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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복붙" 외고·영재고 교사들도 표절?...지원금 이중 수령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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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고서 복붙" 외고·영재고 교사들도 표절?...지원금 이중 수령 의혹

입력
2022.06.15 04:30
수정
2022.06.15 10:08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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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내용의 보고서, 제목만 바꿔 제출
과교총 등 3곳에서 지원금 이중 수령
취재 들어가자 과교총 "표절 맞다" 확인


2020년 A씨가 한국과학교육단체총연합회 주최 교사 대회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 일부(위)와 한국과학창의재단 STEAM 교사 연구회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 일부. 제목만 다를 뿐 사진 자료·본문 내용이 동일하다. 보고서 캡처

2020년 A씨가 한국과학교육단체총연합회 주최 교사 대회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 일부(위)와 한국과학창의재단 STEAM 교사 연구회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 일부. 제목만 다를 뿐 사진 자료·본문 내용이 동일하다. 보고서 캡처

'넓은 각도로 균등하게 빛이 퍼진다면 무지개처럼 선명하게 원호를 그리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나...(중략)... 이처럼 밀집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하여 데카르트는 수천 개의 광선을 작도를 하였던 것이다.'

데카르트가 무지개의 원리를 규명하기 위해 수천 개의 빛을 작도하고 밀집된 빛의 방향을 정확히 계산했던 과정을 설명한 보고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업을 위한 Flipped Learning용 수업도구 개발'이라는 제목의 교육 연구 보고서이다. 태양광을 이용해 교실 조명 환경을 개선하는 프로젝트 설계에 대한 내용이다.

2020년 인천의 한 영재학교 교사 A씨가 한국과학교육단체총연합회(과교총)에서 주최한 교사 대회에 제출했다. 이로 인해 연구 지원금 250만 원을 받았다.

그런데 A씨는 해당 보고서에 연구 수행자 6명의 이름을 더해 팀 보고서 형식으로 만들어, 같은 해 교육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유관기관인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주최한 융합인재교육(STEAM) 교사 연구회에도 제출했다. 제목만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StarT 프로그램: 태양광을 이용한 교실조명'으로 바꿨다. 그 결과 A씨 팀은 또 연구 지원금 400만 원을 받았다. 두 연구 보고서는 사진 자료 및 본문 문장 등이 완전히 동일하다. 사실상 자기복제이다.

고위 공직자 자녀들의 입시 스펙쌓기용 연구윤리 훼손문제가 끊임없이 한국 사회를 들쑤시고 있는 가운데, 외고·영재교 교사들조차 표절을 통해 지원금을 부당수령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아이들은 누구를 보고 배워야 할까.

같은 연구 보고서, 다른 저자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지역 두 명의 교사는 2019~2021년 확인된 것만 각 2~4차례에 걸쳐 '보고서 복제' 방식의 표절을 통해 한 번에 수백만 원씩의 지원금을 이중 수령한 의혹이 있다.

인천 M외국어고 교사 B씨는 2019년 과교총 주최 교사대회 '과학교사의 과학교육연구 지원' 부문에 '외골격 로봇: 노인을 위한 발목 보조기구 설계 프로그램 개발'이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약 한 달 뒤 STEAM 교사 연구회에 제목은 물론 내용까지 대부분 일치하는 보고서가 제출됐다. 이 보고서 연구 수행자는 A씨 외 5명이 적혔는데 이 중 B씨는 없었다. 저자가 다른 두 보고서가 알고 보니 같은 보고서였던 것이다.

