은 음식, 비타민 등을 섭취하면 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

베체트병의 주증상이 건강한 사람에서도 피곤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입이 허는 증상이어서, 그대로 방치할 때가 많다. 하지만 증세가 나아지지 않거나 성기에 궤양이 생기고, 눈 충혈이나 날파리증(비문증)이 생기고, 피부 등에 염증이 생기면 서둘러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아직까지 베체트병의 단일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기에 염증 반응을 억제할 수 있는 여러 약물을 동시 투여하며 장기간에 걸쳐 치료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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