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 콘서트 '휠체어석 부실 안내' 논란
동반인 별도 예매부터 별도 예매창 부재까지
과거 콘서트에서도 미흡한 지원으로 불편 겪어
장애인 고려 않는 국내 공연계 실태
무의 홍윤희 "케이팝 위상 걸맞은 태도 필요"
이달 25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릴 그룹 '세븐틴'의 콘서트 '비 더 선'을 앞두고 팬들이 떠들썩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한동안 볼 수 없던 대면 콘서트가 오랜만에 열렸기 때문일까요? 아니었습니다. 이유는 티켓 예매 공지였는데요. 지난 달 17일 글로벌 팬 플랫폼 '위버스'에 올라온 안내문엔 "휠체어 이용자의 동반인은 티켓을 예매해야 입장할 수 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휠체어 이용자와 장애인은 이동에서부터 공연 관람 도중에도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이 동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문 인력이 보조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바로 장애인 지원에 관한 법률(장애인활동법)에 나와 있는 '활동지원사'입니다. 활동 지원은 지체 장애인뿐만 아니라 시각 장애,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들도 법적으로 보장받는 권리라고 해요.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공연에서는 장애인이 티켓을 예매할 때 동반 1인까지 함께 구할 수 있어요.
비싼 티켓 값부터 팬클럽 가입비까지… 늘어가는 비용 부담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제작 협동조합 '무의' 홍윤희 이사장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활동지원사가 즐기러 공연 가는 게 아니라 (장애인이) 즐길 수 있게끔 하는 것"이라며 예매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가격을 할인해 부담을 줄여주기도 합니다. 홍 이사장은 "할인이 법적 의무는 아니지만 동반인이 없으면 이동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한 사람의 티켓값으로 두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시각 장애인 A(28)씨는 "뮤지컬이나 연극을 보러 가면 보통 30~50% 할인받았다"며 "동반인까지 (할인)해 주는 경우도 있고 장애인만 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동반인 몫의 티켓을 따로 사야 한다면 비용 부담은 만만치 않습니다. 이번 콘서트도 일반 티켓이 13만2,000원, VIP 티켓이 16만5,000원입니다. 동반인까지 고려하면 20만 원 후반대~30만 원 초반대를 써야 하는데요. 특히 VIP 티켓은 리허설 관람을 포함해 휠체어석이라 해도 가격이 변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선예매' 기간을 둬서 유료 팬클럽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먼저 예매 창을 열어주기도 합니다. 아이돌 콘서트는 '피켓팅(피가 튀길 정도로 치열한 티켓팅)'이라 불릴 정도로 표 하나를 구하는 것조차 어려워 돈을 더 낸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인데요. 선예매 기간에 모든 좌석이 풀리기 때문에 이때를 놓치면 일반 예매 기간 때는 구할 수 있는 표가 사실상 없습니다. 만약 동반인이 공연하는 아티스트의 팬이 아니라면, 오직 장애인의 동행을 목적으로 팬클럽 가입비를 추가로 내야 합니다.
가입을 한다고 해서 바로 선예매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①돈을 내고 가입하면 ②선예매 참여 신청을 하고 ③유료 회원 인증까지 해야만 선예매 기간이 됐을 때 참여 가능해요. 게다가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도 표를 구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A씨는 "활동지원사들에게는 (동행이) 일인데, 티켓값에 팬클럽 가입비까지 내라는 것은 너무하다"며 "그 돈을 장애인에게 내라는 것도 이중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는데요.
"휠체어석 예매 창구가 따로 없는 것도 문제"
세븐틴 콘서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연 관람 경험이 있는 B(17)양은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입니다. 그는 기자와 통화에서 "보통 휠체어 이용자나 장애인이 공연을 보려면 별도 창을 통하거나 예매처에 전화를 걸어 동반인 티켓도 같이 할 수 있다"며 "(일반적인 경우) 전화로 예매가 되면 현장에서 신분증과 장애인 복지카드를 보여주고 티켓을 받는 식"이라고 설명했는데요.
하지만 이번 세븐틴의 콘서트는 휠체어 이용자와 장애인을 위한 예매 창구가 따로 없습니다. 티켓팅 때 휠체어석 선택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 일반 좌석을 예매해야 하는데요. 그리고 예매처인 인터파크 티켓 CS팀에 전화해서 휠체어석을 요청하면 자리를 바꿔주는 방식입니다. 예매에 성공한 동반인이 있다면 휠체어석에서 함께 관람할 수는 있지만 휠체어 이용자가 예매한 일반 좌석은 다른 이용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비워둡니다.
B양은 "고척돔에 휠체어석도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왜 예매를 나누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공연이 열리는 고척돔에는 휠체어가 들어가고 그의 동반인이 옆에 앉을 수 있는 구역이 따로 존재하는데요. 고척돔 시설팀 건축업무 담당자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휠체어석은 38석이 준비되어 있다"며 동반인까지 76명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라고 설명했습니다.
콘서트를 공동 기획한 플레디스 관계자는 한국일보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예매 창구를 통합한 이유를 설명했는데요. "대중들은 장애인만 휠체어석을 이용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비장애인 중에도) 질병이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휠체어석 예매 시 확인하는) 장애인 등록증이나 복지카드가 없는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게 같은 조건에서 예매를 하도록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은 해소되지 않습니다. 비장애인 휠체어 이용자도 휠체어석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예매 창구는 분리해둔 채 현장 검증 과정에서 사정을 고려할 수는 없던 것일까요. 휠체어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오히려 다른 장애인들의 공연장 이용이 제한되는 사례도 발생했는데요.