두 보고서 모두 각각 주최 측으로부터 연구 지원금 250만 원과 4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B씨는 해당 보고서로 교사대회 교육부장관상 동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A씨는 "B씨는 같이 연구를 진행한 동료 연구자로, 표절한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한국일보가 문의하자 과교총 측은 "(확인해 보니 표절 사실이) 맞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천 M외국어고 교사 B씨가 2019년 과교총에서 주최한 교사대회 ‘과학교사의 과학교육연구 지원' 부문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위)와 약 한 달 뒤 인천의 영재학교 교사 A씨 외 5명이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주최한 융합인재교육(STEAM) 교사 연구회에 제출한 보고서. 사진 자료·본문 내용 등 상당 부분이 동일하다. 보고서 캡처

인천 M외국어고 교사 B씨가 2019년 과교총에서 주최한 교사대회 ‘과학교사의 과학교육연구 지원' 부문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위)와 약 한 달 뒤 인천의 영재학교 교사 A씨 외 5명이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주최한 융합인재교육(STEAM) 교사 연구회에 제출한 보고서. 사진 자료·본문 내용 등 상당 부분이 동일하다. 보고서 캡처

앞서 밝힌대로 A씨는 2020년에도 과교총 주최 교사 대회, STEAM 교사 연구회에 교실조명 관련 보고서를 이중 제출해 총 650만 원을 받았다.

A·B씨는 같은 해 인천대 교수 C씨의 지도하에 '행복한 학생, 성숙한 시민을 기르기 위한 문·과·미 체인지메이커 프로젝트 수업의 개발과 검증'이라는 제목의 연구 논문을 작성했고, 이번에는 교보교육재단에 제출했다. 이들은 인성교육 현장연구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지원금 400만 원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 이들은 교보교육재단에 제출한 보고서와 내용이 상당 부분 흡사한 보고서('문학에서 찾고, 과학으로 해결하고, 미술로 표현하는 지속가능발전 교육')를 과학창의재단의 지속가능발전교육 실천 교사연구회 지원 사업에도 제출했다. A·B씨 팀은 여기서도 선정돼 지원금 400만 원을 한 번 더 받았다.

심지어 A씨는 지난해에도 해당 보고서와 내용이 상당 부분 일치하는 보고서를 과학창의재단에 한 번 더 제출했다. 제출 분야를 지속가능발전교육 실천 교사 연구회에서 STEAM 교사 연구회로 바꿨다. A씨 팀은 역시 지원금 400만 원을 받았다.

즉 A씨가 소속된 팀은 하나의 보고서로 총 3차례 1,200만 원을 지원받은 것이다.


인천 M외국어고 교사 B씨가 2019년 과교총에서 주최한 교사대회 '과학교사의 과학교육연구 지원' 부문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위)와 약 한 달 뒤 인천의 영재학교 교사 A씨 외 5명이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주최한 융합인재교육(STEAM) 교사 연구회에 제출한 보고서. 사진 자료·본문 내용 등 상당 부분이 동일하다. 보고서 캡처

인천 M외국어고 교사 B씨가 2019년 과교총에서 주최한 교사대회 '과학교사의 과학교육연구 지원' 부문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위)와 약 한 달 뒤 인천의 영재학교 교사 A씨 외 5명이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주최한 융합인재교육(STEAM) 교사 연구회에 제출한 보고서. 사진 자료·본문 내용 등 상당 부분이 동일하다. 보고서 캡처


교사는 억울함 호소, 교육부는 "징계 대상"

논문 지도교수였던 C씨는 "(이중 게재 논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며 A씨에게 답변을 미뤘다. A씨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보고서와 논문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생 교육 프로그램은 아무 자료도 없는 상태에서 창작하기 어려워 기존 논문들에서 착안해 구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따라서 (학생 교육 프로그램) 연구 보고서와 논문 내용이 비슷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모두 이중 게재로 여기면 곤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A씨 설명과 달리 논문 성격으로 제출된 것은 교보교육재단 한 건뿐, 과교총 및 과학창의재단에 제출된 결과물은 공통적으로 교육 연구 보고서 형태였다.

