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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를 잠들게 한 마녀는 벌을 받지 않아야 맞다

입력
2022.06.18 04: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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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나누기 싫은 사람들은 약자를 마녀로 만들었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비평 전문가 이연숙 작가는 영화, 미술, 만화 등이 여성을 어떻게 그리는지를 통해 성별화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852년 '백설공주' 아이슬란드어 번역본에 실린 마녀 왕비가 신을 쇠구두를 불에 달구는 장면 삽화. 위키피디아 캡처

1852년 '백설공주' 아이슬란드어 번역본에 실린 마녀 왕비가 신을 쇠구두를 불에 달구는 장면 삽화. 위키피디아 캡처

서양 중세가 배경인 고전동화에는 잔인한 장면이 꽤 많다. 독일판 신데렐라인 '아셴푸틀'의 결말을 보자. 아셴푸틀을 구박하던 두 언니는 비둘기에게 눈이 쪼여 시력을 잃는다. '거위 치는 소녀'에서 공주를 곤경에 빠뜨린 시녀는 날카로운 면도칼이 가득 박힌 통 안에 갇혀 조리돌림을 당한다. 상상만 해도 소름끼치고 무섭다.

이런 이유로 고전동화를 자녀에게 읽히는 것이 교육상 괜찮을지 고민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동화 속 악인이 잔인한 벌을 받는 것은 아이에게 그다지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아이들은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벌 받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아이들은 약자다. 자신과 같은 약자를 괴롭힌 강자가 확실히 벌 받는 결말을 봐야 아이들은 안심한다. 세상이 정의롭다고 믿게 된다. 또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무시무시한 벌을 받아야 아이들은 선행과 악행을 명확히 구분하게 된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과 교육적 목적, 권선징악이란 주제를 위해서 동화 속 악인들은 엄한 벌을 받아야 한다. 착한 주인공에게 마법을 걸어 괴롭힌 사악한 마녀라면 더더욱 그렇다. '백설공주'에서 백설공주의 결혼식에 초대받은 마녀 왕비가 불에 벌겋게 달군 쇠구두를 신고 춤춰야 하는 벌을 받는 장면이 결말에 있는 이유다.

영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 속 마녀의 모습. 다음 영화 캡처

영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 속 마녀의 모습. 다음 영화 캡처

그런데 어떤 마녀는 벌 받지 않는다. 그림 동화집에 실린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보자.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마녀가 앙심을 품고 아기 공주에게 저주를 건다. 그러나 마녀가 벌 받는 장면은 없다. '미녀와 야수'는 어떨까. 샤를 페로의 동화를 읽어보면 왕자를 야수로 만든 마녀도 벌 받지 않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보자. 늙고 가난한 여인이 찾아와 성에 하룻밤 재워달라고 부탁하자 왕자는 매정하게 쫓아낸다. 원래 마녀였던 여인은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 왕자를 야수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벌 받지 않는다. 보몽 부인이 기록한 판본의 마지막 장면을 보자. 다른 요정이 나타나 벨을 축복하고 못된 두 언니는 조각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상하다. 벨을 야수의 성에 돌아가지 못하게 붙잡은 두 언니도 벌을 받는데, 정작 왕자에게 저주를 건 장본인은 왜 아무 벌도 받지 않을까? 이유가 뭘까?

이성의 근대가 들어서자 사라진 자선... '거절의 저주'만 남기다

영국의 사학자 키스 토마스. 영국 사학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영국의 사학자 키스 토마스. 영국 사학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마녀 사냥의 원인에 대한 학설 중에 '소외된 자선 모델'을 살펴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키스 토마스는 역작 '종교와 마술, 그리고 마술의 쇠퇴(Religion and the Decline of Magic)'에서 비이성적인 마녀 사냥의 광풍이 중세가 아닌 근대 초 사회 혼란기에 몰아친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근대 초, 인클로저(enclosure·대규모 농업을 위해 공유지를 사유지로 만든 일)와 종교개혁은 기존의 복지 시스템을 무너뜨렸다. 인클로저로 마을이 파괴되면서 빈민·병자·고아·과부·노인 등 소외 계층을 배려해주던 공동체 내 상호부조 전통도 붕괴되기 시작했다.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의 힘이 약해지면서 기존 가톨릭 교회가 담당했던 빈민 구호 사업은 대폭 축소되거나 없어졌다. 가톨릭 수도원은 종교 단체만이 아니라 방랑자를 재워주고 병자, 고아와 노인을 돌보는 자선단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가톨릭 신부의 집에서 공짜로 먹고 자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된다.

영화 '레 미제라블' 속 미리엘 주교가 은촛대를 훔쳐 달아난 장발장을 용서하는 장면. 위키피디아 캡처

영화 '레 미제라블' 속 미리엘 주교가 은촛대를 훔쳐 달아난 장발장을 용서하는 장면. 위키피디아 캡처

특히 영국의 경우, 헨리 8세의 국교회 수립 이후 큰 변화가 일어났다. 헨리 8세는 종교개혁으로 영국의 교회를 로마 가톨릭과 분리하고 가톨릭 교회, 수도원과 수녀원의 토지를 몰수했다. 몰수한 토지는 자신을 지지한 귀족과 신하들에게 나눠 주었다. 막대한 부자가 된 개신교 귀족들은 교회의 재산만 차지하고 기존 가톨릭 교회가 해왔던 의무들은 물려받지 않았다.

