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군인, 교사 포함하면 100명 이상
직장 내 괴롭힘 산재 인정받기 어려워 한계
#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A씨는 얼마 전 우울증과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진단받았다. 병원 내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탓이다. 동료 직원들은 A씨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A씨만 모르는 이야기를 들으란 듯 떠들었고, 밥이나 간식을 먹을 때도 A씨 주변에 오지 않았다. 결국 병원을 그만뒀지만 A씨는 여전히 근무했던 곳 근처만 가도 가슴이 떨리고 호흡 곤란을 겪는다. A씨는 "이러다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 중 산업재해로 공식 인정받은 사람이 지난해에만 1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3년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19일 직장갑질119와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의 '정신질병 사망자(극단적 선택) 산재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산업재해를 신청한 사망자는 158명이었으며 이 중 산재를 인정받은 사례는 88명이었다. 극단 선택 후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서 순직으로 인정된 공무원 10명과 군인(군인연금관리공단), 교사(사학연금관리공단), 어선원 등을 포함하면 이 숫자는 100명을 넘는다.
정신질환 사망 산재 신청 건수는 2020년 87건에서 지난해 158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2013년(53건)에 비해서는 3배나 늘어난 수치다. 산재로 인정된 사망 건수도 2013년 20건에서 2020년 61건, 2021년 88건으로 크게 늘었다. 다만 신청 건수 대비 승인 비율은 2018년 80%에서 2020년 70.1%, 지난해 55.7%로 다소 줄어들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3년이 됐지만, 여전히 괴롭힘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2,000명을 대상으로 올해 3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의 23.5%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7.4%였는데, 비정규직(11.7%)과 비사무직(11.6%), 월급 150만 원 미만(17.4%) 등 집단에서 특히 비율이 높았다.
그러나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질환을 산재로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특히 상사의 폭언, 갑질 등으로 문제가 발생한 경우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는 점과 그로 인해 정신질환이 발병했다는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하는데, 객관적 증명이 쉽지 않아 산재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박성우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실제 극단적 선택 산재 건수는 근로복지공단에 신청된 것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산재 인정 요건이 너무 까다롭다"며 "극단적 선택 산재의 경우 사업주를 처벌하거나 회사의 책임을 묻는 제도가 사실상 없어 사회적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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