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력 증원 갈등, 수도권·지방 공유대학으로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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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인력 증원 갈등, 수도권·지방 공유대학으로 풀어야"

입력
2022.06.30 16:00
수정
2022.06.3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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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학부장)는 27일 "세계가 반도체 고급 인력 확대를 위한 전쟁 중"이라며 "우수 인력과 교수진 확보를 위해 가능한 방안을 다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한호 기자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전 정부 부처에 특단의 노력을강조하면서 유관 부처들이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교육부가 7월 중 관련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정작 대학들의 반응은 미묘하게 다르다. 규제에 묶여 정원을 늘리지 못하고 있는 수도권 대학들은 내심 관련 학과 신설, 정원 확대를 기대하고 있는 반면, 비수도권 대학들은 이렇게 될 경우 인재들의 수도권 쏠림이 심화할 것이라며 불안해하고 있다. 반도체 인력 양성에만 드라이브를 걸면 중요한 미래 산업인 바이오, 로봇, 인공지능 분야의 인력난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석·박사급 고급 인력의 유출과 부족 현상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이혁재(57)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를 27일 학부 사무실에 만나 인력난 실태와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석ㆍ박사급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수도권 소재 대학의 학과 정원 확대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봤다. 다만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이 연계해 느슨한 형태의 양성 과정을 운용한다면 대학 간 상생과 반도체 산업 성장 기반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가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이 교수는 미국 퍼듀대에서 박사학위(전기·컴퓨터공학)를 받은 뒤 인텔사 선임연구원을 거쳐 2001년부터 모교 전기정보공학부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_새 정부가 반도체 인력양성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난 정부 말에도 인력 양성을 위한 ‘K반도체 전략’을 발표했는데, 효과 검증 없이 너무 급작스럽게 밀어붙이는 것 아닌가.

“필요한 작업이 진행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도체 분야 기업들을 만나보면 지금 어디서건 인력이 모자라다고 아우성이다. 최근 미국과 대만 등에서 반도체 신규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회사마다 핵심 인력을 데리고 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현상이 한국까지 영향을 미쳐서 국내 인력들도 외국으로 많이 빠져나가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 줌(zoom) 인터뷰 방식이 보편화되면서 외국 회사에 취직하기 위한 비용 장벽이 낮아졌고 미국 정부도 정책적으로 해외 전문 인력에 대한 문호를 열고 있다. 이런 환경 변화로 국내 고급 연구 인력이 외국에서 취업하는 일은 예전처럼 어렵지 않게 됐다. 일례로 지난해 내 연구실(서울대 컴퓨터구조 및 병렬처리 연구실)에서는 박사학위를 받은 학생이 네 명인데 한 명은 미국 최고의 팹리스(fablessㆍ반도체 설계전문) 기업에 취직했다. 한 명은 미국 대학 박사후 과정에 지원했고 나머지 한 명도 미국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네 명 중 국내 반도체 기업에 취업한 학생은 한 명뿐이다. 국내 반도체 산업을 책임질 인력 양성 드라이브가 오히려 늦게 발동이 걸렸다고 본다.”

_정부는 향후 10년간 반도체 관련 인력이 3만 명 정도 부족할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로 어느 정도 부족한가.

“목표를 세워야 정확한 인력이 나오기 때문에 정확히 예상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온 우리나라에 삼성전자급 회사를 두 개 정도 더 만든다고 가정하고 필요한 인력을 추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향후 10년간 5만 명은 필요할 것으로 본다. 세분화하자면 그중 고급 인력이 20% 필요하고 나머지 80%는 중간급 인력으로 보면 된다. 1년에 5,000명 정도 양성해야 하는데 석ㆍ박사급 인력과 주요 대학 학부를 졸업한 인력 등 고급인력은 매년 1,000명 정도 키워야 할 것이다.”

_반도체 인력이라고 해도 고급인력, 중급인력, 실무인력 등 수요가 다양하다. 전략적으로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건 어떤 인력인가.

“지금 기업에 있는 분들과 이야기하면 고급, 중급, 실무 인력 가리지 않고 부족한 상태다. 농담으로 대충 반도체 근처에만 갔다 온 사람이라면 뽑겠다고 할 정도다. 기업이 고급인력만 데리고 일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전쟁을 하려면 장교도 있어야 하고 병사도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메모리·시스템 반도체 생산능력.


