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작곡자 김종률씨 인터뷰
소니뮤직 대표 거쳐 세종문화재단 대표 맡아
"5·18은 지금의 한국 있게 한 세계의 역사"
첫 보수 대통령 정당 광주 총출동 "굉장한 의미"
"계속돼야 '정치 목적' 의심 피하고 진짜 의미"
“정치가 이 좁은 나라를 언제까지 갈라놓을 겁니까? 선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 노래의 제창만은 계속되면 좋겠습니다.”
3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종률(64) 세종시문화재단 대표는 올해 5·18광주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식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벅차다고 했다. 이날 보수 정당 출신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각료, 여야 정치인들이 국립5·18민주묘지에 한데 모여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다함께 부르기)하던 모습이 떠올라서다.
여야 정치인이 한목소리로 손을 맞잡거나 주먹을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장면은 누구보다 그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을 법하다. 바로 그가 5·18을 상징하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소니뮤직코리아 대표이사로 15년간 재직하면서 한국의 대중문화를 세계에 알리기도 했던 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노래를 대접(진보 정권에서의 참석자 제창)했다가 홀대(보수 정권의 합창단 공연)하는 일이 반복된 것은 노래 작곡자인 그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고 한다. 심지어 일부 극우 세력들은 이 곡을 '빨갱이 노래'로 비하하며, 마치 노래가 지역 갈등의 주범인 것처럼 폄훼하기까지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발발 2년 후인 1982년 만들어졌다. 소설가 황석영이 시민사회운동가 백기완의 ‘묏비나리’ 일부를 차용해 만든 노랫말에, 당시 전남대 학생이던 김 대표가 선율을 입혔다. 2주기를 기념해 윤상원 열사(시민군 대변인)와 박기순(윤 열사의 야학 동료)씨의 영혼결혼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 결혼식을 위해 만든 노래다. 금지곡으로 지정됐다가 5·18민주화운동이 공식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1997년 해제됐다.
김 대표는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영혼결혼식)이 이러한데도 노래에 등장하는 ‘임’이 북한의 김씨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고, 이 노래를 ‘방아타령’으로 대신하자는 주장까지 있었다"고 소리 높였다. 그는 “이 모든 시도에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최초의 한류 노래로도 볼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주장이다. 그는 “노동계를 중심으로 25년 전 아시아의 많은 나라로 퍼져나간 최초의 노래”라며 “노래처럼 5·18도 이제 광주만의, 한국만의 역사가 아닌 세계의 역사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긴 힘든 경제성장을 이룩한 배경에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있었던 만큼, 한강의 기적처럼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유산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보수 정권에서 대통령과 장관, 여야 정치인이 광주를 찾아 노래를 제창한 것은 그것만으로 굉장한 의미가 있다”며 “정부가 선거에 표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 교육 과정에서 항쟁이 역사적 사실로만 기술되는 데 그치지 않고, 항쟁이 문화와 예술로 승화할 터전을 만들자는 것이다. “항쟁의 역사 교육은 정권 입맛에 따라 바뀝니다. 그런데 프랑스혁명처럼 항쟁을 예술로 접하도록 하면 세대를 거듭하며 지속되죠.”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고, 강물처럼 계속 흐르길 바라던 40년 전 청년 작곡가는 이렇게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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