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해 온 A씨는 어느 날 자신의 몸을 만지는 사장에게 '어딜 만지는 거냐'며 항의했다. 사장은 한참 후에 A씨에게 사과를 했지만, 업무상 문제가 생기자 돌연 휴대폰과 계산기를 집어던지며 "초등학교 나와도 할 줄 아는 일인데, 자질이 없으니 나가라"라고 폭언을 했다. A씨는 결국 사직 사유란에 '대표이사 해고 통보'를 적은 뒤 사직서를 냈다.
직장갑질 119가 12일 A씨 등의 사례를 담은 '대한민국 직장여성 살아남기' 보고서를 발간했다. 단체는 "대한민국에서 직장여성은 다양한 성차별적 언행을 경험하고, 임금·직군 등에서 불합리한 차별과 직장 내 성희롱까지 당한다"면서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이며 여성 개인이 혼자 해결하게 방치해선 안 되는 사회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장이 성희롱, 신고하면 괴롭힘... 회사 떠나는 여성
직장갑질119가 송옥주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고용노동부에 사업주의 성희롱(남녀고용평등법 제12조 위반)을 신고·접수한 사건은 1,046건에 달했다. 직장 내 위계의 특성상 사업주의 성희롱을 신고할 경우 회사를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하는데도 한 달에 70건씩 신고가 접수되는 것이다.
직원이 직장 내 다른 사람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면, 사업주는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른 조치 의무가 있는데 이를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기간 고용부에 조치 의무 위반으로 접수된 사건은 173건이었다.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B씨는 "내가 경찰에 신고한 사실을 회사가 알고 있었지만,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면서 "피해자 보호조치를 해달라 하자, 내부 규정상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무시했다"고 털어놓았다.
성희롱 신고 이후엔 보복이 돌아왔다. 직장갑질119가 같은 기간 접수된 이메일을 전수조사한 결과 직장 내 성희롱을 신고한 뒤 불이익을 겪었다는 사례는 100건 중 83건이나 됐다. 회사 대표로부터 성희롱을 당하고 원치 않는 신체접촉까지 겪었다는 C씨는 "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 신체적 손상이 있어 고민하다가 노동청에 신고했다"면서 "신고 후 괴롭힘은 더 심해졌고, 건강상태 악화로 출근길에 응급실까지 실려갔다"고 토로했다.
성차별적 발언·대우로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다. 같은 기간 고용부 '고용상 성차별 익명신고센터'에 접수된 사건은 542건(중복 177건)이나 됐다. 남성 직원이 많은 회사에서 일한다는 D씨는 "입사 연도가 빠른데도 임금이 꼴찌 수준"이라며 "대표이사가 간담회 자리에서 갑자기 '여직원들은 회사의 미래에 대해 고민할, 생각할 필요 없다'며 급한 일이 있으면 나가도 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국가도 미적대긴 마찬가지
피해자들은 국가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만 쉽지 않다. 고용부에 접수된 사업주의 직장 내 성희롱 사건 중 과태료 처분이 내려진 것은 7.6%(80건)뿐이었다. 결국 어렵게 용기 낸 신고자의 65.7%(687건)는 사건을 취하하거나 사건 진행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직장 내 성희롱 신고자를 보호해 주지 않은 회사를 신고한 경우에도 인정된 것은 173건 중 16건(9.25%)뿐이었고, 사업주에게 과태료가 부과된 것은 단 1건에 그쳤다.
직장갑질119 장종수 노무사는 "직장 내에서 해결이 어려운 성희롱 문제로 고용부 문을 두드리는 노동자들은 오늘도 수없이 좌절한다"면서 "고용부는 지속적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통해 근로감독관 인식을 개선하고, 노동위 차별시정신청을 통해 노동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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