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연극계 화제작 '웰킨' 한국서 7일 개막
배심원 여성 12명이 채운 무대부터 특별
올해 'DAC 아티스트' 진해정 연출 인터뷰
"작품 전체가 공정에 대해 묻고 있다"

이달 7일부터 25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웰킨'에서 배심원단 역을 맡은 배우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1759년 영국의 한 지방에서 마을 유지의 딸이 잔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용의자는 유지의 저택에서 하녀로 일하는 21세의 여성 샐리 포피. 살인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자 자신이 임신 중이라며 감형을 탄원한다. 지금이야 간단한 의학적 방법으로 해결될 문제지만 이 시대엔 임신 감별을 위해 12명의 여성 배심원단이 소집된다. 나이와 출신이 다른 여성 12명의 당초 임무는 임신 여부를 가리는 것. 하지만 심문을 통해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점차 종교와 법, 신분 계급 등에 내재된 사회적 차별과 공정성의 문제가 날카롭게 제기된다.
2020년 영국 국립극장에서 초연 후 화제가 된 연극 '웰킨'이 한국 관객을 만난다. 영국의 권위 있는 희곡상 '로렌스 올리비에상' 최우수작품상(2015년)을 받은 극작가 루시 커크우드의 신작이다. 한국 연출을 맡은 진해정은 "번역본을 처음 받아들고 지하철 환승 통로에 서서 읽다가 단숨에 완독했다"며 이 작품의 흡입력을 극찬했다.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3시간가량 생중계처럼 진행되는 법정 드라마 형식 등이 관객의 몰입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고 여긴 그는 연출 제의를 단번에 승낙했다고 한다.
'웰킨'은 '공정'을 주제로 한 올해 두산인문극장의 두 번째 공연작으로, 7일부터 25일까지 두산아트센터(DAC) 무대에 오른다. '웰킨'과 공정은 어떤 관계일까. 진 연출은 "작품 전체가 '공정'에 대해 묻고 있다"고 단언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여성이 임신 사실을 말하며 감형을 청원하는 설정부터 사회·경제·정치적 불평등을 내포하고 있고, 유무죄를 따지는 기준과 각 배심원의 자격 논란 등 서사가 진행될수록 관객은 '올바른 기준과 시선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연극 '웰킨'의 진해정(왼쪽 사진) 연출은 2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배심원 간 갈등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나오는 "땅에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을 테니까"라는 대사가 작품의 줄기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그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며 현실에 갇혀 있던 인물들이 결국 방법을 발견해내고 스스로의 위치를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이번 작품은 소수자의 시선을 무대에 담아 온 진 연출의 행보와도 맞아떨어진다. 성 정체성과 관계에 대한 고민을 섬세하고도 유쾌하게 풀어낸 전작 '로테르담'은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김정·2020년)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얻었다. "소수자들의 모습과 목소리가 가시화되지 않는 현실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는 진 연출은 "더 많은 시선이 허락되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하는 동안 '까다롭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매력적인 극본지만 한국 관객이 느낄 이질감을 최소화하는 연출이 쉽지 않아서다. 가령 잉글랜드 남동부 서퍽 인근 지역의 사투리, 계급적 특성을 드러낸 언어 등을 우리말로 풀어야 했고, 폭력적 장면들은 작가의 의도를 해치지 않되 관객이 수용할 수 있는 선을 찾아야 했다. 공연 내내 거의 무대에서 퇴장하지 않는 배우 14명의 효과적 동선과 미장센을 만드는 것도 큰 도전이었다. 그는 "무대(디자인)는 최대한 단순화해 배우들의 존재 자체가 무대 구성이 되는 방향을 고민했다"고 전했다.
진 연출은 올해 DAC의 공연예술가 창작 지원 프로그램인 'DAC 아티스트'로도 선출됐다. 그는 "이제까진 작품을 고를 때 플롯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제는 저만의 연출적 발전을 시도할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내년에 선보일 신작에 대한 포부도 밝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