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탑건’(1986)이 나온 지 36년, 그사이 세상은 급변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정보통신혁명이 일어났다. 군사분야도 크게 변했다. 미 해군 주력기 F-14는 퇴물 신세가 됐다. 무인기가 주요 전술 도구로 등장했고 전투기들끼리 싸우는 방식마저 달라졌다. 무엇보다 24세 주연배우 톰 크루즈의 나이는 어느덧 60세. 속편 ‘탑건: 매버릭’의 제작이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던 이유다.
하지만 ‘탑건: 매버릭’은 실패한 속편이 아니다. 무난한 속편도 아니다. 전편의 명예에 흠집을 내기는커녕 전편을 넘어서는 완성도와 재미를 갖췄다. 상영시간 130분 내내 경이와 무기력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장면들에 눈이 여러 차례 번쩍 뜨인다. 컴퓨터그래픽(CG)의 발달로 특수효과 기술이 세계적으로 평준화되고 있는 시기, 어느 국가도 넘을 수 없는 할리우드의 마지막 장벽을 확인하게 된다. ‘탑건: 매버릭’은 코로나19로 극장이 위기에 몰린 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대신할 수 없는 영화의 힘을 웅변한다.
‘탑건’처럼 미 해군 장교 피트(톰 크루즈)가 무게중심을 잡는다.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로 꼽혔던 피트는 여전히 현역이다. 미 태평양함대 사령관이 된 동료 아이스(발 킬머)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별 2개는 족히 달았을 50대에도 오로지 비행이 좋아 대령 계급으로 조종간을 잡고 있다. 신형 전투기 개발사업에 몰두하고 있던 피트는 태평양함대 사령부의 호출을 받는다. 극비 작전에 동원될 파일럿 교육이 맡겨진다. 최고 중의 최고로 평가받는 젊은 조종사들은 피트를 퇴물 취급한다. 피트가 ‘한국전쟁(Korean War)’에 참전했는지, ‘냉전(Cold War)’ 때 활동했는지 알 수 없다는 말장난을 하며 비아냥거린다. 피트는 세대의 간극을 극복하며 작전을 성공시키려 최선을 다한다.
이야기는 전형적이다. 적당한 갈등이 있고, 제법 가슴 졸이게 하는 위기가 있으며 심장을 두드리는 사랑이 있다. 옛 전우의 아들 루스터(마일즈 텔러)가 피트와 감정적으로 맞선다. 적성국 우라늄농축시설에 대한 공격은 스릴을 빚어낸다. 피트와 옛사랑 페니(제니퍼 코넬리)의 재회가 달콤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전형성을 극복하는 건 볼거리다. 전투기들이 빚어내는 장면 하나하나가 청량감을 주는 동시에 숨통을 쥔다. 항공기술에 대한 이해와 이를 바탕으로 한 장면 구성력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면면들이 이어진다. 스탠퍼드대학에서 항공우주산업과 기계공학을 전공한 조셉 코신스키가 메가폰을 잡았다.
크루즈와 프로듀서 제리 브룩하이머는 배우들이 최신 전투기 F/A-18에 탑승한 채 촬영해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태평양함대를 찾아가 협조를 요청했고, 파일럿을 연기한 배우 모두가 군의 도움으로 5개월 동안 비행훈련을 받았다. 배우들의 얼굴이 고도의 상공에서 중력에 의해 일그러지는 모습 등은 실제다.
크루즈의 활약 역시 눈길을 잡는다. 주름이 얼굴을 파고들었으나 그의 몸은 여전히 20대다. 단단한 몸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모습이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한다. 36년 세월이 무색하다. ‘매버릭(Maverickㆍ독불장군)이라는 피트의 콜 사인(Call Signㆍ비행작전 중 불리는 호칭)은 스크린 밖 크루즈에게도 유효하다. 2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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