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은빛순라군 14년 운영
시민 안전귀가에 관광 볼거리 제공 역할
2013년 '전국노인자원봉사 대축제'서 복지부장관 표창
지난 20일 오후 8시 10분쯤 대구 중구 동인동 골목길. 조선시대 무관 모자인 전립을 쓰고 빨강 파랑 쾌자(조선시대 군복)를 입은 70, 80대 남성 3명이 경광봉을 들고 동네 이면도로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빈 건물을 둘러보고, 술 취한 행인의 귀가도 챙겼다. 흡사 동네 순찰에 나선 경찰관들을 연상케 했다.
이날 오후 8시쯤 중구청에서 김광석다시그리길까지 왕복 4.2㎞의 골목 순찰에 나선 이들은 노인일자리 때문에 중구에서 조직한 '은빛순라군'이다. 14년차인 김광부(84)씨는 "포졸 옷차림으로 밤에 동네 골목을 샅샅이 살피면서 주취자나 노약자의 안전귀가를 돕고 있다"며 "가끔 외국인 관광객이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범죄예방과 관광 도우미로서 1인 2역을 하는 셈이다.
2009년부터 노인일자리 차원에서 중구가 조직한 은빛순라군이 도심 명물로 거듭나고 있다. 조선시대 도성 안팎을 순찰하며 치안유지와 경비 임무를 맡았던 순라군에서 이름을 차용했다. 중구에 대구읍성과 경상감영이 위치했던 역사적 사실도 영향을 미쳤다. 중구로부터 사업을 위탁받은 대한노인회 대구중구지회는 65세부터 88세까지 노인 24명으로 은빛순라군을 운영 중이다.
14년째 활동하고 있는 은빛순라군은 3인 1조, 8개 조로 나눠 활동한다. 이들의 주된 업무는 시민들의 안전귀가와 공공시설물 점검, 청소년 탈선 예방이다. 실제 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진 시민을 119에 인계하고, 만취한 노인을 부축해 귀가시키고, 공원 내 부서진 의자를 점검하느라 활동 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김길웅(82)씨는 "순찰 중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해 신고했다가 경찰에 증인으로 조사받으러 다니느라 곤혹을 치른 적도 있다"고 웃었다.
이들은 매년 3~10월 평일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2시간 동안 4개 구역별로 순찰에 나선다. 순찰 구역은 청라언덕~계산성당~종로~경상감영공원, 중구청~동덕초~삼덕초~김광석길, 남산어린이공원~남산초~대구가톨릭대 유스티노캠퍼스, 대구역~교동~2·28기념중앙공원~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까지 모두 4구간이다. 구간별로 순찰 거리는 왕복 4㎞ 안팎이다. 이들이 순찰에 나서는 거리에는 이상화고택과 진골목 등 대구의 관광명소가 적지 않게 위치해 있다. 이들과 사진을 찍기 원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이유다.
14년이란 시간을 이어온 만큼 외부에서도 이들의 활약상을 주목한다. 2013년에는 제7회 전국노인자원봉사 대축제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중구 외에도 전국의 여러 기초자치단체가 비슷한 역할의 순라군 도입에 나섰지만, 방범 업무까지 수행한 것은 이곳이 유일하다. 우금주 대한노인회 대구중구지회 관리부장은 "순라군에 속한 분들은 안전한 밤거리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크다"며 "안전과 복지를 아우르는 은빛순라군은 중구만의 자랑거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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