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새의 선물' 27년 만에 100쇄
1995년 출간된 은희경 작가의 장편소설 ‘새의 선물’은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열두 살 여자아이 진희의 시선을 통해 1960년대를 조감하는 작품이다.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으로, 세대를 거듭하며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사랑 받아온 작가의 대표작이다.
성장 소설의 클래식으로 자리 잡은 ‘새의 선물’이 27년 만에 100쇄를 기록했다. 100쇄 기념 개정판 출간을 맞아 30일 서울 마포구 디어라이프 카페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은희경 작가는 “순간에만 관심을 받은 게 아니라, 27년 동안 독자들이 내가 소설을 통해 던진 질문에 대답을 해줬다는 것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1995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은 작가는 그해 여름 해발 1,000m가 넘는 산꼭대기 절에서 이 작품을 썼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었고, 강태형 당시 문학동네 대표가 “10만 부가 팔리면 차를 사주겠다”고 농담했을 정도로 큰 기대는 없었던 책이다. 그랬던 책이, 27년간 100쇄의 산을 이룰 만큼 오래, 또 많이 읽히는 책이 됐다. 은 작가는 “책을 낸 그해에 정말로 차를 선물받았다”며 웃었다.
그러나 첫 책이 ‘대표작’이 된다는 것은 작가에게 “빛이자 그늘”이었다. 은 작가는 “덕분에 오랫동안 작가 생활을 할 수 있었으니 굉장한 빛이지만, 이후 15권이나 책을 냈어도 여전히 첫 번째 책보단 잘 쓸 수 없다는 뜻 같아 희미한 그림자로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번 개정판을 내며 ‘앉은뱅이 책상’이나 ‘벙어리 장갑’ 같은 장애나 여성 비하적 표현과 편견을 전부 수정했다. 은 작가는 “60년대를 배경으로 90년대에 쓰여진 소설인 만큼 당시에는 무심히 받아들여졌지만 오늘날에는 명백하게 잘못인 표현들은 모두 바꾸었다”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말이 쓰이지 않게 됐다는 게 새삼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가의 일은 그 시대를 재현하는 것도 있지만, 그 시대를 해석하는 관점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27년 동안 무수한 독자들을 만난 책이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잊히지 않는 독자가 있다고 은 작가는 마지막으로 떠올렸다. “한 여자 고등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사람의 선의가 악으로 갚아지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던 때, 제 책을 읽고 세상의 부조리함을 받아들일 용기가 생겼다고요. 다정하고 따뜻한 것만이 위로인 게 아니라, 춥고 어두운 걸 똑바로 봄으로써 강해지는 게 있겠구나 싶었어요. 27년간 그런 독자들이 있었던 게 제가 쓸 수 있는 힘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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