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비즈서울과 성동구, 도심양봉단 설립
벌로 새로운 삶 시작한다는 '비긴 어게인(Beegin Again)'
주요 100대 농작물 70% 이상이 꿀벌에 의존
"꿀벌 살 수 있는 환경이 사람 살 수 있는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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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활동성도 좋고, 꿀도 잘 들어오고 있네요."
지난 13일 경기 고양시 한 양봉장. 3년차 도시양봉가 신기철(64)씨가 훈연기로 쑥 연기를 내뿜으며 형형색색의 벌통 30여 개 가운데 하나를 골랐다. 쑥 연기는 사나워진 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신씨가 벌통 속 벌집을 꺼내 들자 '벌떼처럼 몰려든다'는 말 그대로 꿀벌과 꿀벌이 모아놓은 꿀이 가득했다. 여왕벌은 잘 있는지, 알은 잘 낳고 있는지, 꿀은 잘 모으고 있는지 등을 살피는 내검(벌통 속 검사)의 한 과정이다. 이날 작업은 타 지역 여왕벌 교체 준비, 벌통 주변 밀원식물(꿀벌이 꽃꿀, 꽃가루와 수액을 수집하려고 찾아가는 식물)에 물 주기, 잡초 제거를 마치고서야 끝났다.
이 곳은 도시양봉을 하는 사회적 기업 어반비즈서울이 운영하는 양봉장 가운데 본부 기지역할을 한다. 서울 시내 기업 옥상이나 대학교, 가정집 마당 등 20여곳에 설치한 벌통 속 벌들이 이곳으로 와 겨울을 나고, 또 이곳에서 키운 벌을 각 지역으로 보낸다. 도시양봉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교육장이기도 하다.
매주 월요일 이곳에선 어반비즈서울과 서울 성동구 지역자활센터가 만든 도시양봉 사업단 '비긴 어게인'(Beegin again)이 만나 한 주간 활동을 점검하고 계획을 세운다. 이날도 박찬 어반비즈서울 이사와 비긴 어게인 회원 5명이 타 지역 벌통 속 여왕벌 교체를 논의한 후 각자 맡은 지역으로 이동했다.
벌(Bee)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Beegin Again)
수십 년 동안 인테리어 일을 해온 신기철씨는 은퇴 후 2020년 말부터 비긴 어게인에서 양봉가로 활동하고 있다. 어반비즈서울은 2018년 성동구 지역자활센터와 협약을 맺고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서민들이 도시양봉을 배워 양봉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비긴 어게인 사업단을 만들었다. 벌(Bee)을 통해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Beegin Again)이라는 뜻을 담았다.
현재 비긴 어게인에선 5명이 활동하고 있다. 3년차 신씨를 포함해 6개월부터 2년까지 이들의 경력은 다양하다. 이들이 생산한 꿀은 어반비즈서울이 전량 수매해 판매한다. 지난해에는 약 1.2톤의 꿀을 생산했다. 판매 수익금은 비긴 어게인 활동가의 월급이 되고, 꿀벌 숲 등을 조성하는 데도 사용된다.
비긴 어게인의 또 다른 주요 활동은 '비(Bee) 119' 다. 서울에서 신고가 들어오는 분봉(여왕벌과 일벌이 집을 옮기는 것) 난 벌들을 구조하는 일이다. 서씨는 "연락은 계속 오지만 인력이 부족해 많이 나가지는 못한다"면서도 "구조한 벌은 살려서 데려다 키운다. 사람도 벌도 돕는 일이라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냥 벌이 좋아"… 취미로 양봉하는 사람들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차분해져요."
5년차 도시양봉가 이정범(38)씨는 매 주말 다른 양봉가 2명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부근 카페 옥상에 마련된 양봉장을 찾는다. 어반비즈서울이 운영하는 도시양봉장 중 한 곳이다. 양봉하기 위해선 벌통을 놓을 장소를 포함해 각종 장비가 필요한데 일반인들이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어반비즈서울은 장소와 장비, 노하우를 제공하고 이씨와 같은 양봉가들은 벌을 관리하는 일을 맡는다. 벌을 관리해주면 돈을 받을 법도 한데, 이들은 오히려 어반비즈서울에 양봉장 이용료를 낸다. 대신 도시양봉을 통해 수확한 벌꿀을 받는다. 이씨는 "미군 참전용사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를 위해 양봉에 참여했다는 기사를 봤다"며 "양봉은 사람을 차분하게 한다. 벌의 움직임을 보면 경이롭다"고 말했다.
이씨와 같은 도시양봉가가 되려면 어반비즈서울이 운영하는 1년 과정 실전반 교육을 마쳐야 한다. 가을철 월동준비부터 벌의 겨울나기 돕기, 다음해 5월 본격적 채밀(꿀 뜨기)까지 최소한 1년을 배워야 해서다.
생태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꿀벌 살리자
이들이 도시양봉을 하는 이유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꿀벌이 결국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주요 100대 농작물 가운데 70% 이상이 꿀벌의 수분으로 생산되고 있다. 수분이 안 되면, 열매도 씨앗도 생기지 않는다. 꿀벌이 사라지면 농산물이 줄고, 식량난으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크다. 신기철씨는 "벌을 키우는 게 식량난 해소는 물론 지구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벌을 키우는 데 흥미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초에는 유독 꿀벌 뉴스로 시끄러웠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겨울 전국에서 사라진 꿀벌이 78억 마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꿀벌 응애류, 말벌류에 의한 폐사와 이상 기상, 살충제 노출까지 다양한 원인이 지목되고 있다.
도시양봉 역시 지난해 피해가 적지 않았다. 어반비즈서울이 운영하는 180여 개 벌통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 본격적으로 채밀이 시작되는 5월에 유독 일조량이 적었는데 꿀벌의 먹이가 되는 꽃이 적게 피면서 벌꿀 생산량도 줄었다. 어반비즈서울은 벌의 먹이가 되는 꿀이 적게 모이면서 월동 성공률도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올해는 지금까지 전년보다 벌꿀 생산량이 늘었지만 꿀벌 실종은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는 문제다.
박찬 어반비즈서울 이사는 "꿀벌의 먹이가 되는 밀원식물을 심고 진드기 처리를 위한 친환경적 방법이 보편화돼야 한다"며 "꿀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다. 꿀벌이 살아갈 환경을 지켜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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