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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무너지고 깨지고 찢어진 도자기…공산품에서 현대 미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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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무너지고 깨지고 찢어진 도자기…공산품에서 현대 미술로

입력
2022.06.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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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강석영 작품전
이길이구 갤러리, 30일까지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을 벗어나 샛길에 자리잡은 이길이구 갤러리로 들어서면 흰빛 가득한 지하 공간이 나타난다. 불순물이 없는 백색 점토의 색감을 자연스럽게 드러낸 도자들로 채워진 전시장이다. 도자들은 색상 뿐만 아니라 조형적 특징을 공유한다.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가 어느 지점부터 묘하게 뒤틀리고 찢겨져 나간다. 중앙에 늘어선 둥글고 네모진 기둥들은 수직으로 곧게 뻗어나가다 제풀에 무너지듯 일그러졌다. 누구 탓이 아니라 자기 무게를 견디지 못한 형상이다. 전통 창호의 격자처럼 무리를 지어서 걸린 정사각형 도판들도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표면이 파헤쳐졌다. 미니멀리즘을 바탕으로 자연을 표현해온 도예가 강석영(73)의 작품이다.

도예가 강석영이 서울 강남구 이길이구 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물방울을 본뜬 '무제'는 올해 제작됐다. 원형에 변형을 일으키는 기존의 작풍과는 다른 모습이다. 김민호 기자

도예가 강석영이 서울 강남구 이길이구 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물방울을 본뜬 '무제'는 올해 제작됐다. 원형에 변형을 일으키는 기존의 작풍과는 다른 모습이다. 김민호 기자


손바닥만한 도판의 표면을 구멍을 뚫거나 베어서 변형한 무제(2022).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도판의 뒷면에 거울이 설치돼 있다. 호기심에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바라보지만 그 너머에 있는 것, 그가 마주치는 것은 그 자신이라는 의미다. 이길이구 갤러리 제공

손바닥만한 도판의 표면을 구멍을 뚫거나 베어서 변형한 무제(2022).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도판의 뒷면에 거울이 설치돼 있다. 호기심에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바라보지만 그 너머에 있는 것, 그가 마주치는 것은 그 자신이라는 의미다. 이길이구 갤러리 제공


다양한 '무제'들을 모아서 전시한 벽면. 강석영은 "시골에 가서 머무른 적이 있어요. 근데 안에서 떠들잖아요. 사람들이 궁금하니까 창호지에 구멍을 뚫거든요. 그것을 표현한 거죠. 작품 뒤에는 스텐(금속제) 거울을 집어넣었어요. 궁금해서 들여다보고 내다보지만 (그건) 바로 너였다"라고 말했다. 이길이구 갤러리 제공

다양한 '무제'들을 모아서 전시한 벽면. 강석영은 "시골에 가서 머무른 적이 있어요. 근데 안에서 떠들잖아요. 사람들이 궁금하니까 창호지에 구멍을 뚫거든요. 그것을 표현한 거죠. 작품 뒤에는 스텐(금속제) 거울을 집어넣었어요. 궁금해서 들여다보고 내다보지만 (그건) 바로 너였다"라고 말했다. 이길이구 갤러리 제공

강석영은 물레를 돌리는 작가가 아니다. 그는 공업용 기술로 여겨지는 슬립 캐스팅(주입 성형) 기법으로만 작품을 만들어왔다. 홍익대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공부하던 1980년대나 귀국해서 이화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이나 한결같다. 이길이구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이달 30일까지 전시하는 신작들을 비롯해 그리스 아테네의 국제도예올림픽 공원, 미국 브루클린 뮤지엄, 국내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소장한 작품도 모두 캐스팅으로 제작됐다. 지난해 개관한 서울공예박물관의 외벽에 걸린 4,000여개의 타일도 마찬가지다.

그의 작품은 인위적으로 우연성을 유발한 결과물이다. 모순 같지만 작업 과정을 살펴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첫 단계는 석고를 이용해서 틀을 만들고 안쪽에 백토를 붓는 것이다. 틀에서 떼어낸 원형에 손이나 나무 칼로 변형을 가하는 것이 다음 단계다. 구멍을 뚫거나 자국을 내거나 찌그러뜨리는 식이다. 날카롭게 베여 나간 부분이 있는가 하면, 손으로 헤쳐서 흙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한다. 작품을 건조하고 굽는 과정에서도 변형이 일어난다. 최근 갤러리에서 만난 작가는 “불 속에서 변하는 형태는 예측을 못한다. 이렇게 좀 찌그러져라, 요렇게 깨져라. 그렇게 인위적으로 우연성을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물방울 형상의 '무제'들 가운데 일부에 유약을 바른 점도 기존과 다른 모습이다. 색상에 변화를 줘서 리듬(운율)을 만들어냈다. 김민호 기자

물방울 형상의 '무제'들 가운데 일부에 유약을 바른 점도 기존과 다른 모습이다. 색상에 변화를 줘서 리듬(운율)을 만들어냈다. 김민호 기자


전시장 중앙에는 강석영의 작풍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장 중앙에는 강석영의 작풍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무제(2022)와 또 다른 무제(2022). 이길이구 갤러리 제공

무제(2022)와 또 다른 무제(2022). 이길이구 갤러리 제공

우연성은 간단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가가 원하는 변형을 유도하려면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점토는 제멋대로 수축해버린다. 표면에 기포가 만들어낸 구멍이 남기도 한다. 유약을 바르지 않고 흙의 질감을 드러내면서도 표면을 매끄럽고 균일하게 만드는 것도 복잡한 작업이다. 작가가 캐스팅을 고집하는 이유도 뒤틀림 없는 완벽한 원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우연성을 추구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이 일부러 꺾거나 뚫으면 선이 딱딱하고 부드럽지 못하다. 그런데 불 속에서 휘어지면서 만들어지는 선은 사람이 흉내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작가는 최근 경기 가평군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혼자서 작업해왔다. 도예가로 40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지만 실험은 계속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전과 달리 유약을 사용하거나 평면에 그림을 그린 듯한 작품들도 보인다. 작가는 도예가 용기처럼 실용적 도자기에서 출발했지만 앞으로 더욱 다양한 작품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전에는 물레로 만든 것이 아니면 다 산업적이라고 하면서 작품으로 치지도 않았어요. 도자기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했다가 ‘야, 그런 걸 갖고 왔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어요. 이제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도자기 전시라고 이렇게 테이블에 놓는 것만 있는 게 아니죠. 도자를 소재로 현대 미술을 하는 겁니다.”


천으로 매듭을 만들고 장미꽃을 더한 30cm 남짓한 오브제. 강석영은 1971년도 작품이라면서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미도파 백화점 갤러리에서 전시를 했어요. 그랬더니 '이게 뭐야 이게 도자기야?'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

천으로 매듭을 만들고 장미꽃을 더한 30cm 남짓한 오브제. 강석영은 1971년도 작품이라면서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미도파 백화점 갤러리에서 전시를 했어요. 그랬더니 '이게 뭐야 이게 도자기야?'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


이번 전시에는 평면, 회화처럼 보이는 작품들이 여럿 전시됐다. 작가가 머무는 가평군의 풍광을 담은 작품들이다. 이길이구 갤러리 제공

이번 전시에는 평면, 회화처럼 보이는 작품들이 여럿 전시됐다. 작가가 머무는 가평군의 풍광을 담은 작품들이다. 이길이구 갤러리 제공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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