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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지독히도 바뀌지 않는 정치

입력
2022.06.02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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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이준희한국일보 고문

매번 정파만 바뀌어 반복되는 선거 양상
또 반성 없이 강성지지층에만 기댄 결과
낡은 정치문화 청산하는 계기라도 되길


지난 총선에서 보수정파가 버림받다시피 했을 때 ‘지켜야 할 건 아무것도 없다’는 글을 썼다. 그때도 보수진영 내부에선 전략이나 공천 실패 등으로 자위하는 분석이 많았다. 물론 그게 아니었다. 오랜 기득권에 취해 늙고 병들어 시대 변화를 감당 못 한 체질이 패인이었다. 2년이 지나 그때 보수진영에 한 질타를 똑같이 민주당에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

민주당 분위기를 집약하는 ‘망연자실’은 뜻밖의 나쁜 결과에 합당한 표현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예정된 참사였다. 솔직한 반응은 ‘올 것이 또 왔다’는 뼈아픈 자책이어야 한다. 보수정파가 지난 총선 참패 전까지 세 차례 선거에서 내리 지고도 무감했듯 민주당도 지난 보선과 대선의 전조를 애써 외면하다 예까지 왔을 뿐이다.

민주당의 패인은 지난 지방선거와 총선 참패를 초래했던 당시 보수진영의 패인과 다를 게 없다. 그들은 박근혜 탄핵으로 정권을 잃고도 전혀 반성할 줄 몰랐다. 극우 강성지지층에 기대 친박 비박으로 치고받으며 날을 지새웠다. 대여전략은 대책 없는 반대와 막말뿐이었다. 당 지도부 입에서 “극우는 안중근 같은 사람들”이란 말이 튀어나오고, 정책대안 요구에 “그걸 왜 내게 묻나?”라고 답하는 무책임의 극치를 노정했다. 현대사에서 보수정파가 가장 절망적인 모습을 보였던 게 이 시기다.

문재인 초기 지지율 80%는 다만 이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결국 총선에서 괴멸적 패배를 당하고 나서야 김종인체제를 구성해 극우세력을 주변부로 몰아내고 중도보수로 외연을 확장하면서 비로소 경쟁력 회복 단계로 접어들었다. 한마디로 무반성, 강성지지층 의존, 맹목적 배타와 무능, 무엇보다 시대 변화에 대한 무감(無感)이 그때 보수정파의 모습이었다.

최근 민주당에 대입해도 되는 이 모습이 그대로 이번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의 원인이다. 윤석열 정부는 채 평가받을 시간도 없었다. 그러므로 선거 결과는 민주당에 대한 심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새 정부 출범 직후의 허니문 효과로 평가절하하려 드는 것은 또다시 현실을 뭉개려는 회피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0.73%P 표차에 억울함을 삭이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인 상황에서 허니문 효과란 게 얼마만할까.

결론적으로 이번 선거 역시 미래 비전이나 변화 가능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인신공격 수준의 비방과 조롱으로 일관한 운동 양태, 심판받은 인물들의 뻔뻔한 회귀, 시대적 고민 없는 진부한 안정·견제론, 철 지난 독재·민주론, 여전한 낡은 인물들 천지에다 지역구도도 고스란히 과거로 돌아갔다. 상대의 잘못에만 기대는 부(負)의 정치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반복됐다. 우리 정치는 참, 지독히도 변하지 않는다.

어차피 여유 생긴 승자에게 기대하긴 어렵다. 패배 측의 뼈저린 반성과 절치부심이 전체 정치 변화의 가장 빠른 동인(動因)이다. 강성지지층에 의존한 정치가 시대 변화나 여론과는 동떨어진 우물 안 개구리 식 자해정치임을 깨닫는 데 아직도 경험이 더 필요한가. 산업화·민주화의 성취도 아름다운 추억일 뿐 새 시대를 견인하는 힘으로는 오래전에 가치를 잃었다. 말하기도 지겹지만 그래서 86세대의 시대적 역할이 더는 없다는 사실도 재확인됐다.

이번 선거에서 그나마 희망적 단초를 굳이 찾는다면 김동연 같은 괜찮은 스토리를 가진 온건합리의 정치인을 살려내 등단시킨 정도일 것이다. 그런 성향의 정치인들이 잘 성장해 우리 정치문화 전체를 합리 중도 실용으로 바꾸는 샘물 역할을 하길 바랄 뿐이다. 국가발전의 뒷덜미를 잡아채기만 하는 그들만의 낡은 정치, 퇴행적 선거 따위는 정말,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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