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쿠바·베네수엘라·니카라과 참석 배제
멕시코 등 반발...'반쪽짜리 행사' 전락 위기
'이웃 국가 힘 모아 러·중 견제' 전략 타격
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막을 올린 미주정상회의가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미국이 쿠바 등 특정 국가를 초청 대상에서 배제하자 이에 반발한 멕시코, 온두라스 등이 불참을 선언하면서다. 1994년 이후 28년 만에 정상회의를 주최해 미주 대륙 35개국 정상을 한자리에 모으려던 미국이 ‘앞마당 외교’에서 체면을 구겼다.
미 CNN,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중도좌파 성향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미주 대륙의 모든 국가가 참가하지 않는다면 미주정상회의는 있을 수 없다”며 이번 회의 불참을 선언했다. 그는 ‘배제, 특별한 이유 없는 지배욕, 각 나라의 주권과 독립성 무시’ 등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앞서 미국은 민주주의 약화, 인권 탄압 등의 이유로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3국을 이번 정상회의 초청 대상국에서 빼겠다는 방침이었다. 반미 성향 세 나라를 제재 대상에 올려놓고 ‘폭정의 트로이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참석 배제 방침에 멕시코 등이 반발했지만 미국은 결국 세 나라 정상을 독재자로 지칭하며 초청 대상에서 제외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독재자들이 초청돼서는 안 된다는 게 조 바이든 대통령의 원칙적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백악관은 북중미와 남미 35개 미주 대륙 국가 중 23곳이 정부 수반 참석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회의 의제는 이민, 기후변화, 경제협력, 부패 문제 해결 등으로 정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의의 빛이 이미 바랬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온두라스와 볼리비아, 카리브해의 앤티가바부다 등이 멕시코와 함께 불참 행렬에 동참하며 ‘반쪽짜리 외교 행사’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과테말라는 미국이 부패 연루 혐의로 자국 법무장관의 미국 입국을 금지한 데 항의하는 차원에서 이번 정상회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정상회의 참석에 회의적 반응을 보이자 미국은 지난달 특사까지 보내 겨우 참석을 이끌어냈다. 바이든 행정부의 굴욕이었던 셈이다.
특히 미국의 가장 중요한 교역 상대국 중 하나이자 중남미 2위 경제대국 멕시코의 불참은 미국으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CNN은 “미국 관리들은 멕시코 대통령 참석의 중요도를 낮추려 노력해왔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멕시코가 빠지면서 회의에서 불법 이민 문제나 무역 현안 등을 다루기 어렵게 됐다.
게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중국의 부상 견제 등을 위해 이웃국가의 힘을 모으겠다는 계획도 사실상 실패했다. ‘미국 우선주의’ 외교를 추진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이후 이 지역에서 상실했던 지도력을 회복하려던 미국의 시도가 무산된 것이다.
NYT는 “미국이 라틴아메리카 30개 이상의 국가를 하나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거의 불가능하다”며 “어떤 면에서 멕시코의 부재는 중남미가 정말로 표류하고 있고 미국은 이에 대해 전략이 없다는 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