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연구가 나카가와 히데코
코로나 2년 수업 중 쓴 글 모아 '음식과 문장' 펴내
서울에서도 유독 한적한 동네 연희동. 그곳에 14년째 이어진 요리교실이 있다. 나카가와 히데코(55)씨가 운영하는 '구르메 레브쿠헨(Gourmet Lebkuchen)'이다. 2011년 첫 책을 낸 후 매년 요리책과 요리 에세이를 출판한 그가 최근 산문집 '음식과 문장'을 냈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 사태로 드문드문 수업을 하는 중에 쓴 글을 모은 책이다.
17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만난 히데코씨는 오랜 기간 요리와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부엌을 가리켰다. 그가 책에서 "창의적인 레시피로 조리에 분투하는 곳이자 행복을 나누고, 대화를 즐기는 교류의 장"이라고 소개한 그 '부엌'이다. 2층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그는 1층 전체를 요리 교실을 운영하는 공간으로 쓰고 있다.
2008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요리 교실이 열리는 그의 부엌에는 큰 테이블 두 개가 자리했다. 하나는 강사와 수강생이 섞여 요리하는 조리대고, 다른 하나는 직접 만든 음식을 즐기는 식탁이다. 마당이 마주 보이는 나무 테이블에는 음식 세팅을 위한 접시, 커트러리 외에도 음식 수다에 곁들일 술잔과 찻잔이 놓여 있었다. 시범을 보이는 강사와 따라하는 수강생들의 자리가 정해진 커다란 조리대가 공간을 채운 보통의 요리 교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히데코씨는 "요리 수업이지만 단순히 레시피를 소개하거나 시연하는 방식은 피한다"며 "요리하는 과정 자체와 식문화를 공유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재료 손질부터 설거지까지 요리의 모든 과정을 함께하며 대화한다"고 설명했다. "부엌에서 만들어진 인연과 이야기들이 14년째 새로운 음식과 문장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부엌 자체가 콘텐츠인 셈이죠."
그렇게 탄생한 것이 히데코씨만의 레시피다. 요리 교실은 테마별로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리는데 종류는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서양 음식은 물론 일식과 한식을 망라한다. 구성도 풀코스부터 도시락, 술안주, 파티 음식까지 다양하다. 프랑스 요리 전문 셰프인 아버지를 따라 6세 때 독일로 이주해 살다 스페인을 거쳐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경험한 식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이다. 그는 "요리사가 되기 싫어 번역일을 하고 일본어를 가르쳤지만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후 우연히 열게 된 요리 교실이 계기가 됐다"며 "요리 학교 같은 정규 과정을 전혀 밟지 않았기 때문에 나만의 요리를 풀어낼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도 '식당'을 오픈할 계획은 없다. 혼자 요리해서 일방적으로 음식을 전달하는 일에는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다. 유명 셰프들의 필수 코스인 유튜브 제작이나 방송 출연에 적극 나서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동네 요리 선생으로 남고 싶다는 그는 "사람들을 모아 요리하고 먹고 마시며 인생을 나누는 게 일상"이라며 "평생 1층으로 출근해야 할 팔자인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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