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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許하라

입력
2022.06.14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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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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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로 넘어오면서 개인 자유를 절대시한 나머지 단체 결성을 억제하려는 경향도 보였으나, 현대에서는 사회적·경제적으로 대부분 활동이 단체에 의해 이뤄진다. 특히 근로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나 사회적 소수자는 단체를 결성하여 그 활동의 범위 내지 영향력을 높이는 게 효과적이다. 근로자 아무개라는 개인의 호소보다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이름 아래 펼치는 주장이 사회적으로 주목도 끌고 영향력이 크다.

이런 단체 활동을 보장하기 위하여 우리 헌법은 결사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치자금 기부를 포함한 정치적 활동을 하는 자유도 포함된다. 그런데 정치자금법 제31조는 그중 단체를 통한 정치자금의 기부를 전면 금지하고, 위반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이는 개인과 단체 사이에 존재하는 경제적 영향력의 불균형으로 인한 정치적 의사형성의 왜곡을 염려한 탓으로 보인다.

그런 염려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일률적으로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 일률적·전면적 금지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로 하여금 단체를 통하여 힘을 모을 수 없게 하고, 회사와 같이 그 이익을 대변한다고 볼 개개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정치자금 기부를 통한 영향력 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근로자에게 노동법 개정에 관하여 단순히 개인의 지위에서만 정치자금을 기부하라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특정 분야의 회사에 불리하게 세법 등의 개정이 논의될 때 그 반대의사를 표현하고자 회사의 구성원에게 회사를 위하여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정치자금을 기부하라고 할 것인가.

실제로 위 규정의 위헌 여부를 가려 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신청한 사건에서 정치자금을 기부한 측은, 노동조합이거나 개개인으로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직역 단체가 대부분이었다.

앞서의 우려를 보자. 경제적 영향력의 불균형 문제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똑같이 존재한다. 그러기에 정치자금법은 개인에게 정치자금의 기부를 허용하면서 그 한도와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단체의 기부로 인한 위험성이 크다고 하여 이를 전면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국민의 단체의 결성 및 정치적 활동을 보장해야 할 국가가 보일 태도가 아니다. 폐해의 위험성이 크다면 기부의 한도 제한, 기부 및 사용 내역 전면 공개 등으로만 대응하는 게 마땅하다. 그렇기에 헌법재판소가 '종래 단체에 의한 정치자금 기부 전면금지라는 입법자의 판단이 자의적인 것이라 보기 어려우며, 입법목적 달성을 위한 덜 제약적인 수단이 존재함이 명백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은 국가의 의무를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헌법재판소는 1999년 11월 노동단체의 정치자금 기부금지를 규정하였던 구 정치자금에관한법률(법률 제3302호) 제12조 제5호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지난 시간 정치자금 관련 부정이 많았고 그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깊었기에 조그마한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니나, 금지의 대척점에 있는 자유의 보장, 특히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권익 보호 또한 도외시할 수 없다.

정치란 돈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전면적으로 금지한다고 하여 근절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를 마냥 음지에 방치할 것이 아니라 양지에서 투명하게 운영하여 그 또한 국민의 시선에서 통제를 받게 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신동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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