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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고 요란하게… 역사적인 것이 온다

입력
2022.06.17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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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뤼케 외 '공공역사란 무엇인가'

편집자주

차별과 갈등을 넘어 존중과 공존을 말하는 시대가 됐지만, 실천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모색한다, 공존’은 다름에 대한 격려의 길잡이가 돼 줄 책을 소개합니다. 허윤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역사적 사건을 예능과 교양의 포맷을 섞어 전달하는 TV 프로그램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캡처

최근 역사적 사건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프로그램들이 인기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SBS)', '벌거벗은 세계사(tvN)' 등은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을 예능과 교양의 포맷을 섞어서 전달한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한국전쟁, 독재와 민주화 등 한국 역사의 다양한 변곡점은 영화나 소설, 웹툰과 같은 서사물로도 많이 제작된다. 대중이 미디어를 통해 역사를 소비하는 것은 오래된 일이다. 개화기 이순신이나 을지문덕과 같은 전쟁 영웅의 위인전이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역사적인 것을 통해 현실 사회의 문제를 짚어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화, 소설 등에서부터 시민 구술사, 유튜브 콘텐츠 등 다양한 방식과 플랫폼을 통해 역사가 여러 방향으로 확산되는 현상을 가리켜 공공역사(Public History)라고 한다.

독일의 역사학자인 마르틴 뤼케와 이름가르트 췬도르프는 '공공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공공역사를 '광범위한 대중(public)을 지향하는 공적 역사 표현의 모든 형태'라고 정의하고 문화, 역사, 경제 영역에서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생산하는 역사 표현의 사회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과거에 대해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와 새로운 정보와 투쟁하며 변화하는 역사적 상상을 거쳐 공공역사를 만드는 일은 대중의 역사적 상상과 연결돼 수용자가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다. TV 프로그램에서 출연진이 대화를 나누거나 강연의 질의 응답을 진행하는 형식으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설명하면, 시청자들은 보다 쉽게 역사를 현재의 문제로 되새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공공역사는 역사교육적 효과를 갖는다. 대중은 공공역사를 통해 과거의 사회적 차별과 사회 불평등, 정의와 불의 등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노예제도나 식민 지배 같은 억압과 차별의 역사는 역사적 재현을 통해 상상되고 경험될 수 있다. 일제의 식민 지배를 다룬 영화들이 핍진한 묘사를 통해 제국주의를 재현하는 것도 이런 효과를 노린 것이다. 게다가 공공역사를 통해 역사 서술의 주체와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공식 역사에서는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제주 4·3 사건의 트라우마를 대중적으로 소개한 첫 사례가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1978)'이었던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공공역사란 무엇인가'는 공공역사가 다원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국 중심의 세계사가 아니라 제3세계, 식민지 중심의 역사를 써야 하고 왕 중심의 정치사가 아니라 민중의 삶을 다뤄야 한다. 지자체나 시민단체, 학교 등에서 활발히 구술사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일상 생활 속에서 다양한 역사 쓰기를 실천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공공역사가 확대된 덕분에 박물관이나 기념관, 역사교육, 구술사, 미디어 등의 영역에서 역사를 사유하고 표현하는 방식을 논의하고 대중이 직접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학계 바깥의 역사가 증가한다. 이러한 역사 대중화의 흐름을 타고 그동안 대문자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아지고 있는 것은 공공역사의 장점이다.

연극 '드랙 X 남장신사' 포스터.

지난 주말 서강대 메리홀에서는 '드랙 X 남장신사'가 '열렸다'. 연극이지만, 굳이 '열렸다'고 표현한 것은 이 자리가 퀴어페스티벌처럼 모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레즈비언 전용 클럽인 '레스보스'를 인수해 20여 년째 운영하고 있는 바지씨(남자 같은 외모와 행동의 레즈비언을 일컫는 옛 은어) 윤김명우, 1세대 MTF(Male to Female·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사람) 트랜스젠더 색자,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가이자 소방관 국가직 공무원 시위를 주도한 나비 등 퀴어한 사람들은 그동안 공식 역사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공역사로 만들어낸다. 무대에 선 세 사람은 각각 자신의 노래를 선보인다. 명우형의 서툰 '세월이 가면'도, 색자의 유려하고 아름다운 퍼포먼스도, 나비의 황금 날개도 무척이나 힘차다. 조명이 번쩍이고 박수가 요란한 가운데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응원의 함성을 보낸다. 울먹이는 사람도 많다. 이 연극을 본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의 개인사를 마주하면서 한국사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감각한다. 이런 자리를 통해서 역사는 대중의 것이 되고 우리의 삶은 기록될 자리를 확보한다. 시끄럽고 요란하게 역사적인 것이 온다.

공공역사란 무엇인가·마르틴 뤼케·이름가르트 췬도르프 지음·정용숙 옮김·푸른역사 발행·416쪽·2만 원


허윤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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