A씨는 2020년 같은 보고서를 두 재단에 중복 제출한 일에 대해서는 "비슷한 시기에 교보교육재단과 과학창의재단에 보고서를 낸 건 맞다"면서도 "교보교육재단 지원 대상에 선정될 당시, 아직 과학창의재단 지원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B씨는 휴직 중으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2020년 A씨가 과교총 주최 교사 대회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 일부(위)와 A씨가 같은 해 한국과학창의재단 STEAM 교사 연구회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 일부. 사진 자료·본문 내용 등이 상당 부분 동일하다. 보고서 캡처

2020년 A씨가 과교총 주최 교사 대회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 일부(위)와 A씨가 같은 해 한국과학창의재단 STEAM 교사 연구회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 일부. 사진 자료·본문 내용 등이 상당 부분 동일하다. 보고서 캡처

더구나 "논문과 연구 보고서는 원래 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도 적절치 않다. 연구윤리정보포털 측은 "논문에서 착안한 프로그램 연구 보고서라면 논문 출처를 정확히 밝히고, 어떤 지점에서 논의가 진전됐는지 등 원본과의 차별화 지점을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연구 지원 대상을 결정하는 지원 주체의 판단이 이중 게재 여부를 가르는 결정적 기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교사들의 표절·이중 게재나 지원금 중복 수령은 명백한 징계 대상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공무원 징계양정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성실 의무 위반' 유형 중 '연구 부정행위' '연구비의 수당 수령·부정 사용 등 연구비 수령 및 사용과 관련한 비위'가 명시돼 있다"며 "연구 지원을 주관한 대회에서 교사의 표절·이중 게재 사실을 확인할 경우 해당 교육청에서 필요한 징계를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A·B씨가 2020년 인천대 교수 C씨의 지도하에 작성해 교보교육재단에 제출한 연구 논문 일부(위)와 이들이 비슷한 시기 교육부 유관기관인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속가능발전교육 실천 교사연구회 지원 사업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 보고서 캡처

A·B씨가 2020년 인천대 교수 C씨의 지도하에 작성해 교보교육재단에 제출한 연구 논문 일부(위)와 이들이 비슷한 시기 교육부 유관기관인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속가능발전교육 실천 교사연구회 지원 사업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 보고서 캡처


"표절 맞다"면서도 재발 방지책은?

한국일보는 교사 연구지원 주체들에 문제의 논문이나 연구 보고서의 표절 여부를 문의했다. 과교총은 "두 건 다 표절이 맞다고 판단된다"며 "만약 선정 과정에서 표절이 확인됐다면 선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보교육재단은 "이중으로 연구 지원금을 받은 사실이 확인돼 지원금을 회수하기로 결정했다"며 "지난 10일 본인 확인하에 (회수를) 완료했다"고 답했다. 과학창의재단은 "연구 지원금을 지급한 사실이 맞고, 표절 여부를 면밀히 조사하기 위해 위원회를 꾸린 상태"라고 밝혔다.

세 기관 모두 이번에 한국일보가 문의할 때까지 표절 논란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사 과정 내내 각 보고서의 유사성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교보교육재단은 공모 요강에 ‘이미 국내·외에 발표됐거나 완성 단계인 과제, 동일·유사 연구로 타 기관의 지원을 받거나 받을 예정인 과제는 선발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을 명시해 놓고도 걸러내지 못했다.


2020년 교보교육재단에서 밝힌 인성교육 현장연구지원사업 공모 요강.

2020년 교보교육재단에서 밝힌 인성교육 현장연구지원사업 공모 요강.

교보교육재단과 과교총은 "지원 사업이 비슷한 기간에 이뤄지면 중복 지원 여부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해명을 내놨다. 과교총 측은 "계획서를 제출받을 때부터 표절, 대리연구, 중복출품을 하지 않겠다는 확인서를 받았다"며 "차후 표절 또는 중복 출품이 확인되면 교육부의 '연구대회 관리에 관한 훈령'에 따라 수상 취소, 지원금 환급, 관계 기관에 징계 요청 등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보교육재단 관계자는 특히 "일부러 공모 요강에 관련 내용을 명시해둔 것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중복 지원을 받으면 양심적으로 하나를 취소해 달라'고 호소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결국 당사자의 양심에 맡김으로써 제3자의 문제제기가 없으면, 교사들의 이런 연구 부정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엄창섭 대학연구윤리협의회 이사장은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쓴 보고서를 내가 다시 쓰는 데 지장이 없다'는 인식이 있었다"며 "그러나 학술진흥법 개정 등을 계기로 연구 윤리에 대한 기준이 높아진 만큼, 관련 기관에서 유사도를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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