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도매가격 상한제' 두고 전력업계 갑론을박
①정부·한전 "유럽서 도입한 '횡재세' 한국도 해야"
②발전사들 "반시장적 제도, 법적 대응 검토"
역대 최대 적자 늪에 빠진 한국전력 재무 개선을 위해 정부가 꺼내든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 카드를 두고 전력업계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억눌린 전기요금 탓에 한전의 실적 위기가 커지자 도입된 이 제도를 두고, 정부와 한전은 "해외에서도 활발히 도입되는 사례"라며 SMP상한제 정착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민간 발전업계는 "정부가 한전을 쥐어짜다 안 되니 발전사를 쥐어짜는 셈"이라며 법적 대응까지 불사하겠단 뜻을 전했다.
7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달 24일 행정 예고한 '전력거래가격 상한에 관한 고시' 개정안 시행을 두고 전력업계 내부 갈등이 거세지고 있다. 긴급정산상한가격 제도의 신설 내용을 포함한 개정안이 시행되면 SMP가 비정상적으로 오를 경우 한전이 발전사들로부터 전력을 구매할 때 적용하는 가격에 상한선이 적용된다. 업계와 학계에선 전기요금 인상을 한전 적자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꼽지만, 정부는 전기요금을 올릴 경우 물가 인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에 부담을 민간 발전사로 돌린 모습이다.
한전 "유럽에서 활발한 횡재세 도입, 한국도"
SMP 상한제가 도입되면 '지출 상한선'을 두게 되는 한전은 제도 정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한전 관계자에 따르면 "국제 연료가격 폭등에도 불구하고 요금 단가를 올리지 못한 한전은 1분기에만 7조8,000억 원의 전례 없는 적자를 기록했다"며 "반면 대형 에너지 기업은 올해 1분기에만 지난해 연간 실적을 뛰어넘는 수준의 흑자를 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제 연료가격 폭등을 업고 '로또'를 맞은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고통을 나눠 부담하도록 하는 게 SMP 상한제 취지"라고 덧붙였다.
실제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은 최근까지 유가 급등으로 큰 수익을 낸 에너지 기업들에 이른바 '횡재세(windfall tax)' 도입에 나섰다. 영국 BBC에 따르면 지난달 영국 정부는 앞으로 1년 동안 에너지 기업들로부터 수익의 25%를 추가 세금으로 거둬들이기로 했다. BP나 셸(Shell) 등 석유·가스 기업의 영업 이익 증가를 기업이 기술 혁신 등을 통해 거둔 성과가 아니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반사 이익으로 규정하면서다. 이렇게 얻은 50억 파운드의 추가 세수는 취약 계층 지원에 쓰겠다는 게 이들 나라의 구상이다.
발전사 "문재인 정부와 다를 게 뭔가"
반면 '수익 상한선'이 생기게 될 민간 발전사들은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이란 근본적 해결책을 외면한 채 도입한 '반시장적 제도'라고 반박한다. 이날 전국태양광발전협회 등 민간 발전사업자들은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기요금을 못 올리는 현 시장에서 산업부와 한전이 시장의 룰을 위반하면서 민간의 이익을 빼앗으려고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전기요금 현실화 없이 한전 적자 등을 해결하려다 보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간발전협회 관계자는 "SMP 상한선을 두려면, 하한선도 함께 제시돼야 한다"며 "(제도 적용의) 기준과 대상 모두 행정 재량권을 남용한 사례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 발전사 관계자도 "전기요금 인상이란 근본적 대책을 외면하는 점은 윤석열 정부도 지난 정부와 다를 바 없다"고 아쉬워하면서 "위중한 환자(한전)에 대한 수술이나 치료가 필요한데, 진통제만 놓는 셈"이라고 빗댔다.
정부는 발전사들의 반발을 고려해 전력 생산에 든 연료비가 상한 가격보다 높은 발전 사업자에 대해선 연료비를 보상하겠다고 밝혔지만, 발전사들은 "실질적인 손해가 클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일단 행정예고 기간인 13일까지 민간 발전사들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협회 관계자는 "남은 기간에 법률 검토 등을 통해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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