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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자, 우리 동네 고양이

입력
2022.05.31 20:00
수정
2022.06.03 16:5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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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박정윤올리브동물병원장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길고양이에 대한 혐오적 표현을 내놓은 한 유튜버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해당 유튜버는 자신의 차량에 흠집을 내고 배달 음식을 헤집어 놓았다고 '죽이고 싶다'는 발언을 했다. 논란이 일자 입장을 밝힌 내용에서 '인간이 주가 되어야 하지 동물이 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바깥에 돌아다니는 길고양이들은 인간에게 피해를 주니 유해동물'이라는 주장을 폈다. 인간이 주가 되야지 동물이 주가 되어선 안 된다던 유튜버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기본적으로 인간 대 동물로 구분짓는 건 틀렸다. 인간의 상대어가 동물이 아니다. 동물의 범주 안에 인간도 포함된다.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사실이다.

가끔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좋으면 집에 데려가서 키우지 왜 길에다 두고 취미생활을 하냐고 비난하는 글을 볼 때가 있다. 고양이가 집에 있으면 괜찮지만, 길에 돌아다니면 유해동물이 된다는 유튜버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그들의 논리에 문득 다른 나라의 길거리 개를 떠올렸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지하철을 이용하는 길거리 개와 태국 치앙마이의 길거리 개. 누구에게 소유되지 않았지만 도시에서 혹은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그들은 사람과 공간을 공유하며 지낸다. 모스크바 철도는 연간 승객이 20억 명인 유럽에서 가장 이용자가 많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개들은 아침에는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이동해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얻어먹거나 환심을 사고 저녁에는 지하철을 타고 교외로 돌아온다. 어느 역이 겨울에 더 따뜻한지, 가판대가 친절한지 등 역마다 필요한 특징을 꿰뚫고 있다.

치앙마이는 절, 학교, 관공서 등의 여러 사람들이 길거리 개를 돌본다. 정부가 중성화 수술과 예방접종을 하며 주민들에게 밥을 주고 자주 만져주며 보살피도록 권하고 교육한다. 주민과 길거리 개 사이에 교감을 쌓은 뒤에야, 주민 도움으로 접종도 하고 질병도 관리하는 것이 수월하다는 논리다. 이쯤 되면 지역 공동체가 돌보는 '커뮤니티' 개가 된 셈이다.

미국 플로리다 이보 시티 (Ybor City)에는 닭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마이애미에도 닭들이 자유롭게 다닌다. 주인이 없는 닭들이다. 그들의 배설물에 불편을 느낄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슬린다고 그들을 있던 자리에서 내몰지는 않는다.

우리의 길고양이들은 어떤가. 길고양이는 주인을 잃은 동물이 아니다. 참새나 까치가 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살던 자리에 살고 있는 동물이다. 집에 사는 고양이는 집고양이라 부르고, 길에 사는 고양이는 길고양이라고 부른다는 논리로 따진다면 계속 한 지역에서 머문다는 의미의 마을 고양이 혹은 동네 고양이가 제격일 수도 있다.

도시에는 생각보다 많은 동물들이 산다. 사람이 살기 전부터 동물들은 그 자리에 살고 있었다. 인간 중심으로 발전한 도시공간에서 동물들은 원래 살던 터전을 잃고 피해를 봤다. 도시에서 동물들은 불청객이거나 혹은 구경거리 정도다. 지저분하고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고 피해를 주는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도시화가 되면서 도시에 사는 동물들의 운명은 인간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서울 고급 아파트에 길고양이들이 모여들자 일부 주민들이 집값이 떨어진다면서 보일러실에 거처를 마련한 고양이들을 가둬 떼죽음을 당하게 했다. 그렇게 잔혹한 이기심을 보인 결과는 어땠을까? 도시생태계를 거스르며 지내는 이기심의 대가는 결국 인간에게 돌아온다. 과연 동네 고양이는 사라졌을까?

'세상의 모든 동물은 고유한 이유로 존재한다'는 앨리스 워커의 말을 기억하자. 인간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 기대어 살고 있다. 사람 중심으로 지어진 도시는 사람만의 것은 아니다. 동물들도 도시에서 지낼 권리가 있다. 공간만 나눠 쓰는 게 아니라 자유롭고 행복할 권리도 함께.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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