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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국이 최애 아이돌'...애국주의 팬덤에 빠진 中 밀레니얼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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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국이 최애 아이돌'...애국주의 팬덤에 빠진 中 밀레니얼 세대

입력
2022.06.30 16: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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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학자들의 '팬덤 애국주의' 탐구
'쯔위 사건' 계기로 소분홍 탄생,
한국 네티즌과 각종 논란
"중국 내에선 이미 한풀 꺾였다" 시각도

아이돌이 된 국가ㆍ류하이룽 엮음ㆍ김태연, 이현정, 홍주연 옮김ㆍ갈무리 발행ㆍ320쪽. 2만 원.

아이돌이 된 국가ㆍ류하이룽 엮음ㆍ김태연, 이현정, 홍주연 옮김ㆍ갈무리 발행ㆍ320쪽. 2만 원.

소분홍(小粉紅ㆍ작은 분홍색). 전 세계를 상대로 시비를 일삼는 중국 애국주의 네티즌을 말한다. 1990년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가 주축이다. 분노 청년, 21세기 홍위병으로도 익히 알려져 있다. 디올이 패션 화보에서 중국 여성을 기괴하게 묘사했다고 난장을 피우고, 방탄소년단(BTS)이 한미 우호관계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자 분노한다. 베이징 동계올림픽ㆍ김치ㆍ한복 논쟁에서도 그 화력을 뽐냈다.

중국 밖에서 소분홍은 ‘공산당에 세뇌된 극단주의 청년’이다. 책 ‘아이돌이 된 국가’는 정형화된 소분홍을 보다 다각도로 분석한 책으로, 미국과 중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출신 학자 12명이 참가했다. 한국 일베조차 이해하기 어려운데, 남의 네티즌 사정까지 알아야 하나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분홍은 중국 밀레니얼 세대가 한류 아이돌 ‘덕질’을 하다 탄생했다. 민족주의와 정보통신(IT) 기술, 한류 아이돌 팬덤 문화가 뒤엉킨 기묘한 현상을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볼 수 없다.

책은 2016년 1월 발생한 ‘디바(帝吧) 출정’ 사건을 집중 분석한다. 아이돌 트와이스 쯔위가 방송에서 대만 깃발을 흔들자 중국 네티즌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 그 사건이다. 회원수 3,200만 명,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 커뮤니티 중 하나인 디바 유저들은 쯔위를 옹호한 대만 차이잉원 총통과 독립 성향 언론사들에 댓글 테러를 벌였다. 중국 내에서 활동하던 애국주의 네티즌이 해외 원정에 나선 계기다.

당초 중국의 과격 네티즌들은 디바 유저들이 주류였다. 여기에 밀레니얼 세대 여성들이 유입되며 남녀 혼성팀 소분홍으로 거듭난다. 소분홍이라는 용어도 젊은 여성들이 자주 찾는 웹소설 사이트 ‘진장문학성’ 게시판이 분홍색인 데서 유래했다. 정치보다 연예뉴스와 웹툰, 웹소설에 관심이 많고, 한류 아이돌 덕후라는 점이 특징이다.

젊고 자유분방한 청년 세대가 어떻게 애국 광신도가 됐을까. 우선 중국의 자존심은 아편전쟁, 청일전쟁에서 패배하며 박살 났다. 공산당은 서구를 향한 열등감과 원한을 통치에 활용했다. 뿌리 깊은 민족주의가 소분홍에도 유전됐다는 얘기다. 아이돌 팬덤 활동은 정치와 무관해 보이지만 매일 국가 대항전을 치른다. 가령 팬덤의 활동 실적, 구매 기록 등은 국가별로 노출된다. 한국, 미국, 일본 팬덤과 경쟁하며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체득하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8일 쓰촨성 이빈대를 방문해 대학생들의 박수 인사에 답하고 있다. 신화사 캡처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8일 쓰촨성 이빈대를 방문해 대학생들의 박수 인사에 답하고 있다. 신화사 캡처 연합뉴스

이들에게 조국은 '우리가 지켜야 할 최애 아이돌'이다. 중국 기성 세대가 조국을 ‘하늘이고 어버이이자 스승’으로 여겼다면, 팬덤 세대는 조국 자체를 아이돌화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이돌(중국)의 성공과 실패에 울고 웃고, 아이돌(중국)의 성장에 헌신하며, 아이돌(중국)이 무대에서 만족스러운 배역을 따내지 못하면 실력 행사에 나서는 점이 꼭 닮았다. 저자들은 "팬덤 활동에서 나타나는 '자발적 참여'와 '자기 만족' 성향이 소분홍에 투영돼 있다"고 설명한다.

애국주의 팬덤과 공산당의 관계는 미묘하다. 공산당은 대중 지배를 위해 민족주의팬덤을 암암리에 지지하지만, 통제 불가능하게 커지는 상황을 우려한다. 공산당은 민족주의 세력이 당을 위협할 경우 주도자나 참가자를 체포하는 식으로 대응해왔다.

일베와 개딸에도 이유가 있듯이, 소분홍의 탄생도 전후 맥락이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다만 소분홍이 ‘즐거움을 추구하는 자발적 개인의 모임’이라는 분석은 왠지 석연치 않다. 국내 학자인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이 지난해 출판한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 청년’(푸른역사)은 이런 지점에서 함께 읽기 좋은 책이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공산당은 소분홍 탄생에 조직적으로 관여했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소분홍의 애국 활동은 얼마나 계속될까. 책을 번역한 김태연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부교수는 한국일보에 “이미 중국 내에서도 한풀 꺾였다”며 “소분홍의 과격한 행동에 대한 중국 내부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고, 경제 상황이 어려워져 자신보다 국가를 생각하는 애국주의가 위축됐다”고 전했다. 아이돌(정부)의 매력(유능)이 떨어진다면 팬덤 활동에도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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