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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

입력
2022.06.27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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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제64회 그래미 어워드에 참석한 BTS. AFP 연합뉴스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제64회 그래미 어워드에 참석한 BTS. AFP 연합뉴스

"그들은 21세기 비틀스이자 글로벌 팝 센세이션이다." 2018년 BTS가 영국 음악의 심장부인 O2 아레나 공연을 매진시켰을 때, BBC 방송이 던진 찬사다. 그리고 O2 아레나를 가득 채운 관객들이 한국어로 된 BTS 노래들을 '떼창'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놀라운 사건도 이후 일어난 일들에 비하면 시시하다. 이듬해 BTS는 록 밴드 퀸이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펼쳤던 전설의 무대 웸블리 스타디움으로 진격했다. 7만 석이 넘는 스타디움의 이틀치 티켓이 90분 만에 매진됐다.

2020년엔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빌보드 핫100 1위에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마침내 오르는 새 역사를 썼다. 1년 뒤 발표한 '버터'(Butter)는 빌보드 핫100 1위를 무려 10주 동안 지켰다. 거짓말 같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돌이켜보면 유엔에서의 세 차례 연설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콧대 높은 그래미 시상식에서 축하 공연을 펼치고, 최근엔 백악관에까지 초청받아 현지 기자단을 술렁이게 했다. 10년 전 누군가가 가까운 미래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 거라고 얘기했다면 비웃음만 샀을 것이다. 높이로만 따진다면, BTS가 이룰 꿈은 이제 더 이상 없어 보인다.

그런 BTS가 최근 '번아웃'을 호소하며 팀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리더 RM은 "K팝 아이돌 시스템이 사람을 숙성하게 놔두지 않는다"며 "계속 뭔가를 찍어야 하니까 내가 성장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다이너마이트'까지는 우리 팀이 내 손 위에 있었던 느낌인데 그 뒤에 '버터'랑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부터는 우리가 어떤 팀인지 잘 모르겠더라"며 정체성 혼란을 고백했다.

BTS는 다른 아이돌과 달리 스스로 곡을 만들고 프로듀싱까지 하는, 뮤지션 자의식이 뚜렷한 그룹이다. 그런 그들이 외국인 작사, 작곡가 조력으로 가장 높은 성공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들은 그 성공을 회의했다. 그리고 성찰과 축적의 시간을 갖기 위해 팀 활동 일시 중단이라는 강수를 던졌다. 폭주하는 성공의 열차에서 뛰어내리기 위해선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BTS의 이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성공과 명성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그게 음악의 본질이 될 수 없다. 악은 무엇보다 먼저 나를 구원하는 행위다. 세상을 다 얻어도 스스로 충만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세계적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더 월'(The Wall)은 실존과 소외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로 가득 찬 걸작이다. 앨범을 주도한 베이시스트 로저 워터스는 스타디움 공연 때 맨 앞줄에서 괴성을 지르던 관객에게 침을 뱉은 적이 있다. 그때 그는 무대와 객석 사이에 벽을 느꼈으며,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충격을 받았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 후 이 벽의 문제의식을 존재와 세계로 확장해, 이제는 전설이 된 명반을 내놨다. 거대한 성공의 순간에 찾아온 환멸이 새로운 음악적 도약의 바탕이 됐다.

BTS 역시 지금의 멈춤이 훗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삶은 마지막에 죽음이라는 거대한 실패를 만나게 돼 있다. 찬란한 성공도 거기로 향하는 여정 위의 사소한 에피소드일 뿐이다. 성공을 위해 음악적 자유를 절대 포기하지 말 것, 자유와 늘 한 쌍인 고독을 언제나 곁에 둘 것, 그리고 좌절의 시간이 오더라도 끝까지 자신을 사랑할 것. BTS가 그럴 수 있길 바란다. 음악은 산업이기 이전에 '소우주'인 우리들 영혼의 양식이다.


이주엽 작사가·JNH뮤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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