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전석 매진 연극 '햄릿' 제작·출연진 뭉쳐
연기 경력 50여년 배우들 단역으로 물러나고
젊은 후배들 주역으로 앞세워 "함께해 행복"
7월 13일부터 한 달간 국립극장 해오름 공연
유랑극단 배우1, 무덤파기1. 이름 없는 단역을 하고 싶었다는 출연 배우들이 넘치는 연극이 있다. 바로 6년 만에 돌아온 '햄릿'이다. 연극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이해랑연극상 수상자들이자 평균연령 66세의 배우들이 뭉쳐 객석 점유율 100%를 기록했던 작품이다. 이번엔 당시 배우들이 조연으로 물러나고 젊은 후배들을 앞세웠다. 1962년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배우 박정자(80)와 2010년 뮤지컬 '맘마미아!'로 시작한 박지연(34)까지, 약 50년의 간극을 딛고 총 16명의 배우가 한무대에 선다.
"무덤파기를 (다들) 그렇게 바라는지 몰랐다. 진작 그 역할 내놓고 내가 햄릿을 할걸."
출연진 가운데 최연장자인 권성덕(82)의 한마디로 장내에는 웃음이 터졌다. 지난 25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소감을 말하던 배우들이 너도나도 "무덤파기 역할을 하고 싶었다"고 하자 이에 응수한 농담이었다. 연기 경력 평균 50년을 훌쩍 넘는 배우 9명이 후배들을 받쳐 주는 조연으로 '전락해' 무대에 서는 일의 기쁨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대목이다.
원로 배우들에게 역할의 비중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지난 공연에서 여주인공 오필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우스 역을 맡았다가 이번엔 유랑극단 배우1을 연기하는 박정자(80)는 "무대 한 구석에 있더라도, 조명 밖에 있어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저 동료, 후배들과 함께하는 연습실로 가는 길이 행복할 따름이다. 손숙(78) 역시 "6년 전 왕비에서 배우2로 전락했지만 행복하고 즐겁다"고 말을 더했다. '선배로서 큰 역을 맡은 젊은 친구들을 어떻게 도와줄까' 하는 고민이 전부다. 지난 공연에서 햄릿을 맡은 유인촌(71)은 이번에 햄릿의 숙부인 클로디어스를 연기한다. 선배 그룹에는 전무송(81), 정동환(73), 김성녀(72), 윤석화(66), 손봉숙(66) 등도 있다.
제작자인 박명성 프로듀서(신시컴퍼니 대표)는 "세대를 융복합하는 작품"이라고 이번 공연을 규정했다. 배우 정동환은 "개인 극단이 어렵다면, 범연극인이 도와서 꼭 전통으로 유지돼야 한다"며 선후배가 대물림하듯 이어가는 이런 연극이 전통으로 자리 잡길 바라는 마음을 드러냈다.
선배들이 무대에 서는 기쁨을 표현할 때 후배들은 극도의 긴장감을 털어놓았다. 연극과 뮤지컬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들임에도 이번 작품 연습실에서는 대사 한마디 뱉기가 어렵다는 전언이다. 햄릿 역을 맡은 강필석(44)은 "첫 연습에서 박정자 선생님의 첫 대사를 듣고 제 대사를 못 하겠더라"며 그날의 떨림을 돌아봤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합류해 큰 영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레어티즈 역의 박건형(45)은 "6년간 공연을 보면서 작은 소품으로라도 출연하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다"며 선배에 대한 존경을 표현했다.
선후배 사이 다리 역할을 자처한 배우 길해연(58)을 비롯해 김수현(52), 김명기(42), 이호철(35) 등도 무대에 선다. 최연소자인 오필리어 역의 박지연은 "젊은 배우들 때문이 아니라 선생님들 덕분에 가장 젊고 재밌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물론 세대 화합의 의의만 있는 작품은 아니다. 배삼식(극본), 손진책(연출), 박동우(무대) 등 장인 제작진이 이번에도 무대를 준비해 기대감을 높인다. 손진책 연출은 이날 연극 동지들과 함께 '격이 있는 연극'을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약 400년 전 작품인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돼 관객을 만나고 있다. 배삼식·손진책 콤비의 '햄릿'은 특히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의 내면에 집중한다. 손 연출은 "햄릿의 기본 이미지는 죽음"이라며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는 것이 가장 확실한 사실인데, 우리는 죽음을 굉장히 멀리 있는 것처럼 느낀다"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작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공연은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7월 13일부터 8월 13일까지 한 달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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