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70년 기념식 맞아
존슨 역점 '브렉시트' 강조하며 "통제권 되찾기"
기존 미터법에서 '임페리얼 단위' 회귀 추진
미터법 사용하지 않는 국가, 미국 등 3개국 불과
유럽연합(EU)을 탈퇴(브렉시트)한 영국이 국제 표준 단위계인 미터법을 버리고 이른바 ‘임페리얼 단위계(야드파운드법)’로 회귀할 조짐이다. 이미 브렉시트를 달성한 만큼 EU와 맞춰오던 도량형 대신 영국 전통 단위계로 돌아가겠다는 얘긴데, 국제 표준과 거리가 멀어질뿐더러 실생활에서 진통도 예상된다.
29일(현지시간) 영국 더타임스 등에 따르면, 존슨 내각은 현재 영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단위계를 미터법 기준에서 과거 임페리얼 단위계로 변경할 방침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미터(m)와 킬로미터(㎞) 등을 야드(yd)나 마일(mile)로, 그램(g)이나 킬로그램(㎏)은 파운드(lb)로 바꾸는 식이다. 폴 스컬리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 장관은 스카이뉴스에 “국가 규칙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은 1965년 이래 미터법을 기준으로 해 왔다. 1995년과 2000년 EU가 도량형 지침을 발표한 후 법적 단위는 미터법으로 정의됐다. 특히 젊은 층은 10마일(약 16.1㎞)과 15㎞ 중 어느 것이 더 긴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임페리얼 단위계는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것이다.
존슨 총리 측이 임페리얼 단위계 부활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총리실 및 영국 고위 공직자 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와중 파티를 열었다는 ‘파티게이트’로 촉발된 지지율 하락에 반전을 노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시기도 공교롭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즉위 70주년 기념 행사가 오는 6월로 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임페리얼(제국)’이라는 단어로 영국 국민들의 여왕에 대한 충성심에 호소하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존슨 총리가 과거에도 특정 목적을 갖고 임페리얼 단위계를 언급했던 점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2001년 스펙테이터 편집장으로 근무할 당시 도량형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한 상인의 사건을 두고 “영국인들이 왜 (프랑스 지도자) 나폴레옹의 단위를 사용해야 하는가”라고 주장했다. 또 2019년 총선 유세에서도 “우리는 전통 단위를 되찾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미터법을 EU가 강제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영국의 독자성을 고취해 브렉시트 찬성 세력의 지지를 얻겠다는 포석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존슨 총리의 단위계 변경에 대해 쓴소리를 내놓고 있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수반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완전히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존슨 총리의 ‘노딜 브렉시트’에 반기를 들었던 데이비드 고크 전 장관도 “전통의 부활을 축하해야 할 것”이라며 비꼬았다고 스카이뉴스는 전했다. 더타임스는 “내각이 시계를 과거로 되돌리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브렉시트의 ‘이점’을 강조하려는 목적”이라고 해석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미터법을 표준 단위계로 사용하지 않는 나라는 3개국뿐이다. 미국과 라이베리아는 미국식 야드파운드법을, 미얀마는 전통적 독자 단위계를 사용하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