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V'로 뒤집자 집 안에 하늘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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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V'로 뒤집자 집 안에 하늘이 담겼다

입력
2022.06.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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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금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서울 종로구 홍지문 근처에 위치한 단독주택 '홍지36'은 근사한 조망을 자랑한다. 인왕산과 북한산, 탕춘대성을 집 안에서 감상할 수 있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제공


집은 바위에 내려앉은 새의 형상이다. 서울 종로구의 단독주택 '홍지36(대지면적 334.55㎡, 연면적 231.96㎡)'의 첫인상이다. 북한산 끝자락, 거대한 바위산을 딛고 있는 집의 'V'자 지붕이 마치 새의 날개 같다. 집은 홍지문 근처에 있다. 조선시대 지어진 성곽(탕춘대성)이 인근을 지나고, 억겁의 시간을 견딘 바위가 마당에서 손을 뻗으면 닿는다. 인왕산과 북한산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집의 주인은 자녀 둘을 출가시킨 노부부. 2001년부터 살던 집을 개축해 지난해 3월부터 새 집에서 거주 중이다. 건축주는 처음 "우리 집에 아무것도 없다"며 취재 요청에 난감해했다. 집에는 정말로 새 집에 들일 법한 화려한 가구도, 그림이나 사진도 없었다. 실은 그런 게 필요 없는 집이었다. 건축주는 감탄을 부르는 경관을 소개하며 "모나리자 그림을 갖다 놔도 이 자연한테는 안 돼요"라며 껄껄 웃었다.

수려한 경관을 집 안에서도... 50년 만에 다시 지은 집

서울 종로구의 단독주택 '홍지36'은 지하 1층, 지상 2층이던 기존 주택을 개축했다. 지하 1층은 주차장, 2, 3층은 생활 공간으로 쓰인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제공

20년 전, 부부가 이곳에 터를 잡아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건 바위다. 힘줄이 툭툭 불거진 바위가 집 옆에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지대 높은 곳, 바위 옆이라 누군가는 꺼릴 법도 한 위치건만 부부는 그 강인한 기운이 좋았다. "바위가 우리를 보면 한낱 스쳐가는 바람 같죠. 사람이야 길면 백년 살지만 바위한테는 구름이 슬쩍 지나가는 시간이잖아요. 엄청난 세월을 견딘 숭고한 존재죠. 여기에 살면 바위와 친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기존 집은 1967년 지어진 붉은 벽돌집이었다. 부부가 들어갈 때 이미 30년 된 집이었고 거기서 20년을 살았다. 불편한 부분은 고쳐가며 살았지만 지어진 지 50년이 되니 수리, 보수하는 데도 한계가 왔다. 부부는 집을 다시 짓기로 하고 인연이 있던 건축가, 이성관 한울건축 대표에게 설계를 부탁했다.

이 대표는 안 그래도 땅이 가진 가능성을 전혀 살리지 못하는 기존 집에 아쉬운 마음이 컸기에 기쁜 마음으로 제안을 수락했다. 건축가는 "이전에는 마당에서만 황홀한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었고 내부로 들어가면 곳곳이 벽으로 막혀 경관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며 "자연을 집 안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개축 전 같은 자리에 있었던 건축주 부부의 집. 평평한 지붕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집이었다. 한울건축 제공


1층 거실의 모습. 가까이 보이는 게 북한산 끝자락의 바위, 왼쪽으로 멀리 보이는 게 인왕산이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제공


'V'자로 올라간 지붕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2층의 거실. 거실 창 가장자리를 따라 조성된 수반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풍경을 변주한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제공

이를 위해 1, 2층 모두 인왕산 쪽을 향해 'ㄱ'자 모양의 넓은 통창을 썼다. 외부 경치가 시원하게 집 안으로 들어오는 동시에, 창이 작아 어둡던 실내가 훨씬 밝아지는 효과도 생겼다. 또 일반적인 박공 지붕의 'ㅅ'자 형태를 쓰는 대신, 이를 뒤집은 'V'자 지붕을 얹었다. 지붕이 올라간 각도만큼, 바깥을 향한 시선이 확장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부부도 집 짓고 가장 좋은 점으로 "집 안에서 하늘이 보인다"는 점을 꼽는다. 하늘까지 시야가 넓어지니 더 자주 해와 달, 별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감수성 풍부하고 시적인 면모가 있는 부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다.

