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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뿌리는 동·서양 아닌 중양(中洋)...서구 중심 학계에 자극 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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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뿌리는 동·서양 아닌 중양(中洋)...서구 중심 학계에 자극 주고 싶어"

입력
2022.06.27 13:57
수정
2022.06.27 14:1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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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본사' 출간한 중동 권위자 이희수 교수
15개 중동 제국 및 왕국 역사 추적
1만2000년 중동이 '역사 중심' 증명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동 문명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17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동 문명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중동ㆍ오리엔트 문명은 야만적이고 후진적이다. 역사적 평가만 봐도 그렇다. 서양이 중동을 공격하면 정복ㆍ승리ㆍ문화 전파로 기록된다. 반면 중동의 서양 공격은 약탈ㆍ폐허ㆍ문화 파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 같은 표현은 또 얼마나 호전적인가. 세계사의 주인공도 유럽(서양)과 중국(동양)이고 중동은 좋게 봐야 ‘실크로드 중간상인’인 조연이다.

중동 문화 연구의 권위자 이희수(69)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에 따르면 이는 “백인 우월주의와 기독교 중심사상에서 비롯된 왜곡된 시각”일 뿐이다. 서양 문명이 근ㆍ현대에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중동 문명을 의도적으로 깎아 내렸단 얘기다. 이 교수가 최근 출간한 ‘인류본사’는 이런 시각으로 폄하됐던 중동 문명의 찬란한 역사를 복원한다. 서양, 동양과 대등하게 중동을 다루기 위해 중양(中洋)이란 개념도 제시한다. 최근 한국일보에서 만난 이 교수는 “중동이야말로 인류 문명을 발아하고 성숙시킨 인류의 본사(本史)”라고 강조했다.

이희수 지음. 인류본사

이희수 지음. 인류본사


"중동은 인류의 요람이자 스승"

중동은 인류 문명의 요람이다. ‘4대 문명’인 이집트ㆍ메소포타미아ㆍ인더스ㆍ황하에서 문명이 태동했다고 배웠다면, 옛날 얘기다. 이미 터키 하란고원에서 4대 문명보다 약 6,000년 앞선 초고대 문명 ‘괴베클리 테페’가 발굴됐다. 신화 속 얘기가 아닌 고고학적 ‘팩트’다. 탄소연대 측정법 등을 사용해 분석한 결과, 약 1만2000년 전에 세워졌다. 원형을 형성한 돌기둥으로 미뤄 볼 때 신석기 시대 신전 도시로 추정된다.

중동은 인류의 스승 역할도 했다. 히타이트ㆍ파르티아ㆍ페르시아ㆍ티무르ㆍ무굴 등 인류본사에 담긴 15개 제국과 왕국의 역사는 인류 발전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기원전 2,000년 등장한 히타이트는 인류 최초로 철기 문명을 꽃피웠다.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는 다른 언어, 종교, 문화를 인정하는 ‘다문화 정책’의 원조격이다. 나스르 왕조는 ‘알함브라 궁정’에서 보여주듯 높은 수준의 과학ㆍ건축 기술을 자랑했다.

더 있다. 알파벳은 중동 문자인 페니키아 문자에서 영향을 받았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길가메시 신화’ ‘조로아스터교’ 등 중동 신화와 종교에 빚지고 있다. 근대 이전 과학이 집결된 네덜란드 풍차도 원래 중동에서 비롯됐다. 유럽이 1,000년 중세 암흑기에 빠져 있을 때 중동은 과학ㆍ문화ㆍ예술을 발전시키고 실크로드를 통해 전 세계에 전파했다.

인류 문명의 요람, 터키 괴베클리 테페 유적지. 휴머니스트 제공

인류 문명의 요람, 터키 괴베클리 테페 유적지. 휴머니스트 제공


중동 문명은 야만? 서구 편견 탓

중동 문명은 왜 평가절하됐나. 기독교, 백인, 서양 문명이 ‘우월해야’ 하고, 그러자면 중동은 '열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를 점령한 것을 두고 ‘미개한 중동에 헬레니즘 문화를 이식했다'고 보는 시각이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이미 페르시아에는 3,000년 동안 축적된 과학ㆍ제도ㆍ예술이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며 “알렉산드로스가 이 광대한 제국을 13년이라는 짧은 시간 발 아래 두었다고 해서 서양의 승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율법 때문에 ‘야만스럽다’고 평가되는 함무라비법전도 재평가받아야 마땅하다. 282개조로 이뤄진 법전에는 “빚 때문에 노예가 된 경우 채권자의 집에서 3년 동안 노예로 일하게 한 뒤 풀어줘야 된다” “재판관이 판결문을 작성한 뒤 이를 변경할 경우 벌금을 내야 하며 재판관 자리에서도 영구히 해임된다” 등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법 정의를 추구하는 내용들이 담겼다. 중동의 호전성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널리 알려진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도 십자군 전쟁 때 기독교가 만든 이슬람 혐오 사상에서 유래했다.

이 교수는 물론 중동의 한계도 잘 안다. 그는 “서양이 자본주의와 과학을 발전시키면서 중동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뒤처지기 시작했다”며 “서양은 르네상스를 통해 신과 세속적인 것을 구분하고 발전의 길에 들어갔지만, 이슬람은 신이라는 절대영역을 넘지 못했다”고 했다. 종교가 정치에 간섭하면 국가가 위태로워지는 점은 현대에도 여러 시사점을 던진다.

이 교수는 터키 이스탄불대학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동 지역은 166번 방문했고, '인류본사'에 소개한 지역은 한 곳도 빠짐 없이 직접 답사했다.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나자는 주의ㆍ주장이야 많지만 진짜 중동 전문가가 40여 년간 발로 뛰면서 연구해온 현장성과 구체성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인류본사라는 제목이 도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이 교수는 “서구 중심적인 학계에 자극을 주기 위해 '인류본사'라는 제목을 출판사에 요청했다”고 했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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