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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와 FC코리아

입력
2022.06.2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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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다시 조립동으로 이송하기 위해 발사대에서 내려지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15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다시 조립동으로 이송하기 위해 발사대에서 내려지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카메라 앞에 선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혹스럽습니다. 많은 분들 와 계신데 이런 일이 발생해 매우 죄송스러운 심정입니다.”

A매치를 진 축구대표팀 감독의 소감을 빼닮았지만, 실제론 15일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의 발사 연기 직후 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사업 책임자가 한 말이다. 일평생 로켓만 연구해 온 공학자는 졸지에 국민께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할 공인이 됐다.

누리호는 FC코리아(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팀)로 불리는 축구대표팀과 닮았다. 둘 다 사람들의 꿈과 희망 없인 존재할 수 없고, 둘의 성공과 실패는 다른 곳에 출장 나갔던 애국심을 소환한다. ‘그깟 공놀이’에 국가적 자원을 투입하거나, 발사체 하나 개발에 2조 원 가까운 예산을 쏟는 건 사실 꿈과 가능성, 더 나아가 국민통합에 대한 투자이기도 하다.

우주 이벤트를 보는 기대감은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스포츠 행사를 앞두고 느끼는 흥분과 흡사하다. 누리호 발사 성공은 A매치 승리와 같은 희열을 안겨주고, 세계 일곱 번째 우주 강국은 올림픽 메달 종합 집계 세계 7위와 유사한 울림을 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축구대표팀을 대하듯 가차없는 잣대를 누리호에까지 적용하기는 이르다. 누리호가 한 번의 실패와 두 번의 미뤄짐을 거치는 과정에서, 회의와 불신도 제법 노출됐다. 반도체나 배터리처럼 잘하던 거나 하지 왜 비싼 돈 들여 돈도 안 되는 우주에 도전하느냐는 비판이 있다. 위성을 쏘려면 스페이스X에 맡기는 게 훨씬 싸고 안정성 높은데, 누리호 수준으로는 아직 멀었다는 냉정한 평가도 있다. 지금 당장에는 그 말이 맞을 수 있다. 그러나 10여 년 전 우리가 러시아 기술을 빌린 나로호를 쏠 때 겪은 설움을 돌이켜 본다면 우주기술 독립의 필요성엔 별다른 재론의 여지는 없다.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2차 비행 시퀀스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2차 비행 시퀀스


어느 나라에든 초기 우주개발은 무모한 도전이다. 장거리 미사일과 직결된 우주발사체 분야는 국가 간 기술이전이 엄격히 금지돼, 다른 어떤 분야보다 기술주권 의미가 크다. 우리가 나아갈 초연결사회 구축에 필요한 각종 위성을 수요에 맞게 적시에 올리기 위해서도, 자체 발사체 보유는 절실하다.

알고 보면 인류가 우주에서 달성한 빛나는 성과들은 모두 처절한 시련과 좌절을 딛고 섰다. 지금 미국은 압도적 우주강국이지만, 미국 우주개발사는 실패의 역사와 거의 동의어다. 달 탐사선 아폴로 1호와 13호, 우주왕복선 챌린저와 콜럼비아. 한때 미 연방예산의 4.4%(1966년)를 혼자 썼던 나사에도 짧지 않은 실패 리스트가 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미국과 비교할 수 없이 적은 돈을 쓰면서도, 큰 실패 없이 실용급(1톤 이상) 위성 발사체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21일 누리호는 중력, 기상, 우주변수를 동시에 상대하는 힘겨운 A매치를 치른다. 16분 7초(고도 700㎞ 도달 시점) 동안 12년 노력을 평가받는 무대. 적어도 270분의 기회가 주어지는 월드컵보다 더 살 떨리고 가혹한 시험대다. 967초의 결과보단 120개월을 축적한 성과, 당장의 가성비보단 누리호가 가져다 줄 무한한 꿈과 가능성의 가치를 제대로 봐줄 때다. 누리호 성과를 딛고 설 한국 우주개발 기술은, 대표팀이 월드컵과 올림픽에서 달성한 등수 못지않은 성과를 언젠가 이루며, 우리 관심과 인내에 보답할 것이다.

이영창 산업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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