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 진열된 운동화와 화랑이나 성당에 전시된 조각품은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다. 할인품 코너에 박스째 쌓여 있는 공산품과 달리 예술품은 날카롭게 떨어지는 조명에 둘러싸여 무언의 경고를 보낸다. ‘건드리지 마시오.’ 그러나 덕트테이프(강력 접착 테이프)와 합판, 철판, 도자기처럼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재료로 조각 같지 않은 조각품을 만들어온 작가 톰 삭스는 이들이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설명한다. 누군가 사물에 의미를 투영하고, 관객이 이를 자신의 방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운동화와 조각품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라고.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갖기 위해 최근 방한한 그의 말은 이렇다. “사실 성당의 조각품과 스니커즈 사이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단순히 배경과 상황이 다른 것일 뿐이죠.”
운동화 애호가들에겐 나이키와 협업한 신발 발매로 잘 알려진 톰 삭스의 개인전이 서울의 아트선재센터(~8월 7일)와 하이브인사이트(~9월 11일), 타데우스 로팍(~8월 20일)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톰 삭스 스페이스 프로그램: 인독트리네이션(Tom Sachs Space Program: Indoctrination)’은 미국의 DIY(Do it yourself) 문화를 뿌리에 둔 그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전시다. 삭스는 2007년부터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달 탐사 계획을 그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한 전시들을 열어왔다. 서울에서 열린 전시도 그 일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합판으로 만들어진 우주선부터 회화처럼 보이지만 역시 합판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포스터가 관객을 맞이한다. 나사못과 부품이 가득한 작업대처럼 보이는 조각도 있다.
‘이것도 작품인가?’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가진 작품인가?’라는 의문은 다른 층의 전시공간에서도 관람객을 따라다닌다. 관람객은 톰 삭스식 우주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해 나사못을 정리하고 간단한 문제를 푸는 시험까지 통과하면 나사(NASA) 신원 카드를 받을 수 있다. 전시공간 자체가 우주 프로그램을 재현하는 공간인 셈이다.
이런 우주 프로그램의 재현에 담긴 작가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때로 장난스럽고 기발한 삭스의 작품은 미국적 가치와 소비주의에 대해 비판과 찬양 사이를 유영한다. 삭스는 나사가 1970년대 진행했던 프로그램이 자신을 포함해 전 세계를 열광시켰다면서도 그것이 냉전기에 전개된 불투명하고 실패한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에는 나사의 우주선이나 애플의 아이폰과 달리 합판과 못, 테이프의 엉성한 연결과 질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가르침과 세뇌라는 뜻을 함께 가진 ‘인독트리네이션’을 전시의 부제로 삼은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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