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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과 신념 사이에서...채식을 고심하는 당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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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과 신념 사이에서...채식을 고심하는 당신께

입력
2022.06.04 17:00
수정
2022.06.04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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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 채식주의자' 낸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팀장
2010년 구제역 파동 후 채식 시작
실패와 자책, 재도전이 반복된 11년차 채식주의자
"한명의 비건보다 열명의 불완전 채식이 낫다"

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불완전 채식주의자' 저자 정진아씨가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불완전 채식주의자' 저자 정진아씨가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 한때 채식주의자로 유명세를 모았던 모 배우는 10여 년 전 '스테이크 논란'에 휩싸였다. 20세가 되던 해, 모든 육식을 끊고 9년간 엄격한 비건(Vegan·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적극적인 개념의 채식주의자) 생활을 유지했다고 밝혔지만, 뒤늦게 신인시절 한 음식전문 채널 프로그램에 출연해 스테이크를 먹었던 사실이 '영상 캡처'로 온라인에 퍼지면서다. 배우 소속사 측은 "이미 계약된 프로그램이 협찬을 받아 촬영돼 당시 신인이었던 그가 촬영을 그만둘 수 없었다", "고기를 입에 넣었지만 삼키지는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온라인상에서 갑론을박은 끊이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요즘에도 채식주의자를 향한 사람들의 감시와 비판은 지속된다. 올해 초에는 비건을 자처했던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이 맨해튼 이탈리아 식당에서 생선요리를 주문했다가 '피시게이트(fishgate‧생선을 뜻하는 fish와 정치인 비리를 뜻하는 gate를 합친 용어)'란 신조어를 만들며 비난의 대상이 됐다. "시장이 말을 자주 바꾼다는 게 문제"(뉴욕타임스)라는 게 비판의 요지이지만, 비건을 선언한 이상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사회의 엄격한 시선이 채식주의자들에게 금욕을 강요한다는 지적도 있다. 채식이 시대의 트렌드가 됐어도 막상 시도하기는 어렵고, 시작해도 쉽게 그만두는 이유다.

한국에서 채식주의자가 넘어야 할 벽

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불완전 채식주의자' 저자 정진아씨가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불완전 채식주의자' 저자 정진아씨가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13년 차 페스코(Pesco·해산물은 먹는 채식주의자)인 정진아 동물자유연대 사회복지팀장은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자기만의 채식 방법을 찾았고, 그동안의 경험을 모은 책 '불완전 채식주의자'(허밍버드)를 최근 펴냈다. 지난 2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정 팀장은 "세상에는 한 명의 완전 채식주의자보다 열 명의 불완전 채식주의자가 더 필요하다"고 단언했다.

정 팀장이 채식을 시작한 계기는 공장식 축산업의 실태를 자세히 알게 된 후부터. 구체적으로 2010년 말, 350만 마리의 돼지가 산 채로 잔인하게 살처분됐던 구제역 파동 속에 고기가 음식이 아닌 '숨이 붙은 생명'이라는 걸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비교적 덜 엄격한 채식을 시작하면서도 어려움은 있었다. 국물 요리가 많은 한식 특성상 고기를 온전히 식단에서 끊어내기가 쉽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채식주의자임을 '커밍아웃'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때마다 맛있는 고기를 함께 챙겨먹는 '고기 메이트'까지 둘 정도로 육식을 사랑했던 터라 '입맛과 신념사이'에서 채식을 꾸준히 실천하기가 어려웠다.

정 팀장이 채식을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은 때와 장소에 맞춰 '간헐적 육식'을 하는 것. 정 팀장은 "1년에 한 번 정도 찾아오는 생일 같은 때는 고기를 먹는다"면서 "예전에는 고기를 먹고 '부끄럽다'는 자책을 많이 했다. 이제는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말고 감사한 마음을 갖자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게 무슨 채식이냐 싶겠지만, 채식에는 종류가 다양하다. 정 팀장이 실천 중인 페스코 외에도 △소나 돼지는 안 먹고 닭이나 오리 같은 조류는 섭취하는 폴로(Pollo) △고기와 생선은 먹지 않지만 우유·달걀·꿀처럼 동물에서 추출된 음식은 먹는 락토오보(Lacto-Ovo) △고기, 생선, 달걀은 먹지 않고 유제품만 먹는 락토(Lacto) △모든 동물성은 거부하고 순수 채식만 하는 비건 등이 있다. 덩어리 고기만 먹지 않는 '비덩주의(非 덩어리주의)' 등 국내 실정에 맞춰 새로 생긴 채식 형태도 있다. 간헐적 육식을 하며 채식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는 '불완전 채식'도 넓게 보면 채식의 일부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채식이 지칠 때면 검열 대신 응원을

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불완전 채식주의자' 저자 정진아씨가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2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불완전 채식주의자' 저자 정진아씨가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정 팀장은 "10여 년 전보다 채식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진짜 고기 먹나 안 먹나' 지켜보는 주변 시선은 여전한 것 같다"면서 "일주일에 하루라도 고기 안 먹는 날을 정해 동물 사육으로 인한 메탄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는 운동처럼, 채식의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는 게 (채식에 관심을 두면서도) 아예 시도조차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전했다.

'불완전 채식' 후 정 팀장 생활의 다른 부분도 달라졌다. 되도록 동물실험을 하지 않거나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비건 화장품을 구해 쓰고, 거위털이 들어간 패딩 옷을 사지 않고, 가능하면 플라스틱으로 만든 비건 가죽 제품을 산다. 채식주의자가 안 먹는 고기 종류를 늘리거나, 비거니즘(채식을 넘어 삶의 전반에서 동물 착취를 거부하는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 팀장도 그런 경우다. 그는 "비거니즘 실천 방식도 채식과 비슷해 실천할 수 있는 만큼 한다"며 "비건 색조 화장품은 다양하지 않고, 옷이나 가방은 동물 제품을 완벽하게 대체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 경험담을 세상에 내놓게 된 이유. 채식이나 비거니즘에 관심 있지만 실패할까 봐 두려운 이들, 실패 후 죄책감을 가진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란다. 정 팀장은 "채식, 비거니즘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완벽하게 실천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주변에서 감시당한다는 느낌의 부담도 있다. 하지만 삶의 기준이 각자 다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정도로 실천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라 말해주고 싶다. 그런 저 자신에게도 응원을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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