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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심장 건강을 갉아 먹는 대적

입력
2022.07.03 18: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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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호 교수의 심장 건강] 가톨릭대 명예교수(노태호심장클리닉 원장)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말싸움 끝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남자가 갑자기 가슴을 움켜잡고 바닥에 쿵 쓰러진다. 영화에서 간혹 보는 장면이다. 저게 정말일까? 아마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런데 상당 부분이 사실로 밝혀졌다.

호주 연구자들이 유럽심장학회지에 발표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유달리 흥이 많고 또 흥분을 잘하는 우리에게 교훈적이다. 결론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발하면 심장 발작(급성 심근경색증의 다른 이름)이 9.5배 증가하며, 이런 심한 분노와 스트레스는 2시간 넘게 심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심장 발작으로 입원 후 혈관 조영술을 실시해 심장 혈관이 막힌 것을 확인한 환자를 대상으로 이전 48시간 동안의 행적을 조사한 연구에서 나온 결과다.

분노 단계를 7단계로 나눠 5단계 이상 분노가 생긴 사람에게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분노 유발 상황을 살펴보면 가족과 언쟁이 29%로 가장 많았고, 직장 내 언쟁이 14%, 운전 도중 14%, 기타 42%로 나타났다. 가까이 접하고 기대치가 높은 주변 사람들과 언쟁하면서 생긴 분노가 컸다.

또 운전 도중에 생긴 분노도 큰 역할을 하는데 아마도 교통 체증이나 끼어들기, 접촉 사고 등 흔히 겪는 일로 생긴 분노가 심장에 악영향을 미치니 마음 가다듬기 훈련이라도 해야겠다.

분노가 몸을 해친다는 연구는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하버드대 부속 베스이스라엘병원 연구팀이 1966~2013년 발표된 연구에 대해 분석한 결과를 유럽심장학회지에 발표했는데 이 결과도 앞의 결과와 비슷했다.

분노를 나타낸 후 2시간 뒤에 심장 발작 발생이 다른 때보다 4.7배 많았고, 허혈성 뇌졸중(뇌경색) 발생은 3.6배가 많았다. 치명적인 뇌동맥류(腦動脈瘤) 파열은 6.3배가 많았다고 하니 남을 향한 분노가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분노는 또한 목숨을 위협하는 부정맥(不整脈) 발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기 충격을 가해 생명을 구하는 ‘삽입형 제세동기(ICD)’가 있다. 병원에서 심폐소생술(CPR)을 시행할 때 의사가 환자 가슴에 전기 충격을 가하는 장면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이 전기 충격을 주는 장비의 축소형이 바로 ICD이다.

부정맥이 있는 사람은 ‘돌연사 주범’으로 불리는 '심실성 빈맥(ventricular tachycardia)’으로 사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몸속에 ICD를 삽입한다. 가슴에 ICD를 넣은 사람이 분노를 일으키면 15분 내에 자동으로 전기 충격이 발생하는 일이 두 배가 많았다. 이런 전기 충격이 없었다면 이 사람은 생명을 잃을 뻔했다는 이야기이다.

왜 극심한 분노가 심장이나 뇌에 치명적인 해를 끼칠까? 스트레스가 주원인이다. 심한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이나 아드레날린 등 호르몬을 혈액 내로 분출하며 이로 인해 심장박동이 증가하고 혈관이 수축해 혈압이 급격히 상승하고 혈액 점도를 높여 심장과 뇌 혈관에 타격을 입히는 것이다.

이런 결과만 보면 분노 자체가 다른 심장 위험 요소만큼 크게 위험한 것으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평소 심혈관 위험 인자를 가진 사람이 극심한 분노를 겪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즉, 고혈압ㆍ당뇨병ㆍ흡연 등 심혈관계 위험 인자를 지닌 사람일수록 마음을 잘 다스려 스트레스를 줄이면서 살아야 건강할 수 있다는 게 여러 연구 결과가 나타내 주고 있다.

노태호 가톨릭대 명예교수(노태호심장클리닉 원장)

노태호 가톨릭대 명예교수(노태호심장클리닉 원장)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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