_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반도체 학과 정원을 확대하는 방식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방안이 있을까.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네 가지 선택지가 있다. 우선은 반도체 학과를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존 전기정보공학 전공 학생들이 주로 반도체 전공을 많이 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은 다른 학과 학생들에게 복수전공처럼 반도체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대에서는 2020년부터 ‘반도체 연합 전공’을 운영하고 있다. 공과대나 자연과학대 학생에게 반도체 전공교육을 시켜 학점을 취득하게 하는 방법이다. 네 번째 방법은 반도체를 전공하지 않고 졸업한 학생들을 재교육시키는 것이다. 카이스트(KAIST)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마이크로 학위 제도를 예로 들 수 있다. 서울대도 비슷한 과정을 준비 중이다(카이스트의 마이크로 학위제도는 4년제 대학 졸업자를 1년 정도 반도체 관련 교육, 실험 실습을 시키고 일종의 수료증을 주는 제도로 검토 단계다). 물론 각 선택지마다 장단점이 있다.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반도체 전쟁’ 중이라는 사실이다.”

_각각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장교에 해당하는 고급 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반도체 학과를 만들어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학과 정원만 너무 늘리면 필요한 다른 미래 산업 분야의 정원이나 지원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한번 학과를 만들어 놓으면 산업 수요가 변했을 때 이를 조정하기 어렵다. 반도체 학과 개설만이 능사는 아니다. 전체 인력의 20%는 반도체 학과에서 양성하고, 나머지 80%는 세 가지 방식을 섞어서 가르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다른 전공자들에게 반도체 교육을 시키거나, 졸업자 를 재교육하는 방식은 인력양성 시간을 단축시킨다. 기업이 요구할 때 속도감 있게 대응할 수 있는 게 최고의 장점이다. 다만 이런 교육 방식은 정식 학위 과정과는 다를 수 있어 학생들이 좀 느슨해질 수는 있다. 어쨌든 현실적으로 대규모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학과의 정원 조정을 최소화하면서, 탄력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하는 방법밖에 없다.”

_서울대는 전기정보공학부가 주도해 ‘인공지능반도체 연합전공’ 과정을 신설해 반도체 전공자를 늘리려 하고 있다. 과정을 만든 이유와 학생들의 성취도가 궁금하다.

“이 과정은 반도체 분야 교육을 위해 2020년 신설됐다. 전기정보공학부가 주관이 돼 기계항공공학부, 물리ㆍ천문학부, 화학부 등 자연과학대와 공과대학 8개 학부(학과)가 연합해 운영하는 반도체 맞춤형 교과과정으로 일종의 복수전공이다. 예전에 다른 학부, 학과 학생들이 전기전자공학부에서 복수전공을 하더라도 우리가 반도체만 가르치는 게 아니니까 인력 양성에 한계가 있었다. 물론 반도체 분야는 여러 학문 분야가 연합해서 가르칠 필요성도 있다. 첫 학기인 2020년 1학기 경쟁률이 1.63대 1이었는데 올해 2학기는 벌써 경쟁률이 3.58대 1이다. 반도체 학과를 만들거나 전공교수를 늘리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면서 동시에 융합 교육 기회를 주자는 목적으로 이 과정을 시작한 것이다. 다만 취득하는 학점(39학점)만으로 학생들이 ‘반도체를 제대로 배웠다’고 하기에는 미흡하다고 느낄 수는 있다.”

_교수 부족 현상은 어느 정도인가.