휠체어 이용자 말고 등록증을 가진 다른 장애인들도 휠체어석(장애인 구역)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전맹(빛도 보지 못하는 정도의 시각 장애)이 아닌 A씨는 확대기를 쓰는데요. 이 때문에 "일반 좌석은 간격이 좁아 주변 사람들에게 확대기가 부딪히는 경우도 있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 차라리 장애인 구역을 선호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2018년 세븐틴 콘서트 당시 예매처인 멜론 티켓 측에 장애인 복지카드 소지자여도 휠체어가 없으면 휠체어석에 못 들어가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답을 받았다"고 소개했는데요. 결국 그는 일반 좌석에서 공연을 관람했다고 합니다.
"활동지원사 대신할 현장 인력 있다"… 하지만
플레디스 관계자는 "동반인을 구하지 못한다면 현장에서 지원 인력이 투입된다"며 "입장과 퇴장뿐만 아니라 공연 중에도 대기하다가 이동에 불편이 없도록 도와드릴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17일에 처음 올라온 공지에서는 이런 설명이 빠져 있었는데요. 팬들이 직접 항의 전화를 하자며 '총공(총 공격)' 글을 올리자 사흘 뒤인 20일에서야 다시 공지를 했습니다.
하지만 팬들은 여전히 주최 측의 현장 지원이 충분하지 않다며 비판하는데요. 3월 세븐틴 팬미팅에 갔던 A씨는 "코로나19 방역 지침 때문에 함성을 지를 수 없어 클래퍼(박수 소리를 내는 도구)를 받아야 했는데 지원 인력은 자리 이동만 해주고 도구를 챙겨주지 않았다"며 "어쩔 수 없이 혼자 받으러 갔다가 턱을 못 보고 걸려 넘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장애 특성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지원 인력으로 투입되면 오히려 혼란을 키울 수도 있습니다. 플레디스 관계자에게 6월 콘서트 현장에 전문 인력이 지원되는 것인지 묻자 "(전문 인력이 아닌) 현장에서 인력이 지원된다"고만 했습니다.
누군가는 여전히 배제되고 있다... 장애인에게 제한적인 공연계
공연을 기획하는 측에서 휠체어석과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것 같아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는데요. C씨는 "좌석 배치도에 휠체어석이 안내되지도 않은 것이 문제"라며 "휠체어 이용자와 장애인들은 자리를 보고 갈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다"고 문제를 짚었습니다.
B양은 2021년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렸던 그룹 '더보이즈'의 콘서트에서 겪었던 일화를 들었습니다.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는 공연 당일 선착순으로 정해졌다"며 심지어 "조형물 설치로 휠체어석의 시야가 가려진다는 사실을 예매가 끝난 뒤 공연일 1, 2주 전에 알려줬다"고 했어요.
그는 "휠체어석은 보통 원하는 자리를 가긴 어렵다"며 "(주최 측에서) 랜덤으로 배정하기 때문에 선택권이 없다"고 말했는데요. B양은 "사실 휠체어석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공연장도 너무 많고 휠체어석이 있어도 그곳에 갈 수 있을지는 주최 측 재량"이라고 아쉬워했습니다.
A씨는 장애인을 고려하지 못한 시스템도 지적했습니다. 그는 "기계를 통해 티켓을 발권하는 것도 문제"라며 "기계를 못 다루는 다른 시각 장애인 친구들은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걸어줄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더라"고 전했어요. 이어 그는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글자를 읽기 힘들 수도 있다"며 "전화를 하는 등 대화를 통해 예매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도움의 손길 내미는 곳도 존재하나 여전한 법적 공백
물론 적극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공연장도 있어요. A씨는 뮤지컬을 보러 갔을 때 "현장 지원 인력이 티켓 발권부터 물품을 보관하는 것, 물건을 사는 것, 공연이 끝나고 택시를 타는 것까지 도와줬다"며 "공연 중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같이 가주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휠체어 이용자와 장애인이 편리하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권리가 제도적으로 온전하게 보장되고 있는 것은 아닌데요.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2021년 11월 대표 발의한 공연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입니다. 해당 법안에는 편의 시설과 보조 도구 등을 마련해 장애인의 공연시설 접근권과 문화 향유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어요.
국내와는 다른 모습의 미국 휠체어석
미국 장애인법(ADA)에는 휠체어석에 대한 규정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어요. ①좌석의 1% 이상이 휠체어석이어야 하고 ②동반인의 좌석은 휠체어석 옆에 위치해야 하며 ③휠체어석은 스탠딩 관중을 넘어 시야가 확보돼야 합니다. 이 외에도 ④전 구역에서 좌석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⑤티켓 가격의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⑥모든 편의 시설에 접근 가능한 경로를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어요.
장애인에게 친화적인 경기장으로 꼽히는 미국 뉴욕시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은 모든 경기와 공연에 대해 해설 자막과 수어 통역사를 제공하고 청각 보조 장치도 구비해 두고 있습니다. 휠체어 등 이동 보조 도구를 사용하는 경우 별도의 입구와 전용 엘리베이터가 마련되어 있으며 휠체어 보관소도 존재해요.
"케이팝 선진국에 걸맞은 다양성과 포용성 보여달라"
팬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아무리 오랜만의 대면 콘서트이고 티켓 구하기 어렵다고 난리를 쳐도 휠체어석 따로 빼놓는 것은 뭐라 안 한다"며 일침을 놓았습니다. "멤버들이 말하는 '사랑의 힘'에 어긋나는 행보"라고 비판하며 "콘서트를 가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분이 있다면 기꺼이 돕겠다"고 말하는 팬도 있었어요.
홍 이사장은 "법에 없으니까 (휠체어석 준비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케이팝 선진국인 만큼 그에 맞게 다양성과 포용성 자체도 커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