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일본어 이메일이 자꾸 길어지는 이유

입력
2022.05.28 04:40
13면
0 0

<64>전자 커뮤니케이션의 문화적 다양성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한국과 많이 다른 일본어의 이메일 쓰기 관행은 일본 사회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독특한 전자 커뮤니케이션의 문화다. 이메일이라는 글로벌 전자 프로토콜(통신 규약)이 세상에 등장한 지 50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각각의 사회에 수용된 문화적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전자 커뮤니케이션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다. 일러스트 김일영

한국과 많이 다른 일본어의 이메일 쓰기 관행은 일본 사회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독특한 전자 커뮤니케이션의 문화다. 이메일이라는 글로벌 전자 프로토콜(통신 규약)이 세상에 등장한 지 50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각각의 사회에 수용된 문화적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전자 커뮤니케이션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다. 일러스트 김일영

◇일본어를 잘 구사해도 일본어 이메일은 어렵다

일본어로 이메일을 몇 통 쓰다가 반나절이 훌쩍 지나 버렸다. 큰 스트레스 없이 논문을 쓸 정도로 일본어를 구사하지만, 유독 이메일을 쓸 때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일본인 지인이나 대학생들도 이메일은 쓰기 어렵다고 토로하는 것을 보면, 모국어가 아니라서 겪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우리말로도 이메일은 다소 까다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특히 채팅 앱이 일상적인 의사 소통을 도맡으면서, 이메일은 다소 공식적이고 정중한 업무용 의사 소통 창구로 자리 잡았다. 필요한 정보를 차질없이 전달하도록 업무용 이메일을 쓰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반영구적으로 저장되는 전자 문서라는 점도 쓰는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 전화 통화에서는 말실수를 해도 바로 정정할 수 있지만, 이메일에서는 재빨리 정정 요청을 했다고 한들 잘못 쓴 문장이 영영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주의를 기울여 사용해야 하는 소통 수단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거기에 더해 일본어로 이메일을 쓸 때에는 형식적으로 갖춰야 하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예컨대, 이메일 두서에 반드시 붙여야 하는 관용구가 있다. 예를 들어, 회사 직원이나 가까운 사이에서 오가는 이메일에는 ‘수고가 많습니다’, 예의를 지키는 거래처나 고객에게 보내는 이메일에는 ‘신세를 집니다’라는 문구가 예외없이 붙는다. 이메일의 끝에 ‘바쁘신 와중에 검토를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등의 마무리 문구도 필수적이다. 관용구라고는 해도 본문의 내용이나 상대방의 상황 등에 따라 뉘앙스가 다양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밸런스를 고려해서 잘 선택해야 한다. 또, 동일한 의미의 관용구인데도, 손윗사람에게 쓸 때, 손아랫사람에게 쓸 때, 깍듯이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상대방에게 쓸 때 등 용례가 다양하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연구자로서는 관용구를 요리조리 뒤집으며 문장을 엮는 이메일 쓰기에서 묘한 재미를 느낀다. 하지만, 글쓰기에 큰 취미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폭넓은 용례를 검토하고 그중에서 적절한 문구를 선택, 조합해야 하는 이메일 쓰기가 꽤 번잡하고 귀찮은 일일 것이다.

◇관용구와 인사말… 정중한 이메일이 자꾸 길어지는 이유

우리나라에서는 업무 관련 이메일에서도 ‘이모티콘(^^, ;-) 등 문자나 기호를 조합해 감정을 표현하는 표기 양식)’이나 ‘이모지(전자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 사용하는 그림 문자 양식)’를 사용하는 것을 종종 보았다. 남용하지 않는다면 허심탄회한 표현 방식도 예의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는 듯하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이모티콘이나 이모지가 들어간 업무 이메일은 본 적이 없다. 이모지는 애초에 일본의 인터넷 문화에서 싹터 전 세계로 퍼진 표현 양식이다. 일본어 ‘에모지(絵文字)’가 영어로 ‘emoji’로 번역되면서 이모지라는 용어가 글로벌하게 쓰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일본어의 이메일에서는 이모지도, 이모티콘도 금기 사항이다. 굳이 감정을 표현하고 싶을 때에 메일 본문에 ‘웃음(笑)’이라든가 ‘눈물(涙)’ 등의 문자를 써 넣는 경우가 있지만, 업무용 이메일에는 역시 부적절하다는 평가다.

