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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즈존과 '어린이라는 세계'

입력
2022.06.0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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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한 어린이가 지난달 4일 서울 영등포 국회 앞에서 열린 '어린이날 100주년, 어린이차별철폐의 날 선포 기자회견'에 참석해 노키즈존 반대 문구가 적힌 스케치북을 들고 있다. 뉴시스

한 어린이가 지난달 4일 서울 영등포 국회 앞에서 열린 '어린이날 100주년, 어린이차별철폐의 날 선포 기자회견'에 참석해 노키즈존 반대 문구가 적힌 스케치북을 들고 있다. 뉴시스

막 기자가 된 입사 초기에 노키즈존(No Kids Zone)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영·유아와 어린이 그리고 이들을 동반한 고객의 출입을 제한하는 매장이 드물어 사례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수소문 끝에 서울에서 겨우 한 곳을 찾아냈지만, 언론에 나가고 싶지 않다기에 긴 설득 끝에 겨우 기사를 내보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지난달 100주년 어린이날을 맞아 다시 한번 관련 기사를 준비하면서 노키즈존이 주변에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아기자기하고 규모가 작은 카페와 식당이 많은 서울 연남동이나 망원동에는 30곳이 넘는 노키즈존이 있을 정도다. 노키즈존이 늘어나면서 이를 ‘차별’이라고 보는 인식도 흐려졌다. 2017년 노키즈존이 사회적 차별일 수 있다는 응답은 27.9%(인크루트·두잇서베이)였지만 지난해 한국리서치의 조사에서는 17%에 그쳤다.

대부분의 사람이 차별이 아니라 하니 노키즈존은 더 이상 차별이 아닐까. 얼마 전 친구와 유모차를 탄 친구의 아이와 함께 밥을 먹으려 만났을 때 평소와 다른 긴장에 휩싸였다. 평소라면 거리낌 없이 들어섰을 매장 앞에서 친구는 먼저 "아이가 있는데 괜찮을까요"라고 조심스레 물었다. 유모차는 밖에 두는 조건으로 입장이 '허락'됐지만, 노심초사는 계속됐다. 식당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친구가 이를 제지할 때마다 괜히 내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헤어지면서 친구는 내게 아이를 데리고 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친구의 마음은 짐작이 갔다. 우리는 부모가 아이와 외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었다.

명백한 폭력이나 극단적인 폭언이 있어야만 차별인 것은 아니다. 최근 만난 한 성소수자 인권단체 활동가는 언론이 사례자를 섭외해달라고 부탁할 때마다 난감하다고 했다. 언론이 원하는 건 누가 봐도 심각한, 범죄에 가까운 일을 당한 피해자인데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차별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 이 활동가는 "성소수자는 대개 차별이나 폭력을 피하고 자신을 보호하려 정체성을 숨기곤 한다"면서 "이 경우 폭력의 대상이 되진 않겠지만 '나답게 살 권리'는 없어진다"고 덧붙였다.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이들의 흔한 변명 역시 '차별하지 않을 테니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살아라'라는 것이다. 나답게 살기 위해 다른 이들의 허락이 필요한 삶 역시 차별이다. 애초에 인권은 특정 집단의 인준이 있어야 부여되는 권리가 아니다.

노키즈존에 대해서도 '노키즈존이 아닌 매장에 가면 될 일'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어린이 그리고 어린이와 함께하는 부모라는 이유로 혹은 노약자,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라서 주변의 눈치를 보고 자기검열을 해야 한다면 그곳은 차별 없는 사회가 아니다. 어린이들과 독서교실에서 책을 읽는 김소영 작가는 에세이집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어린이는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디서 배워야 할까? 당연하게도 공공장소에서 배워야 한다'라고 썼다. 말 그대로 당연한 일이다. 공공장소에 머무를 기회조차 주지 않으면서 어린이가 공공장소에서 예의 바르게 굴길 바라는 일은 지나친 욕심이자 일종의 환상이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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