곳곳에 부랑자 무리가 떠돌며 사회문제를 일으키자 영국은 빈민법을 제정했다. 엘리자베스 1세가 발의한 빈민법은 빈자 구제의 책임을 공동체에 맡기는 개혁법이었다. 빈곤 문제를 다룰 공공기관을 영국 국교회의 각 지역교구에 설립하고, 빈민구제위원회는 빈민세로 얻은 수입과 지방정부위원회가 허용하는 범위 내의 추가 예산을 빈민을 위해 사용하게 했다.

예전의 가톨릭 구호단체와 마찬가지로 병원·학교·농장·작업장이 딸려 있는 빈민 구호소를 짓게 했지만 빈민들은 구호소에 수용되기를 원치 않았다. 이전과 달리 그들은 죄인으로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도들이 가난한 자들을 부자의 구원을 도와주는 존재가 아니라 게을러서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 여긴 탓이다.

엘리자베스 1세. 위키피디아 캡처

엘리자베스 1세. 위키피디아 캡처

한편, 가톨릭 지역에서도 상황은 나빴다. 이성을 중시하는 근대 계몽주의 시대에 접어들자 연옥에 간 친지들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중세적 관행은 점차 사라져 갔다.

자본주의가 성장함에 따라 사람들은 개인의 사유재산을 보호할 권리에 눈떴다. 지역 내 상부상조와 개인적 차원의 자선, 종교 단체의 구호 사업 같은 중세의 복지 시스템은 무너졌지만 근대인들은 개인적으로 도움 주기에 나서지 않았다. 이제 가난한 이웃을 돕는 것은 공동체의 필수 의무가 아니라 개인적인 선택이 되었다.

1780년 지어진 영국 낸트위치의 구빈원. 위키피디아 캡처

1780년 지어진 영국 낸트위치의 구빈원. 위키피디아 캡처

이런 변화로 인해 사람들은 가난한 이웃이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내적 갈등을 겪었다. 자신의 의무가 아니라는 생각에 거절했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었다. 한편 자신이 도움 주기를 거절한 사람의 저주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소외된 자의 저주는 더 강력하다는 통념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적으로 개인 재산을 들여서 돕고 싶지도 않았다. 어려운 문제였다. 이를 근대 초기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사람들은 편한 방법을 찾았다. 자신이 나쁜 존재가 되느니 상대를 악마로 만드는 방법을. 음식을 구걸하러 온 가난한 노파를 문간에서 내쫓은 후 우연히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가 자신이나 가족, 가축에게 주술을 걸었다고 믿고 마녀로 고발해 버리게 된 것이다. 영국의 경우 17세기 후반부터 주술가 고발 건수가 감소한다. 이 시기는 영국의 국가 구빈 시스템이 안정화되는 시기였다. 이는 마녀사냥의 원인 중 하나를 짐작하게 해 준다.

공주를 잠들게 한 마녀는 차별받는 약자였다

이제 어떤 마녀들은 왜 벌 받지 않는가에 대한 답이 나온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와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마녀의 범행 동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따돌림당하거나 거부당했기에 보복으로 저주했다는 점. 남을 해치거나 자기 이익을 위해 마법을 사용한 '백설공주' 등의 마녀들과 다르다.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 '농가의 결혼식'. 위키피디아 캡처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 '농가의 결혼식'. 위키피디아 캡처

그러므로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마녀는 벌 받지 않아야 한다. 잔치에 초대하지 않고 따돌린 왕이 잘못했기 때문이다. 벨기에의 화가 브뤼헐이 그린 '농가의 결혼식'에서 볼 수 있듯이, 전통시대 농촌의 잔치는 마을 구성원 모두를 초대해서 배불리 먹여야 했다. 부자에게는 잔치를 베풀어 가난한 자들을 먹여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잔치는 빈민 구제 의무 겸 복지사업이었다. 그런데 왕은 그 의무를 저버렸다. '미녀와 야수'의 마녀도 벌 받으면 안 된다. 도움을 요청하는 가난한 사람을 먹여주고 재워주지 않고 내쫓은 왕자가 잘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마녀들은 벌 받지 않는다. 복지 제공의 의무를 저버린 부자들에게 가난한 사람이 불만을 표시하고 항의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마녀의 저주는 정당방위였다. 그리고 그들은 저주를 걸지도 않았고, 마녀도 아니었다. 가난한 이웃을 따돌린 사람들의 죄책감이 가난한 여인들을 마녀로 만들었을 뿐.

지난해 12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인근에서 '여성혐오' 반대 집회가 열린 가운데 다른 한쪽에선 신남성연대 주최로 '페미니즘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인근에서 '여성혐오' 반대 집회가 열린 가운데 다른 한쪽에선 신남성연대 주최로 '페미니즘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차별대우받지 않을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가난한 여성들을 따돌리고 마녀로 몰아버렸던 지난 근대 초기의 역사는 지금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저 이 사회에 만연한 차별을 없애자는 당연한 말을 해도 '왜 나를 잠재적 가해자로, 차별주의자로,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냐? 기분 나쁘다!'며 상대를 '극단적 페미니스트'라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차별의 패턴은 서로 통하기 마련이다. 성소수자, 장애인, 비정규직, 파업하는 노동자들…. 기사를 읽어보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다짜고짜 욕하는 댓글이 왜 이리도 많이 달릴까. 궁금하다. 미래의 역사학자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이 상황을 어떻게 기록할까?

'사람들은 편한 방법을 찾았다. 자신이 나쁜 존재가 되느니 상대를 악마로 만드는 방법을.' 이번 젠더살롱 글은 본문에 썼던 두 문장을 반복하며 마친다.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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