“심각하다. 사실 ‘연합전공’만 해도 수강인원을 더 늘리고 싶은데 가르칠 사람이 부족해 못 하고 있다. 반도체를 전공하는 교수 정원을 늘릴 수 없는 문제와 후학을 키울 전공자들이 학교보다 기업을 선호하는 문제가 겹쳐 가르칠 사람이 크게 부족하다. 제자가 졸업하자마자 교수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으니 교수가 될 만한 자원 충원이 쉽지 않다. 예전에는 외국 대학에서 교수를 하거나 저처럼 외국 기업에서 일하다가도 학교에서 부르면 왔다. 그러나 기업과 학교 간 월급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니 반도체 관련 고급인력을 학교에 붙잡아두는 일이 쉽지 않아졌다. 우리 학부에서도 은퇴한 명예교수 두 분이 강의를 맡고 있을 정도다(전체 반도체 전임교수는 11명). 명예교수님께 강의를 맡기는 건 고육지책인데 그나마 이분들도 규정상 5년밖에는 강의를 할 수 없어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_교수진 확보를 위한 획기적 대안이 없을까.

“과감한 제안이지만 교수라도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조금 도움이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1주일에 3~4일은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하루나 이틀은 기업에서 일할 수 있다면 학교에 남겠다는 지원자도 늘어날 것이고, 자연스럽게 산학협력도 될 것이다. 교수 겸직이 허용돼 있긴 하지만 대학 본부에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어쨌든 현실적으로 경제적 메리트는 있어야 한다. 또한 공학이라는 게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고 실제 기업에서 필요한 연구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겸직이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회사로 갈 수도 있고 반대로 회사에 있는 사람이 학교에 오는 경우도 생길 수 있어 서로 도움이 될 것이다.”

연도별 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


_학생 채용을 전제로 기업이 학교를 지원하는 연계형 반도체 계약학과가 고려대, 성균관대, 연세대에만 있었는데 앞으로 7개로 늘어난다. 이 대학의 교수 지위가 불안정해 안정적 교수 인원을 확보하기 어렵다는데 지속가능할까?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때문에 정식 학과로 늘릴 수 없으니 정원외로 선발하는 계약학과를 만드는 건 불가피하다고 본다. 계약학과에서 전임교수를 두려면 교육부나 학교의 지원이 더 필요한 건 맞다. 하지만 계약학과를 만들면 기업에서 운영비를 지원한다. 그 운영비를 활용하면 사실상 전임교수와 다름없는 ‘기금교수’를 채용할 수 있다. 기금교수 등을 활용하면 학부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수진 정도는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계약학과가 5년마다 없어질 수도 있어 교수 지위가 불안하다는 걱정도 하시는데 성균관대만 해도 계약학과가 만들어진 지 15년이 넘었는데 문제 없이 유지되고 있다. 반도체 산업 전망을 볼 때 그런 걱정은 기우다. 또한 지금은 이것저것 걱정할 때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포토마스크를 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_새 정부의 반도체 인력양성 정책이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비수도권 대학에서는 벌써부터 큰 걱정이다. 상생할 수 있을까.

“그런 우려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지난해 5월 시작한 ‘디지털 기술 혁신 공유대학 사업’ 같은 방식의 확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차세대 반도체 분야와 관련해서는 서울대가 주관 대학이 돼 강원대, 대구대, 숭실대, 조선이공대(전문대), 중앙대, 포항공대(포스텍) 등 7개 대학이 참여했다. 7개 공유대학 간 학점 교류를 한다. 코로나 시기에는 온라인 강의를 했지만 이번 여름 방학에는 대면 강의를 할 계획이다. 서울대가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강의자료 동영상을 만들면 다른 학교 학생들이 수강할 수 있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 강의에 익숙해져서 거부감도 적고, 지방 학생들의 호응도 좋다. 현재 강원대를 비롯해 34명의 다른 학교 학생이 차세대 반도체 교육을 주관하는 서울대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미국도 지금 반도체 인력이 부족하니 이런 방식을 쓴다. 200개 대학이 연합해 커리큘럼을 만들고 기업으로부터 1억 달러 정도 지원받아 공유 대학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찾으려 하면 방법이 없지 않다.”

_반도체 인력 양성에만 투자하면 로봇, 바이오 같은 다른 미래 산업 분야에서 인력양성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우려할 수는 있다. 그래서 전공 간 이동을 유연하게 하자는 것이다. 반도체 학과에서 20% 정도 핵심인력을 양성하고 나머지 인력을 산업 수요에 따라 느슨하게 이동하게 하는 방식이다. 서울대의 연합전공이나 혁신공유대학 사업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 핵심은 유연성이다.”

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2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공과대학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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