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피아 자그놀리 특별전: Life is Color'
10월 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땡큐, 플로라!"
코로나19 사태로 봉쇄된 2020년 이탈리아 밀라노. 세계적 일러스트레이터 올림피아 자그놀리(38)는 178시간 자가격리 중 작은 소포 하나를 받았다. 수년 전 베네치아에서 우연히 만났던 홍콩의 친구 플로라로부터 온 마스크 3팩이었다. 그 따뜻한 마음에 대한 보답으로, 또 어려운 시기 관대한 마음으로 이웃을 돕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그렸다. 'THANK YOU'라고 쓰고 두 여성이 마주 보고 있는 일러스트 '팬데믹 상황에서의 개인 프로젝트(Personal project created during the coronavirus pandemic)'다. 이번엔 하릴없이 침실 바닥에 앉아 시간을 죽이던 자그놀리.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조각을 쫓아다니던 자신의 모습을 또 그렸다. 같은 해 미 뉴욕타임스 삽화로 실린 8점의 일러스트다.
절망적 상황에서도 생동하는 그의 그림이 엔데믹 국면의 서울 한복판에 내걸렸다. 10여 년에 이르는 작품세계를 총망라한 국내 첫 개인전 '라이프 이즈 컬러'를 통해서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일러스트뿐 아니라 키네틱아트, 비디오아트 등 매체를 가리지 않은 그의 작품 150여 점을 선보인다.
자그놀리는 한국의 대중에겐 낯설지만 세계적으로 이름난 일러스트레이터다. 뉴욕타임스나 주간지 뉴요커 등의 표지와 삽화를 그리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형태와 풍부한 색채 등 그만의 감성과 유머가 특징이다. 전시장에선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시발점이 된 스톤월 시위와 퀴어 퍼레이드 50주년을 맞아 2019년 뉴요커 여름호 표지로 그린 '하트펠트(heartfelt)'가 관람객을 맞는다.
때론 이미지가 글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그는 일러스트로 증명한다. 1942년 사진잡지 라이프에 실렸던 '숙녀답게 스파게티 먹는 법'을 2017년의 자그놀리식으로 푼 시리즈가 대표적. 숟가락에 파스타 가닥을 감아올려 마지막엔 '우아하게' 입으로 넣는 모델의 얼굴만 보이는 장면까지 담은 당시 사진을 전복한 것이다. 자그놀리의 작품 속 여성들은 스파게티 면을 높이 들어올리거나 불룩 튀어나온 엉덩이에 그릇을 올려두고 후루룩 빨아먹는다. 여성의 쾌락에 관한 영국 가디언 기사에 곁들인 삽화 '오르가슴'은 터부시돼 온 여성의 성을 유쾌하게 담고 있다.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역시 그의 장점이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도 자그놀리만의 시선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2014년 뉴욕의 468개 지하철역에 걸렸던 '뉴욕 풍경'으로 그는 일약 '뉴욕이 사랑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반열에 올랐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자그놀리에게 도시 공간과 도시민의 일상은 단골 그림 소재다. 이번엔 붉은 벽돌의 대명사인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강남 교보타워를 그린 신작 '서울의 밤(Night in Seoul)'을 내놨다. 그의 첫 유화 작품인 '키스' 시리즈도 전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동네마트에서 살 수 있는 90센트짜리 휴지, 한 레스토랑의 피자 박스부터 프라다, 디올, 펜디 등 하이엔드 브랜드와 협업한 결과물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전시는 10월 1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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