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커상 후보 오른 가와카미 미에코
정자 기증으로 임신하려는 여성 통해
임신과 출산, 생명 의미에 대한 질문 던져
지난 2020년 11월 4일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방송인 사유리씨가 정자 기증을 통해 3.2kg의 남자아이를 일본에서 출산했음을 알렸다. 그가 출산 이후 한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는 결혼한 사람만 시험관(시술)이 가능하고 모든 게 불법이었다”고 말하면서 국내 비혼 출산과 관련한 법적, 제도적 검토가 이뤄지기도 했다.
비혼 출산
엄밀히 말하자면 국내에서도 비혼 출산이 ‘불법’은 아니다. 생명윤리법 제24조에 시술대상의 배우자가 있는 경우 배우자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배우자가 없는 경우 서면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 단 대한산부인과학회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에 따라 실질적으로 의료기관에서 법적으로 부부인 이들만을 대상으로 시술을 시행하기 때문에 한국에선 비혼 출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본도 역시 ‘제3자 제공 정자의 의한 인공수정(AID)’을 시술 받을 수 있는 대상을 ‘법적으로 혼인한 부부’에 한정하고 있는 것은 같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정자 거래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정확한 입장과 법적 규정이 없다 보니, 외국의 민간 정자은행을 통한 거래나 개인 간 정자 제공을 통한 임신 사례가 존재한다. 사유리씨 역시 유럽의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일본에서 시험관 시술을 받은 경우다.
그의 ‘정자 기증을 통한 비혼 출산’은 나아가 여성의 자기 신체에 대한 결정권, 가족 형태의 다변화, 저출산 정책의 실효성 등 다양한 논의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가와카미 미에코의 장편소설 ‘여름의 문’은 여기에 더해 아이의 출생권과 생명의 근원에 대해서도 함께 질문하는 소설이다. 가와카미 미에코는 소설 '헤븐'으로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 정보라 작가와 함께 최종 후보로 오른 작가다. '여름의 문'은 2002년 가수로 데뷔해 활동하다 2007년 등단, 아쿠타가와상과 와타나베 준이치상 등을 받으며 일본의 주요 작가로 떠오른 그의 최신작이다.
‘여름의 문’은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작가에게 아쿠타가와상을 안긴 ‘젖과 알’(2008)을 개고한 것이다. 2부는 1부로부터 8년 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일종의 후속작이다. ‘여름의 문’은 1부에 해당하는 ‘젖과 알’ 수정본과 그의 후속작인 2부를 합친 것으로 2019년에 현지에서 출간됐다. 전 세계 40개 넘는 나라에서 번역 출간됐으며 뉴욕타임스의 올해의 주목할 만한 책, 타임지의 2020년 베스트10 책 중 하나로 꼽혔다.
1부는 초경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초등학생 딸 미도리코와 마흔을 앞두고 유방확대수술을 고민하는 싱글맘 마키코가 도쿄에 사는 마키코의 동생 나쓰코의 아파트에서 보낸 사흘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미도리코는 “일만 하는 엄마가 피곤한 거”는 “전부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어른 돼서도 절대절대 아이는 낳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렇기에 ‘출산이 가능한 몸’이 되는 ‘생리’는 미도리코에게 두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1부가 여성성을 둘러싸고 마키코, 미도리코 모녀의 대립과 화해를 그린다면 2부는 마키코의 동생 나쓰코가 주인공이다. 어느덧 38세가 된 나쓰코는 더 나이 들기 전에 아이를 갖고 싶지만, 섹스에 기쁨을 느끼긴커녕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도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워했다. 나쓰코는 남자 없이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결심하고 정자를 제공받기 위해 '익명의 제3자 정자제공(AID)'모임을 찾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정자 기증으로 태어나 훗날 그 사실을 알게 된 뒤 정자 기증자를 찾고자 하는 의사, 이혼하고 싱글맘으로 딸을 키우면서 아빠는 필요 없다고 말하는 소설가, 아이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편집자 등. 소설은 나쓰코가 정자 기증을 받아 비혼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임신과 출산, 육아를 둘러싼 근본적인 고민을 다시 하도록 한다.
특히 아버지에게 지독한 성적 학대를 당하며 자랐다가 훗날 자신이 다른 누군가의 정자 기증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사람이 친아버지가 아니었다니 다행이다”라고 말해야만 하는 유리코라는 인물은, 아이의 ‘출생권’을 생각해보게 한다. 아이를 낳는 것은 “부모가 제멋대로 하는 도박”이자 "이기심"이며 “당신이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태어난 걸 진심으로 불행하게 여긴다면 대체 어쩔 셈”이냐고 묻는 유리코 앞에서는 ‘그래도 태어나서 잘됐다’는 말을 쉽사리 할 수가 없다.
소설은 비혼 임신과 출산, 나아가 '출생하지 않을 권리' 등 생명을 둘러싸고 무수한 생각할 거리들을 던진다. 여기에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하고 각종 차별과 폭력이 무시로 벌어지는 일본 여성의 현실까지 복합적으로 엉키며 "사람이 사람을 낳는 일"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마지막에 울려 퍼지는 새 생명의 울음소리 앞에서 독자는 불가항력의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울음소리 앞에선, 아무리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어도, 삶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단해도, 그러다 결국엔 죽음에 도달한다해도, 그런 와중에도 새롭게 세상에 도착한 모든 아이들을 온 마음으로 환대해주자고 다짐하게 된다. 어떤 불행도 이 아이를 비켜가기를 빌며 이렇게 말하게 된다. “이제 왔니, 어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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