축을 살짝 틀어, 북한산 봉우리를 담다

서재에서 미닫이 문을 열면 건너편 거실과 마당까지 시선이 확장된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제공

집은 기존과 동일하게 주차장인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구성돼 있다. 1층에는 주방과 거실, 서재, 게스트룸이, 2층에는 방 3개와 거실이 자리한다. 각 실은 모든 공간이 독립적이기보다는 하나로 통한다. 주방과 거실도 막힌 데 없이 트여 있다. 서재에서 실내로 난 목재 미닫이 창문을 열면, 계단을 사이에 두고 거실과 마당까지 시선이 열리도록 했다.

2층도 중정 테라스를 중심으로 왼쪽(북한산 방향)의 실과 오른쪽(인왕산 방향)의 실이 창을 통해 연결돼 있다. 2층 거실과 붙어 있는 침실도 여닫이 문의 상단을 투명하게 처리해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을 피했다. 건축가는 "아이들이 한참 크는 성장하는 단계의 가족일 경우에는 여러 공간이 동시에 쓰일 수 있지만, 자녀들이 독립해 부부만 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다"며 "이렇게 서로 공간을 빌려주면 더 넓어 보이기도 하고, 풍부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집은 "안에서 바깥을 조망하는, 외향적으로 설계된 건물(건축가)"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보현봉, 문수봉, 형제봉 등 북한산 주봉 방향으로 자리한 2층의 맨 왼쪽 실이다. 이 방의 창 가운데, 북한산 봉우리가 놓인다. 건축가가 기존 집의 축을 오른쪽으로 10도 정도 틀면서 잘릴 뻔한 봉우리가 온전히 집 안으로 들어왔다.

2층에 위치한 이 실은 북한산 봉우리를 창에 담기 위해 기존 집의 축을 오른쪽으로 10도 가량 틀었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제공


2층 거실 창 가장자리를 따라 조성된 수반에 주변 풍경이 담겨 있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제공

1층과 같은 자리에 위치한 2층 거실은 위로 말아올린 지붕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경사진 지붕만큼, 하늘이 더 보인다. 특히 2층 거실 창 가장자리를 따라 조성된 수반은 1층 거실의 풍경과 높이만 달라질 뿐 똑같아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풍경을 변주한다. 수(水) 공간에 주변 풍경이 담기고 햇빛에 반사돼 생긴 물 그림자가 건물 내부에 어른거린다. 창문을 열지 않아도 물 표면을 보면 바깥의 기류 변화를 알 수 있다. 부부는 이곳에서 호젓하게 차를 마시고 명상하기를 즐긴다. 가끔씩 새들도 놀러와 물을 마시고 놀다 간다.

"꿈꾸는 새처럼 살고 싶어요"

2층의 정중앙에 자리한 중정 테라스. 왼쪽, 오른쪽에 계획된 창을 통해 공간이 하나로 연결된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제공

차 한 대도 진입하기 어려운 경사지에 위치하다 보니 공사 기간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1년 반이나 걸렸다. 그동안 부부는 근처 원룸에 살았다. 원룸에서 살 때는 밖에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 알 수 없었고, 항상 캄캄해 낮에도 조명을 켜놓아야 했다. 그러다 이 집에 오니 자연이 주는 감동과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이 배로 느껴진다고 했다. 집 짓다 보면 그렇게 싸운다던데 건축가, 시공사와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작은 사고 하나 없이 공사를 마쳤다. 주변 이웃들도 긴 기간 동안 민원 한 번 없이 묵묵히 기다려줬다.

새로운 거처에서 생활한 지 이제 1년. 건축주는 이 집에 있으면 "수(水), 석(石), 송(松), 죽(竹), 월(月)이 가장 좋은 벗이라던 윤선도의 오우가가 생각난다"고 했다. "집 마당과 주변 산에 소나무, 대나무가 있어요. 돌과 물도 있죠. 그리고 한 달에 절반 정도는 달이 우리 집을 찾아오거든요. 2층 수조에 달이 풍덩 빠지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죠."

부부는 하늘, 자연과 더 가까워진 이 집에서 "꿈꾸는 새처럼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제공

부부는 이 집에서 "꿈꾸는 새처럼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하늘, 자연과 더 가깝게 지내다 보니 전보다 훨씬 여유롭고 자유로워진 기분이다. 나이 들수록 아파트가 편하다는 주변의 걱정도 부부는 개의치 않는다. 건축주는 "높은데 있어서 대중교통이 조금 불편하지만 그만큼 별도 달도 나무도 가깝다"며 "편리한 곳은 멀지만 소중한 곳이 더 가까운 집이라 참 좋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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