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히키코모리'가 잘못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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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히키코모리'가 잘못된 건가요

입력
2022.06.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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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여러분의 일상다반사를 들려주세요. MBTI상 확신의 논리형(T)인 8년차 기자와 뼛속까지 공감형(F)인 4년차 기자가 하나의 고민에 서로 다른 콘텐츠를 추천하는 큐레이션입니다. 평범한 이웃들의 비범한 고민에 특유의 단짠 제안을 해드립니다.

코로나19로 대학 친구들과 화상 연결로 만난 시간이 더 긴 것 같았다는 비운의 20학번 대학생들. 게티이미지뱅크

'미개봉 학번', '비운의 세대'인 20학번 대학생입니다. 2020년에 대학교를 입학해 올해 3학년이 됐어요. 코로나19로 대학 친구들과 화상 연결로 만난 시간이 더 긴 것 같아요.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많이 풀리면서 오리엔테이션(OT), 수련회(MT), 축제와 같은 캠퍼스의 낭만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듯합니다. '과방(학과 자치 공간)', '학식(학생식당)'도 바글바글하고요.

하지만 원래부터 내향적이었던 저는 비대면 생활이 더 익숙해요. 아주 가까운 몇몇 사람만 자주 만나고, 나머지 사람들과는 비대면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삶. 그게 제게는 더 편해요. 직접적 친밀감으로 인한 감정 소모가 제게는 더 크기 때문이죠.

사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서로의 근황도 잘 알고 있는데 굳이 직접 만나야 하나요? 집에서 공부, 운동, 인간관계 모두 다 영위할 수 있는데, 굳이 바깥으로 나가야 할까요? 저는 오히려 대면으로 인해 일어나는 차별, 범죄,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의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자꾸 사람들은 '아싸(아웃사이더)'라고 놀리는데, 저는 이게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요. 박태영(가명·22·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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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 루시' 포스터와 스틸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혼자 있는 시간에 에너지를 충전하는 내향(I)형인 기자에게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어쩐지 족쇄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대면 활동이 줄어들면서 사람을 만나는 데 에너지를 덜 쏟아도 됐기 때문이죠. 근무는 물론 요가와 외국어 공부 등 취미 활동도 화상통화로 모두 해결할 수 있어 참 편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에게도 만 2년이 넘는 고립 생활은 어느새 처절한 외로움, 그리고 그로 인한 무기력으로 돌아왔습니다. 과도한 인간관계가 스트레스였던 저는 자발적으로 고독을 선택했으나 오히려 생의 의욕마저 잃게 됐죠. 그런 저를 일으켜세워준 건 다름 아닌 주변 사람들의 진심 어린 위로였어요.

저는 태영님에게 일본 영화 '오 루시!'를 추천합니다. 홀로 살아가는 중년 여성 세츠코는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 첫 만남에서부터 그에게 진한 포옹을 하던 미국인 영어 강사 존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죠. 그러면서 세츠코는 존을 찾아 미국으로 떠납니다.

그저 유쾌한 로드 무비인가 싶었던 영화는 장면 하나하나가 칼날이 돼 제 심장 밑으로 깊이 파고 들었어요. 세츠코는 적극을 넘어 집착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데요. 존의 밀린 월세를 내주는가 하면, 존이 연인과 사랑의 징표로 한 문신을 따라하기도 하죠.

그런데 그 모습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를 알아봐 달라는 절박함이 보였어요. 세츠코가 얼마나 외로웠고 진심 어린 사랑을 원했는지 느껴지더라고요.

따뜻하지 않은 온도의 영화는 끝으로 갈수록 세츠코의 처지를 더 암담하게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난 후 세츠코의 삶이 절망적이지 않을 거란 기대를 하게 되는데요. 그 이유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진심 어린 포옹'의 슬픈 위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태영님도 많은 스트레스와 상처 속에서도 따뜻한 포옹의 온도와 향을 느껴보길 응원합니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처절한 고독도 사실은 새로운 포옹으로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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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나의 아저씨'. tvN 제공

태영님, 코로나19는 정말로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꿨지요. 특히 2020년 1월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지난 2년 반 동안 삶과 관계에 대한 기존의 생각이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저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데서 에너지를 얻는 외향(E)형인데요. 이런 저마저도 지난 시간 동안 저만의 안전한 공간에서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 익숙해졌으니 말이에요.

그런데 태영님의 고민에서는 단순히 '비대면' 방식이 더 편하다는 것보다 '대면'의 방식이 필요없다는 마음이 읽힙니다. 누구나 외출해서 타인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오늘 태영님께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한 편의 드라마를 추천하려고 해요. 바로 '나의 아저씨'입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쓴 박해영 작가의 전작이죠. 포털 사이트의 공식 소개에서는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아저씨 삼 형제와 거칠게 살아온 한 여성이 서로를 통해 삶을 치유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드라마를 설명해요.

21세의 불우한 여성 이지안의 주변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병든 할머니와 애면글면 살아가면서 꿈이나 희망 같은 단어는 삶에서 지워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이죠. 닥치는 대로 일하고 닥치는 대로 살지만 그의 삶은 나아질 길이 없습니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는 것도 사치. 그럴 경제적 여유도, 함께 커피를 마실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아 매번 믹스커피를 컵에 부어 휘휘 저어 마십니다. 세상에 대한 냉소와 불신만이 남은 지안은, 일터에서 45세 박동훈을 만나게 됩니다.

동훈은 대단한 경력도 능력도 없는, 그저 순리대로 사는 사람. 세상의 잣대로 보면 속 없이 우직하기만 해서, 손해 보는 사람으로 그려지지만 그는 인간에 대한 본능적인 따뜻함을 가진 인물입니다. 드라마는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지안과 동훈이 서로를 통해 위안받고 치유되는 과정을 그립니다. '휴머니즘'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드라마가 아닐까 싶어요.

저는 이 드라마처럼 나의 삶을 위로하는 순간이나 사람은,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른다고 생각해요. 지금 태영님은 인간관계에서 소모하는 에너지와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미 검증된 소수의 사람들하고만 만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비대면으로 관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태영님의 세상을 넓혀주거나 의외의 감동을 주는 사람은 도처에 있어요. 그리고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그 우연을 기대하는 일에 삶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까요?


손성원 기자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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