이메일에서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인사말을 쓰는 관행적 화법도 대체로 지켜진다. 예를 들자면, 봄이면 ‘드디어 꽃이 피는 계절이 왔습니다만…’, 여름이면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가을이면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겨울이면 ‘한파에 별일은 없으십니까’ 등 계절이나 날씨 등과 연결지어 근황을 묻는 문구가 반드시 들어간다. 오래전 엽서나 편지를 쓸 때에 사시사철과 관련한 인사말로 서신을 시작하는 낭만적인 화법이 유행이었다. 이 전통이 이메일 쓰기 관행에 계승된 것이다. 계절에 맞는 인사말을 찾는 것이 녹록지 않아서, 1월부터 12월까지 각각의 날씨에 맞는 용례를 모아놓은 인터넷 아카이브를 참조하곤 한다. 말하자면 전자 문서 특유의 ‘건조함’에, 문학적 감성을 고수하는 편지쓰기 전통이 더해져서, 이메일의 난이도가 훌쩍 높아졌다. 이렇게 형식을 갖추다 보면 이메일이 길어지는 경향도 있다. 영어로는 “OK, thank you!(그래, 고마워)”라는 한 줄로 끝날 일이, 일본어로는 “늘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연락주신 사항에 대해서 잘 알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혹시 질문이 있으면 나중에 또 연락드릴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장황한 표현이 된다. 장문이 된 이메일의 꼬리에는 ‘서신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문구를 붙이는 것이 또 예의다. 장문의 이메일에 양해를 구하는 문구 때문에, 가뜩이나 긴 이메일이 더 길어지는 딱한 사태다.

한편, 이메일을 받는 입장에도 고충이 있다. 정중한 이메일일수록 의미가 직관적으로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급 온라인 쇼핑몰의 친절한 고객 상담사와 주고받는 이메일만큼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없다. 깍듯한 존댓말과 겸양의 관용구가 줄줄이 이어지는데, 물건의 교환이 가능하다는 것인지, 환불을 위해서는 어떤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정작 핵심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일본에서도 군더더기가 많은 이메일 관행이 업무의 신속함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있다. 올바른 이메일 용법을 익히는 것은 중요하지만, 비즈니스 이메일 작성법을 가르치는 전문 강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것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이메일을 길게 쓰는 직원일수록 일을 못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니, 이메일이 오히려 업무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날선 지적에도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된다.

◇전자 커뮤니케이션의 문화적 다양성

우리나라에서는 ‘메일’이나 ‘이메일’이나 동일하게 PC나 스마트폰에서 오가는 전자 문서를 뜻하지만, 일본에서는 휴대폰에서 주고받는 단문 메시지를 ‘메일(メール)’이라고 부르고, PC에서 주고받는 이메일은 ‘PC 메일’ 혹은 ‘이메일’이라고 불러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에서는 2000년대 초반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이전에 일찌감치 모바일 인터넷이 대중화했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휴대폰에서 이메일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는 인터넷 PC과 함께 이메일이 소개되었는데, 유독 일본에서만 그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그들은 빠르고 편리한 전자 커뮤니케이션의 이점을 휴대폰 메시지를 통해 먼저 실감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PC 이메일은 신속함과 간결함보다는 정중함을 갖춘 공식적인 연락 수단이라는 인상이 한층 강해졌다. 이런 독특한 경위 속에서 격식을 차리는 전통적인 업무 관행과 이메일 문화가 쉽게 결합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다소 비효율적으로 느껴지는 일본어의 이메일 쓰기 관행도 일본 사회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독특한 전자 커뮤니케이션의 문화라는 점에서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러고 보니, 독일, 스위스 등 독일어권의 비즈니스 이메일도 일본처럼 관용구와 관행적 인사말, 맺음말이 장황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개별적인 맥락은 다르겠지만, 그런 나라에서도 이메일은 오로지 간결함과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수단은 아닌 것이니 흥미롭다. 이메일이라는 글로벌한 전자 프로토콜(통신 규약)이 세상에 등장한 것은 불과 반세기 전. 동일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이지만, 각각의 사회에 수용된 문화적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전자 커뮤니케이션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